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 디자이너 /사진=이지혜 |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에 제소되는 사안 중에는 비교적 경미한 사안도 다수 포함돼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이 피해 학생을 다시 제소하는 이른바 ‘맞폭’ 사례도 생겨났다. 교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갈등마저 학폭위에 올라오면서 정작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할 교사들의 역할은 제한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22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학교폭력위원회 학폭위 심의 건수는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학폭위 심의가 시작된 2020학년도에는 8357건이었지만 2021학년도 1만5653건으로 늘었다. 2022년은 8월 말까지 집계된 심의만 9796건이다.
학폭위가 처분한 조치 중 상당 부분은 경징계에 해당한다. 가해 학생 한 명에게 중복 조치가 가능한데 지난해 1학기 열린 학폭위 1호 서면사과 63.1%, 2호 접촉금지 78.5%, 3호 교내봉사 48.8% 등 상당수가 가벼운 처분으로 마무리됐다. 1~3호는 1회에 한해 생활기록부에 기재가 유예되는 경징계다.
학교 안팎에서는 비교적 사소한 갈등까지 학폭위에 제소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에서는 한 초등학생이 친구의 마스크를 잡아당겼다가 학폭 가해자로 학폭위에 제소된 사례가 있다.
또 다른 초등학교에서는 남학생이 현장학습을 가는 버스에서 의자를 뒤로 젖히는 레버를 당기다가 뒤에 앉은 여학생의 허벅지에 접촉했다며 학폭위에 제소됐다. 이 사안은 학폭위 심의 결과 가해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처분없음으로 종결됐다.
이에 더해 현장에서는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이 피해 학생으로부터 당한 다른 피해를 모아 반대로 학폭위를 제소하는 이른바 ‘맞폭’도 등장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30대 박모 교사는 “학폭위에 제소된 가해 학생 측이 본인의 피해나 다른 학생들의 피해를 모아 반대로 제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막상 들여다보면 ‘누가 놀렸다’ 같은 경미한 사안이 흔하다”고 했다.
교사들은 절차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학교가 학교폭력 사건을 인지하는 경우 피해학생이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학폭위로 사안을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20대 A 교사는 “학생이 생활지도부장을 찾아가서 ‘선생님 00이가 욕했어요’라고 이르기만 하면 올라가는 것”이라고 했다.
학폭위가 시작되면 교사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담임교사는 중립성을 이유로 학생이나 학부모와의 면담도 제한된다. 학폭 사안에 대한 사실관계 파악도 교내 학교폭력 전담 교사가 일임한다.
A 교사는 “담임 교사의 역할은 학폭위에서 결정된 처벌(처분)을 이해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갈등을 중재하고 가해 학생을 교육해야 할 교사의 역할이 사실상 실종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미한 사안에서는 교내에서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는 요구가 고개를 든다. 2020년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학폭 자체해결 과정에서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사이의 관계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을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해당 발의안은 현재까지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학폭위 전 또는 심의중 단계에서 중재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학폭 사건을 다수 담당한 교사 출신 박은선 변호사(법률사무소 이유)는 “현재는 학폭위에 올라온 사안은 양쪽 모두가 원하지 않는 이상 심의위원들이 합의나 조정을 시도할 수가 없다”며 “학폭위 안에서 합의나 조정을 시도하는 절차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또 학교폭력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활동을 목적으로 설립된 푸른나무재단의 최선희 상담본부장은 “성 관련 또는 가해 정도가 심각한 사안이라면 엄벌이 우선”이라면서도 “경미한 학폭 사안에서는 외부 전문가들이 학교에 가서 관계 회복과 관련한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