지난해 서울 관악구 난곡동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 교회에 한 미혼모가 남기고 간 편지. /사진=김지은 기자 |
“사랑하는 우리 아이… 지금 닥친 현실을 이기지 못해 너를 두고 간단다. 너무 미안하고 사랑한다.”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 교회. 이곳은 2009년 12월 국내 최초로 베이비박스가 만들어진 곳이다. 베이비박스는 신생아 양육을 포기할 때 함부로 버리지 말고 몰래 놓고 가라고 만들어 놓은 시설을 말한다. 아이가 새로운 가정을 찾을 때까지 임시로 이곳에서 돌본다. 기자가 12일 주사랑공동체를 찾았을 때 그동안 엄마들이 베이비박스에 아이들을 맡기고 가면서 남긴 편지들이 수백통 쌓여있었다. 손편지에는 “엄마는 너를 항상 생각할 거야” “앞으로 많이 보고 싶을거야” “좋은 집에서 누구보다 더 사랑 많이 받고 행복하길 바랄게”라고 적혀 있었다.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사진. /사진=김지은 기자 |
출생신고 의무화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갓 태어난 아이들이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채 버려지고 있다. 지난해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한 곳에 버려진 아이들만 100명이 넘었다. 올해도 1월부터 5월까지 이곳에 맡겨진 아이는 총 40여명에 달한다.
아기들은 보통 보육원 등 시설로 보내지거나 다른 가정으로 입양된다. 친부모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원가정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보통 시설로 가는 비율이 높은데 2021년에는 113명 중 75명(66%)이 시설로 갔다. 지난해에는 106명 중 65명(61%)이, 올해는 42명 중 29명(69%)이 시설로 보내졌다.
자원봉사자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와 신생아를 돌본다. 자원봉사자 윤미진씨(43)는 “조그마한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행복해진다”면서도 “지금은 우리 아이들과 똑같은 아기지만 10년 뒤, 20년 뒤를 생각하면 이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주사랑공동체에는 매주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아기들을 돌보고 있다. /사진=김지은 기자 |
이곳을 찾는 부모들은 보통 자신의 신원을 공개하고 출생신고를 할 수 없거나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임신과 출산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10대들, 강간 또는 근친상간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이들, 불법체류자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고시촌이나 원룸 등 병원 밖에서 출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주사랑공동체에 따르면 지난해 영아를 맡긴 산모 중 병원 밖에서 출산한 비율은 106명 중 13명으로 12.3%였다. 비율은 전년 대비 6.1% 포인트 상승했다.
이종락 주사랑공동체 교회 담당 목사는 “아기를 막 낳고 하혈된 상태로 온 사람도 있었다”며 “고시촌에서 몰래 아기를 낳고 자살하려던 모자도 있었고 공중화장실에서 아기를 버리고 가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이렇게 병원 밖에서 분만을 하면 아무래도 출생신고가 장기간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또 다른 영아 유기를 막기 위해 출생통보제뿐 아니라 보호출산제도 함께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출생통보제는 부모뿐 아니라 의료기관·국가도 출생신고를 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으로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보호출산제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위기 임산부들이 자신의 정보를 익명으로 처리해 출생 등록을 하고 지자체를 통해 위탁기관, 입양기관에 아이를 보내도록 하는 법이다. 지금은 부모가 신원을 공개해야만 입양 절차를 거칠 수 있다.
이 목사는 “실명 출산이 어려운 산모가 신원 노출하지 않은 채 아이를 먼저 낳도록 돕고 정부는 영아를 보호하고 입양 절차를 밟게 하는 ‘선지원 후행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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