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가 다 돼가는데 이제 출근해?”, “이것 봐요. 장사가 안되니까 이제 출근하잖아요”
5일 오전 9시40분께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기자와 시장 문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상인 장모씨(57·남)는 10시가 다 되어 들어오는 여성 상인에게 인사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손님이 거의 없다시피 한 시장 안은 수족관이 돌아가면서 내는 전기 소리만 들려왔다. 상인들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휴대폰을 하거나 이웃 상인들과 잡담을 했다. 상인 최모씨(48·남)는 냉소하듯 “최근 저녁 있는 삶이 생겼다”며 “장사가 안돼 요즘에는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출근해서 한 시간 일찍 퇴근하고 있다”고 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노량진 수산시장은 눈에 띄게 한산한 모습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시기를 올여름으로 계획하고 있지만, 불안감이 먼저 엄습했기 때문이다. 상인 이모씨(60·여)는 “코로나 때는 손님이 시장에 직접 오진 않더라도 배송은 했다”며 “이제는 생물 자체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까 배송 문의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상인들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 최종 보고서 발표에도 국민의 수산물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라며, 정부 차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IAEA는 오염수 방류 계획이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보고서 결과를 4일 발표했다. 최씨는 “IAEA에서 오염수 방류가 괜찮다고 한들 누가 신뢰를 하겠냐”며 “암만 보고서가 나온다고 해도 국민들이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하는 이상 답이 없다”고 했다. 김모씨(70·여)는 “일본산을 먹어도 되는 거냐며 난리 치는 손님도 있었다”며 “안전하다고 설명하니 그제야 수긍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곳에서 만난 소비자도 IAEA 보고서가 불안감을 해소해주지 못했다고 했다. 손님 서모씨(63·여)는 “보고서가 나와도 전혀 안전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남편이 수산물을 좋아하는데 늘 걱정이 크다”고 했다. 서씨는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우려로 최근 20㎏ 소금 8포대와 건미역 등을 사놨다고도 전했다. 서씨는 “10포대를 사려했는데 물건이 부족해서 못 샀다”며 “괴담이라고 하지만 국민들은 실제로 불안감을 느끼고 구매에 나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인들은 정부의 어떤 대안보다도 하루빨리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관련 이슈가 잠잠해지길 바라고 있다. 김씨는 “정치권 싸움을 위해 이슈를 계속 이어가는 것 같은데 TV에 정치 뉴스가 나오면 이제 보기도 싫다”며 “이 정쟁에서 손해를 보는 건 어민”이라고 했다. 김씨는 이슈가 되는 걸 바라지 않아 국내외 언론의 취재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장씨 역시 “정부를 신뢰할 수 있도록 과학적 근거를 정부가 잘 제시해야 한다”며 “검증에 자신이 있다면 상인들을 데려가서 함께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고 했다.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씨는 “피해를 보고 있는 상인들을 위해 공과금, 임대료를 지원해준다든가 직접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며 “수산물과 관련된 이슈들은 우리의 생계가 달린 문제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씨는 “일본에 방문하더라도 그냥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다면 그곳에서 확실히 검증해서 국민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한편 정부는 IAEA의 종합보고서에 대해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힌 한편 보고서 내용에 대해서는 자체 심층 분석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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