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리사회가 중견 특허법인 A의 대표변리사와 소속 변리사 등 3명을 ‘제명’ 처분한 사실과 관련, 업계 안팎에서 ‘징계 갑질’ 논란이 커지고 있다.
12일 시장경제신문에 따르면 2020년 12월 중소기업 대표 C는 칫솔 내부에 치약 튜브를 결합한 형태의 특허(이하 선행특허) 출원 업무를 A법인에 의뢰했다. 이듬해 4월 김모씨도 A법인에 특허(이하 후행특허) 출원 업무를 맡겼다. A법인 소속 직원 D는 선행특허 출원 당시 사용된 일부 도면을 참고, 후행특허 등록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자 C는 자신의 선행특허에 포함된 도면과 후행특허 도면이 상당히 유사하다며 A법인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특허를 도용했다고 주장, 올해 초 변리사회에 민원을 냈다. 변리사회는 올해 4월 징계위를 소집, A법인 대표변리사 B와 소속 변리사 2명을 제명하는 의결을 했다.
변리사회는 선행특허와 후행특허 간 유사성을 인정하면서, 징계 대상 변리사들이 발명자로부터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거나 도용해 변리사법 23조(누설·도용의 죄)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변리사법 23조를 위반해 선행특허 출원 당시 사용된 일부 ‘도면’을 도용했다는 것이 제명의 핵심 이유이다. 그러나 여기엔 심각한 법리적 모순이 존재한다.
동조의 구성요건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출원인 등의 특허를 누설하거나 도용한 사실이 재판을 통해 ‘확정’돼야 한다. A특허법인 대표변리사 B 등을 상대로 변리사회에 민원을 접수한 C는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사실을 종합하면 변리사회는 재판은커녕 검찰 기소도 이뤄지지 않은 ‘고소 접수’ 사건을 빌미로, B 등에게 최고 수위 징계인 제명 처분을 내린 것이다.
소속 직원 D의 업무수행과 관련돼 그 행위를 변리사법 23조 위반으로 볼 것인지는 앞으로 진행될 검찰 조사를 통해 1차적으로 가려질 전망이다. 검찰이 혐의를 인정하고 기소 절차를 밟는다면 다음 단계는 법원의 공판절차이다. 법원의 심리를 거쳐 범죄가 확정되면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 등 민사재판이 열릴 수도 있다.
D의 행위에 대해 법원이 죄책을 인정한다고 해서 B 등에 대한 변리사회의 제명 처분이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D의 범죄를 B 등이 함께 모의했거나 지시했거나 최소한 범행을 알고도 이를 묵인했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이런 과정도 없이 변리사회의 자의적 판단만으로 B 등을 제명 처분한 징계 의결은 현행법은 물론 헌법상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 무엇보다 특허업무를 직접 수행하지 않은 법인 대표변리사에 대한 제명 의결은 상식 밖이다.
변리사회 77년 역사 동안 제명 처분을 내린 사례는 이번을 포함해 총 4건에 불과하다.
2건은 무자격자에게 변리사 명의를 대여하고, 수십억 원의 부당이익을 올린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이다. 다른 1건은 법원이 변리사회의 제명 징계 효력을 무효화하면서 마무리됐다.
변리사회가 징계 근거로 삼은 ‘도면 도용’ 이슈와 관련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변리사법 23조가 문제 삼은 특허 도용은 ‘청구범위’ 보호에 목적이 있다. 특허법상 보호 대상은 ‘청구범위’이지 ‘도면’은 아니다. ‘도면’은 청구범위의 참고자료 혹은 보조자료로서 그 유용성을 인정받지만, 그 자체를 특허법상 보호의 대상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 견해이다. 실제 특허 출원 시 도면 제출을 생략할 수도 있다.
특허법 97조는 ‘특허발명의 보호범위는 청구범위에 적혀 있는 사항에 의해 정해진다’고 규정, 보호 대상이 청구범위에 한정됨을 분명히 했다.
우리 대법원은 청구범위의 해석에 대해 “발명의 설명과 도면 등을 참작하더라도 발명의 설명이나 도면 등 다른 기재에 따라 청구범위를 제한하거나 확장 해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대법 2021다217011 판결).
제명 처분을 받은 변리사 3인은 변리사회를 상대로 무효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징계 확정 전, 변리사회가 그 내용을 민원인에게 알려준 행위에 대해서도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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