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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날 감시” 창문 막고 자해…’이 약’ 먹고 지옥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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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약 지으려고요?”…15분만에 의료용 마약 처방받았다

머니투데이 취재진이 처방받은 식욕억제제 '디에타민'. 접수 후 의료용 마약류 처방전이 나오기까지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사진=머니투데이 취재진
머니투데이 취재진이 처방받은 식욕억제제 ‘디에타민’. 접수 후 의료용 마약류 처방전이 나오기까지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사진=머니투데이 취재진

서울 종로구에 있는 A 의원. ‘비만에 대한 걱정! 원장 선생님과 상담하세요’라고 쓰인 대형 입간판을 지나 입구에 들어서자 접수대에 의료진이 보였다. 처음 방문했다고 하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연락처를 적어달라는 안내를 받았다. 어디가 아파서 왔는지 등 방문 목적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접수 후 1분 만에 진료실로 이동했다.

의사는 키와 몸무게를 비롯해 약물 다이어트를 한 적 있는지, 식탐은 어느 정도인지 물어봤다. 그는 “2주 동안 보조제와 함께 먹어보고 다음에 식욕억제제만 가져갈 수 있다”며 2주 치 약을 처방했다. 처방전에는 식욕억제제인 디에타민과 함께 총 4개의 약이 기재됐다.

같은 날 서울 구로구의 B 의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직원은 “다이어트약 지으러 오셨냐”고 묻더니 A4 한 장 분량의 사전 문진표를 내밀었다. 키와 몸무게, 다이어트 약물 복용 경험, 현재 체중과 목표 체중, 식욕 성향, 수면장애 여부 등을 작성해 제출하자 직원이 상담 방으로 안내했다. 상담방에서는 2주 치나 4주 치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복용 방법을 안내했다.

진료를 받으러 들어가자 의사가 다시 한번 문진표 내용을 확인했다. 의사는 문진표와 구두 설명에 따라 약을 처방했다. 이번에는 ‘펜홀드정’이 처방됐다.

머니투데이 기자들은 지난 2일 의료용 마약류 처방이 얼마나 쉽게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이어트 성지’로 불리는 서울 소재 의원들을 방문했다. 디에타민은 알약 모양이 나비처럼 생겨 일명 ‘나비약’으로 불린다. 예쁜 모양과 달리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펜홀드정은 펜디메트라진 계열로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돼 있다.

서울 구로구의 B의원에서 처방받은 식욕억제제 펜홀드정. 펜홀드정은 펜디메트라진 계열로 펜터민 계열과 마찬가지로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돼 있다./사진=머니투데이 취재진
서울 구로구의 B의원에서 처방받은 식욕억제제 펜홀드정. 펜홀드정은 펜디메트라진 계열로 펜터민 계열과 마찬가지로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돼 있다./사진=머니투데이 취재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기준에 따르면 식욕억제제 사용 대상은 외인성 비만 환자들이다. △적절한 체중감량 요법에 반응하지 않는 초기 체질량지수(BMI) 30kg/㎡ 이상 △당뇨 등 다른 위험인자가 있는 BMI 27kg/㎡ 이상 환자의 경우 체중감량 요법의 단기간 보조요법으로 식욕억제제가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취재진이 방문한 병원 중 체질량 지수와 키·몸무게를 측정하는 곳은 없었다. 까다로운 절차 없이 처방받기까지 15분이면 족했다.
문제는 이 같은 식욕억제제가 다이어트 목적으로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식욕억제제는 마약의 대체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등의 성분이 포함된 식욕억제제를 과다 복용할 경우 환각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따라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투약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대리 구매 역시 불법이지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나비약’을 검색하면 “#디에타민 #나비약 #펜터민 #식욕억제제 댈구(대리구매)해요.”라는 식의 글이 다수 확인된다. “‘댈구’해 달라”는 말은 자신 대신 약을 구해다 주면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뜻이다.

최근 10대 청소년들 사이 이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아 투약하거나 SNS를 통해 판매하는 사례는 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노원경찰서는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은 후 온라인에서 판매한 35명을 체포했다. 이중 절반이 넘는 19명이 10대 청소년이었다. 지난해 6월에도 경남 지역에서 나비약을 사고판 10·20대 59명이 검거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의료용 마약류 처방과 제조가 꼭 필요한 사람을 대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청소년기는 뇌 발달이 급격하게 이뤄지는 시기”라며 “청소년기 마약류를 투약하게 되면 충동성이 올라가고 중독이 되기도 쉽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용 마약류의 경우 정말 약이 필요한 사람을 대상으로 보수적으로 처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코올학과 교수도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 청소년들이 의료용 마약류를 사고파는 게 문제가 되고 있다. 청소년들이 지능적으로나 사회 환경적, 문화적으로 의료용 마약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게 우려되는 지점”이라며 “한 사람이 여러 병원을 돌며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약 처방이나 제조 시 환자의 투약 이력을 확인하는 시스템 시행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을 단속하고자 지난해 11월과 지난달 식욕억제제 분야 점검을 실시했다. 또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 처방 정보를 분석해 추적 관찰을 통해 처방 개선 여부를 관리할 예정이다.

지난달 25일에는 의사가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할 때 환자의 처방 투약 정보를 의무적으로 확인하도록 하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식·의약 분야 6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차 6대 들이받고 자해 시도하고… ‘나비약’ 지옥에 빠진 사람들

디에타민 나비약 사진. /사진=트위터
디에타민 나비약 사진. /사진=트위터

올해 19살인 김희진양(가명)은 지난해 식욕억제제 디에타민, 일명 ‘나비약’을 처방받기 위해 동네 내과 병원에 갔다. 평소 우울증을 앓아 정신과 치료약을 복용했는데 불과 3개월 만에 살이 30kg 이상 쪘기 때문이다. 그는 “폭식증이 와서 식욕 억제가 안됐다”며 “인터넷 검색을 해서 다이어트약을 처방해주는 병원에 가게 됐다”고 말했다.

의사는 김양이 18살 미성년자이고 우울증약을 복용한 사실을 알았지만 디에타민 4주치를 처방해줬다. 김양은 “처음 병원에 갔는데 생각보다 약을 너무 쉽게 줘서 깜짝 놀랐다”며 “주의사항도 구체적으로 안내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양은 나비약을 복용한 뒤 실제로 살이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입맛이 뚝 떨어져서 음식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뒤따랐다. 그는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급격하게 우울해졌다”며 “디에타민에 각성효과가 있어서 밤마다 잠이 안 오고 날을 샜다”고 말했다.

정신과 치료약과 디에타민을 함께 복용하다 보니 불안감은 증폭됐다. 내 몸을 괴롭히고 싶은 강한 자해 충동을 느꼈다. 그는 “그날 아침 디에타민 10알과 정신과 치료약 20알을 한 움큼 먹었다”며 “약을 과도하게 복용해서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 갔다. 어지럼증에 숨도 안 쉬어지고 토까지 했다. 지금까지도 후유증으로 수전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공한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기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공한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기준

‘다이어트 약’으로 불리는 식욕억제제가 불면증, 우울증 등 여러 부작용을 낳아 논란이 되는 가운데 일부 복용자들은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조현병을 앓게 된 사례까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당 약물을 복용한 채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도 잦아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병원에서 식욕억제제로 처방받는 ‘나비약(디에타민)’의 경우 펜터민 성분이 포함돼 있다. 펜터민은 불안감, 어지럼증, 불면증, 갈증, 발작 등의 부작용이 있다. 과다 복용할 경우 우울증, 성격 변화, 의존성, 폐동맥 고혈압 등을 겪기도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펜터민은 다른 식욕억제제와 병용해선 안 되고 3개월 이상 복용하는 것도 안 된다.

부작용은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다이어트약을 먹은 뒤 빵집 등에 침입해 상습적으로 절도를 한 30대가 최근 징역 1년6개월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는 2021년부터 2년여간 서울과 대전지역에서 14차례 음식과 옷, 귀금속 등을 훔치다 적발됐는데, 다이어트약을 수십알씩 먹은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에는 제주에서 폭주 운전을 하며 차량 6대를 들이받은 20대가 검거됐다. 그 역시 경찰 조사 과정에서 “식욕억제제를 7종을 장기간 복용해 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짜 무섭고 이상한 약” 조현병 진단까지 받은 동생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식욕억제제가 한 가족의 일상을 무너뜨린 사례도 있다. 평소 다이어트 강박증이 있었던 20대 최유희씨(가명)는 3년 전 중고 사이트를 통해 디에타민을 처음 구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됐고 검찰은 최씨가 초범인 점을 고려해 기소유예 판단을 내렸다.

그로부터 1년 뒤, 최씨는 다시 식욕억제제를 찾았다. 당시 그의 키는 160cm, 몸무게는 51kg였다. 그는 지인 이름을 빌려 한 산부인과에서 마약류 펜터민 성분의 펜 키니 정을 대리 처방받았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처방이 가능했을 때는 가정의학과에서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아 동시 복용을 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최씨는 정신분열 증상을 보였다.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며 집안의 모든 창문을 신문지로 막고 흉기로 자해를 수없이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섭외된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씨 언니는 “동생이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고 울다가 소리 지르다가 화내다가 무서워 덜덜 떨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현재 최씨는 대학병원에서 조현병 치료를 받고 약 복용을 중단한 상태다. 하지만 후유증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기분장애는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꾸준히 치료해야 한다”며 “이런 무서운 약이 무분별하게 처방되는 우리나라가 정말 이상하다”고 말했다.

◇한번 시작하면 끊을 수 없다… 지옥의 굴레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승무원인 30대 신유아씨(가명) 역시 지난해 디에타민을 복용하고 2주 만에 3kg를 감량했다. 그는 “직업 특성상 외모 관리가 중요한데 나비약을 먹으면 정말 신기하게도 식욕이 뚝 떨어진다”며 “살기 위해서 억지로 밥 2~3숟가락을 떠먹을 정도다. 효과가 바로 나타나니까 계속 손을 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박성민씨(가명)는 처음엔 살을 빼기 위해 약을 복용했지만 점점 기분 전환을 위해 약에 의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개월 동안 낮에는 디에타민, 저녁엔 수면제를 먹으며 지냈다.

박씨는 “식욕억제제를 먹으면 20시간 넘게 밤에 잠이 안 온다”며 “어쩔 수 없이 수면제를 먹게 되는데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약 부작용 때문에 무기력하다. 몽롱한 정신을 깨우려면 다시 디에타민을 먹게 된다. 핑퐁처럼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10대 마약사범 느는데…마약강사 1명이 1만1000명 가르쳐야

경남경찰청이 2021년 5월 10대 마약사범들을 상대로 압수한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패치./사진=경남경찰청 제공
경남경찰청이 2021년 5월 10대 마약사범들을 상대로 압수한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패치./사진=경남경찰청 제공

“마약이 전세계적으로 문제죠. 그런데 뾰족한 수가 없어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도 법이나 제도를 갖춰두고 처벌을 강하게 하고 있지만 마약 근절을 못하고 있잖아요. 결국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인식을 개선시킬 필요가 있다고 봐요. 아마 기성세대 중에 약물 관련 교육 제대로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김대규 경남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장의 말이다. 그는 2021년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패치를 투약한 10대 청소년 42명을 검거했다. 올해는 10대 운반책 등 마약사범 100명을 검거하는 등 경찰 내 최고 마약 수사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최근 식욕억제제 등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다양한 해결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담당 부처인 식약처는 단속을 강화하면서 오남용을 막기 위한 시스템 도입을 준비 중이다. 국회도 관련 법률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제도적 준비에 더해 마약류 오남용 예방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교육을 할 수 있는 전문인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마퇴본부)와 교육부 등에 따르면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대상 마약 예방교육에 투입할 수 있는 전문강사는 지난달 기준 463명이다. 마퇴본부가 선발한 예방교육강사 136명과 법무부에서 선발한 법교육전문강사 327명이다. 520만여명에 달하는 전국의 초·중·고등학생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학교보건법 등에 따라 초·중·고등학교에서는 학급별로 매년 10시간의 약물 오남용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전문강사가 없으면 담임교사나 보건교사가 담당해야 한다. 이와 별개로 법무부는 올해 전국 학교를 대상으로 마약류 관련 법교육을 1300회 실시할 예정이다.

마퇴본부 관계자는 “확보한 예산과 인력을 바탕으로 수업 참여 시수를 분석해 보면 최근 5년간 전체 초중고 약물 오남용 교육 수요의 5~7% 정도인 연간 4000회 정도를 마약퇴치운동본의 전문강사가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퇴본부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상대로는 마약류의 정의 오용·남용의 개념 △초등학교 고학년에 카페인 계열 물질 등을 학습하며 중독의 증상과 문제점을 △중학생부터는 마약류관리법 위반에 따른 처벌과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고등학생을 상대로는 해외 여행과 클럽 방문시 주의점 등 성인에 가까운 교육 등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향정신성 의약품 '프로포폴'/사진= 뉴시스
향정신성 의약품 ‘프로포폴’/사진= 뉴시스

한 지방경찰청 마약전문 수사관은 “요즘은 배우 유아인 등 유명인들이 마약을 하면 유튜브나 틱톡에서 검색해서 보는데 알고리즘 때문에 이후에 마약 관련 정보가 계속 제공되고 이런 식으로 발생하는 유해한 정보와 아이들의 접촉을 막을 수가 없다”며 “교육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규 계장은 “고등학생들이 다이어트약을 나눠먹거나 먹다 남은 약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다가 수사를 받을 수도 있다”며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에 정상적인 처방을 받아 투약하면 문제가 없지만 마약류에 대한 이해가 없이 행동하다가 경찰 수사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많은 학생들이 잘 모르고 있다”고 했다.

한편 마약류관리법에 따르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된 ADHD 치료제, 식욕억제제, 신경안정제 등을 처방받은 후에 친구나 이웃에게 나눠주는 행위는 ‘마약류 수수’에 해당한다. 마약류로 지정된 의약품을 의료인의 지도와 허가 없이 투약해서도 안 된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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