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은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긴급하게 구급차를 운전하다 이 사건 사고 장소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교통안전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변호인)
업무 중 신호를 어겨 교차로를 통과하다가 오토바이 운전자를 들이받은 구급차 운전자 A씨(34·남)의 형사 재판 이야기다.
A씨는 지난해 2월23일 낮 서울 동작구의 한 교차로에서 시속 약 20㎞로 신호를 위반한 채 좌회전을 했다. 그는 환자를 태우려고 사이렌을 울리며 병원으로 이동하던 상황이었다.
좌회전을 시작하고 약 5초 뒤 A씨의 구급차는 신호에 따라 반대편에서 직진하던 오토바이를 들이받았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골절상을 입는 등 크게 다쳐 12주가량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검찰은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A씨를 교통사고처리법상 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법정에 선 A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에게 도로교통법상 신호와 관련한 정지의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피해자가 전방주시 의무를 게을리해 구급차를 충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29조 2항에 따르면 구급차와 소방차 등 긴급자동차는 긴급하고 부득이한 경우 빨간불에 정지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같은 조 3항은 “이 경우 운전자는 교통안전에 특히 주의하면서 통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0단독 강민호 부장판사는 최근 A씨의 혐의를 유죄로 보고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우선 “도로교통법 제29조 2항이 ‘긴급자동차 운전자에 대해 의무 규정의 적용을 모두 면제하라’는 취지의 규정이라고 해석할 수 없다”며 “진행 방향에 사람이 보행하거나 자동차가 교차 진행하는 경우 당연히 정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구급차는 특례가 적용되는 긴급자동차에 해당하지 않는다. 신호에 따라 정지하지 않을 수 있는 ‘긴급하고 부득이한 경우’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한 “운행 과정에서 도로 교통에 새로운 위험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구급차를 긴급자동차로 규정하기 위한 ‘긴급한 용도’는 엄격히 판단돼야 한다”며 A씨가 태우려던 환자는 응급 상태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이송을 요청한 사람이 의료진이 아닌 환자의 보호자였고, 최종 목적지가 요양원이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환자가 응급 상태였다고 A씨가 판단할 근거 역시 부족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신호를 지키더라도 지체되는 시간은 최대 수분 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다. 사고 위험을 무릅쓰고 신호를 위반할 만큼 긴급하고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었다”며 “피고인이 직진 차로를 주의 깊게 봤다면, 피해자의 오토바이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이 긴급자동차 요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구급차를 운전한 점, 전방의 구급차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진행한 피해자의 과실도 사고 발생의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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