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7호선 동작역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이모씨(31)는 지난해 8월 기록적인 폭우로 지하철 역사가 잠겼던 사건을 잊지 못한다. 이씨는 “어릴 때 계곡에 갔다가 물에 빠질 뻔한 적이 있어 몸 일부가 물 속에 들어간 느낌을 싫어한다”며 “그 때부터 폭우 피해자가 뉴스가 아닌 자신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7일 질병관리청이 단국대 의대 예방의학교실·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학과 연구팀과 함께 처음 실시한 ‘2022년 기후보건 대국민 인식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8명은 현재 지구온난화 등에 따른 기후변화가 건강에 위협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8월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폭우가 발생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13명이 사망하고 약 1500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바 있다. 저지대인 서울 강남 한복판이 물에 잠기고 동작역·이수역 등 지하철역이 침수된 장면을 직접 보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알게 되면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알려졌다.
그 해 8월29일~9월7일까지 열흘간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현재의 기후변화가 국민 건강에 위협을 미친다는 응답이 84.4%로 나타난 것이다. 이중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란 응답이 66.7%였고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란 응답이 17.7%였다.
미래로 갈수록 기후변화에 따른 국민 우려는 크게 늘어난다. 5년 이내 기후변화가 건강 위협이 될 거란 응답이 88.6%, 20년 내가 93.5%, 50년 이내가 90.2%로 조사됐다. 실제 기상청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이 수준으로 간다면 21세기 중반기가 됐을 때 폭염·폭우일수가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봤다. 기후위기에 따른 국민들의 건강 우려가 기우가 아닌 셈이다.
응답자의 87.4%는 당장 기후변화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매우 걱정한다가 40.0%, 걱정하는 편이 47.4%였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기인한 건강영향 위험 인식은 63.2%로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었다. 기후위기에 대한 세대 간 차이도 있었는데 온열질환 사망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60세 이상은 70.5%로 높았지만 20대는 42.9%로 가장 낮았다. 기후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30.3%에 불과했다. 국민 10명 중 7명은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질환정보, 기후보건정책, 안전·행동 및 대응수칙 등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이번 2022년 기후보건 대국민 인식조사는 제1차 기후보건영향평가 결과를 토대로 다양한 맞춤형 정보 요구도와 기후보건 정책방향을 살펴보기 위해 실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에서는 고조하는 기후위기 상황에 따른 건강문제에 대해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발빠르게 대응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UN)은 기후위기에 따른 건강취약계층 발굴과 건강영향평가를 실시하라고 권고한다. ‘유엔 산하 기구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6차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문제에 따른 건강영향 위험성을 강조하고 기후문제 범위에 신체건강과 정신건강 부문을 포함하고 있다.
질병청은 이제 우리나라도 기후위기는 개인의 시급한 건강 문제로 의식 변화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질병청은 관계부처 간 협력을 통해 기후보건 정책 수립에 필요한 근거자료를 마련하는 한편 국민들의 기후보건 인식 제고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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