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2개월에 ‘척수성근위축증(SMA)’이란 희귀난치병을 진단 받은 민경현씨(33). 몸이 굳어가는 와중에 9년이란 시간을 매진해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4개월이면 숨질 거라던 아이는 이리 살아 남았다. 그러나 30년을 기다린 치료제는 건강보험에서 탈락해 맞을 수 없게 됐다. 경현씨 어머니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경”이라고 �다./사진=민경현씨 제공 |
둘째 손가락 하나로 한 글자씩 친다. 민경현씨(33)가 타자 치는 법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A4 한장을 쓰는데 남들이 5분이면, 경현씨는 1시간이다. 그 어려운 물리학을 공부해, 그리 9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한 글자씩 쳐서, 80쪽짜리 박사 논문을 완성했다. ‘물리학 박사’가 됐다.
생후 12개월에 척수성근위축증(SMA)이란 걸 알게 됐다. 온몸의 근육이 약해지고 굳었다. 의사의 ’24개월 시한부 선고’를 어머니 정윤주씨(60)는 무한한 희생으로 무력화시켰다. 호흡이 약해져 죽을까 싶어, 밤마다 아이 머리에 코를 박고 잤다. 평범한 통잠은 꿈 같은 거였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답없이 죽음으로 향하는 병의 치료제가 나오기를. 응급실을 갔다 오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또 힘들 때마다 어머니는 경현씨에게 이리 말했다.
민경현씨가 쓴 물리학박사 논문. 어머니의 말대로 살아남았고, 공부에 매진해 이리 업적을 이뤘다. 그러나 병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치료제가 나왔지만 워낙 고가라 맞을 수 없다./사진=남형도 기자 |
“오래만 살아 있어라. 언젠가 약이 나올 거야.”
30년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해 마침내 ‘치료제’가 나왔단 소식을 들었다. ‘스핀라자’란 이름이었다. 그런데 가격이 워낙 고가였다. 주사 한 번에 1억원이었다. 건강보험이 적용돼 600만원에 주사를 맞았다. 당장 숨을 쉬는 게 좋아졌다. 연구하는 시간도 2배 이상 길어졌다.
그런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서 지난해 ‘탈락’을 시켰다. 나이가 많아 치료 효과가 덜하단 게 이유였다. 그 효과를 측정하는 건 ‘운동 기능 평가’로 한다. 앉기, 구르기, 점프하기, 계단오르기 같은.
척수성근위축증 환자들에게 치료제를 줄지 말지, 결정하는 평가 기준인 해머스미스. 그 항목 중 하나로, 예를 들면 ‘레일 잡고 계단 내려가기’ 등을 본다. 못하면 0점, 4계단 모두 내려가면 2점이다. 치료제를 받기 위해선 점수를 유지하거나 올려야 한다./사진=해머스미스 기준 |
경현씨가 하기엔 힘든 동작들이다. 그는 치료제가 없던 긴 세월을 버텨왔다. 그러는 동안 이미 근육이 많이 굳었다. 대학교 땐 손을 올릴 수 있었으나, 지금은 손가락 펴주는 것도 도와야 가능하다. 윤주씨는 “대학교 때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내가 모르는 사이, 우리 아이가 많이 진행되고 있었구나 싶었다”고 했다.
이리 속절없이 진행되는 병이다. 나빠지지만 않아도 기적이다. 그런데 ‘운동 기능’으로 효과를 따져 치료제를 준다. 그럼에도 살기 위해선 너무 간절하다. 평생 한 번만 맞으면 되는 ‘졸겐스마’란 치료제도 나왔다. 25억짜리 주사라 그림의 떡이다. 만 18세 이상이 투여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도 30년을 버틴 아들에게 꼭 맞춰주고 싶다고 했다. 1년 걸린 논문은 6개월로 줄 거라고. 평생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단 아이가 얼마나 나아지겠느냐고. 윤주씨는 간절하게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 많은 분이 누굴까, 한 번만 부탁해보면 안 될까 생각해요. 이재용 회장님, 이부진 사장님을 찾아가야 할까요. 전 재산을 투자해서라도 치료제를 주고 싶은데, 삶이 녹록지가 않네요. 이젠 약이 나왔는데…”
매일 굳어가는데 “운동 점수 낮으면 치료제 탈락”…기준이 왜 이런가
척수성근위축증(타입 2) 환자인 권미정씨./사진=권미정씨 제공 |
거듭 강조하면, 이 병은 점점 근육이 약해지고 굳는다. 매일 진행되기 때문이다. 20대 척수성근위축증 환자인 권미정씨(타입 2) 기억도 그랬다.
첫 돌 : 까치발을 들고 가만히 있었다.
영유아기 : 낮은 책상을 손으로 짚고 엉금엉금, 한 바퀴를 빙 돌았다.
3살 : 전동 휠체어를 탔다.
20살 이후 : 대부분 누군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 부분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상황이 이런데, 치료제를 주기 위해, 심평원이 만들어둔 건 주로 ‘운동 기능 평가’다. 24개월 이전 환자는 ‘머리가누기’, ‘움켜쥐기’, ‘발차기’ 기어다니기’ 등으로 점수를 매긴다. 24개월 이후 환자는 ‘구르기’, ‘앉기’, ‘점프하기’, ‘계단오르기’ 등을 본다.
글을 쓰기 위해 안구마우스로 눈을 깜빡이는 척수성근위축증 환우 신형진씨. 그런 이들에게 ‘운동 기능 평가’를 해서 치료제를 주겠다는 거다./사진=신형진씨 |
환자들은 이를 어떻게 느낄까. 권미정씨는 “이미 많이 진행된 제 병 상태와, 구축된 몸은 평가 도구를 견디기 너무 힘들다”며 “표면상으론 1점인 점수가 제게는 10점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홀로 다리를 세운 채 버티지 못하고, 팔을 홀로 책상에 놓지 못하고, 온전한 호흡도 힘들어 사레들리는 환자. 그런 그에게, 혼자 돌아눕고, 엎드려 고개를 들고, 엎드린 몸을 짚고 일으켜야 점수를 주고, 치료제를 준다고 하는 거다.
심지어 척수성근위축증 타입1 환자들에겐 더 힘들다. 이들은 태아나 영아 때부터 근육이 심각하게 약해진다. 호흡하기도 힘들고, 머리도 가누지 못한다. 호흡기쪽 감염이 빈번해 폐렴과 합병증이 생긴다. 2살이 되기 전, 세 명 중 두 명은 숨진다. 진행을 멈춰야 살아 남는다. 생존을 위한 치료다.
폐활량과 호흡횟수, 저작기능 개선 등이 실질적 ‘치료 효과’…”기준에 반영해야”
척수성근위축증 1형 환자인 윤서연양(13). 기적 같던 치료제였으나, 건강 보험 급여에서 탈락해 다시 빼앗겼다. 운동 기능이 남아 있지 않은 아이인데, 운동 기능으로 평가해 점수를 매겼다./사진=윤서연양 아버지 윤정호씨 |
그러니 심평원의 스핀라자 ‘급여 기준’을 바꿔야 한단 지적이 끊임없이 나온다. 운동 기능 위주로만 보지 말고 개선하란 거다. 환자들이 느끼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치료 효과’는 점프나 계단오르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척수성근위축증 환자들이 스핀라자를 맞고 좋아진 건 이런 거였다. SMA 청년 스핀라자 공동대응 TF가 꼽은 건 △씹고 삼키는 등 먹는 게 나아지는 것 △호흡기를 쓰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폐활량이 느는 것 △ 호흡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 등이다.
TF는 “이런 항목이 평가지에 없다고 약 효능이 없다고 보는 건, 의사들조차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는 부분”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환자들이 치료로 ‘삶의 질’이 나아진 부분도 평가 기준에 넣어야한다고 했다. 예컨대, 시선처리가 빨라졌다면. 그로 인해 안구마우스 사용이 쉬워지고 글자를 쓸 수 있게된다. 중심을 더 잘 잡게 됐다면, 등받이 없이 앉아서도 메일을 보낼 수 있게된다. 이런 일상적인 일들 역시 치료 효과이며, 심평원 평가 기준에 넣어야한단 거였다.
오죽 답답하고 속상했으면, 척수성근위축증 환자들이 직접 평가 기준을 마련했을지. 약은 비싸고, 환자들은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이들을 위해선 심평원의 ‘급여 기준’이 바뀌어야 한단 지적이 많다./사진=SMA 청년 스핀라자 TF |
여기에 꼭 감안해야할 부분은 또 이런 거였다.
“치료제를 알고 난 뒤부터 희망으로 숨이 힘차게 차올랐습니다. 맞게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감사함을 놀라움으로, 놀라움을 기적으로, 기적을 일상으로 만들어주세요. 누구에게나 공평한 온기가 찾아오길 바랍니다.”(권미정씨)
“멈추지 않는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느낌이었어요. 진행되지 않으려면 엄청 재활을 열심히하고, 뭔가 해야했던 거지요. 숨 돌릴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도 몇 년 지나면 나빠져 있고, 하던 걸 못하게 되고요. 약을 맞으면서 처음으로, 그 러닝머신 위에서 내려왔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멈춰져 있던 세상이 다시 흘러가는 것 같았습니다.”(김서연 SMA 청년 스핀라자 TF 홍보부장, 척수성근위축증 2형 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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