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집행2과 유재승 수사관은 요즘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평소 같으면 책상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켜고 일정 체크부터 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가 사무실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사무실 한 켠에서 키우고 있는 비둘기의 생사 확인이다. 밤새 숨이 잘 붙어있었는지, 혹시 어디 이상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지 세심하게 살펴본다. 그리고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고 마실 물도 채워준다. 유치 업무를 하는 직원들 중 막내라는 이유로 비둘기 사육을 전담하게 된지 거의 한달이 다 돼간다.
지난달 27일 대략 60~70대로 보이는 노인이 검찰에 체포돼왔다. 노인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선고받은 벌금 290만원을 납부하지 못해 체포됐다. 벌금을 납입할 돈이 없었던 노인은 어쩔 수 없이 벌금형을 대체하기 위해 노역장에 유치돼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체포돼온 노인은 한 손에 투명한 어린이용 옥스포드 블록 장난감 박스를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 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담겨 있었던 것. 사실상 노숙 생활을 해온 노인이 가족처럼 애지중지 기르고 있던 비둘기였다.
현행 법령상 구치소나 교도소 등 수용시설에는 살아있는 생물의 반입이 금지돼 있다. 노인의 가족이나 친구 등 지인에게 비둘기를 맡겨야 될 상황이었지만 노인에게는 마땅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노인의 비둘기는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비둘기가 아니라 새장에 넣어 키우는 애완용 앵무비둘기였다. 박스 덮개를 열어 놔도 날아가지 않는 비둘기를 억지로 풀어주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결국 고민 끝에 집행2과 직원들은 노인이 노역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비둘기를 맡아주기로 맘 먹었다.
유 수사관은 “최대한 지인 분들이나 연락되는 분들을 찾아봤는데 안 계셔서 일단은 저희가 맡기로 했었습니다”라며 “비둘기를 처음 봤을 때 좀 막막하긴 했는데, 과장님께 보고드리고 저희 직원 분들도 다 괜찮다고 하셔가지고…”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낯선 환경에서 비둘기가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생겨 죽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노인에게 ‘보관 중 혹시 비둘기가 죽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취지의 서약서도 받았다.
사무실 한쪽 탁자에 비둘기가 들어있는 박스를 놓고, 박스 바닥에 깨끗한 신문지를 깔았다. 그리고 햇반 용기에 생수를 담아주고, 박스 위에는 새에게 모이를 줄 때마다 사용할 손 소독제도 비치했다. 김상우 집행2과장은 “과비로 모이 정도 사서 먹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에 한 번도 새를 키워본 적이 없었던 유 수사관은 “처음에는 모이를 얼마나 자주, 얼마만큼씩 줘야 될지 몰라서 막 줬는데, 너무 주는 대로 다 받아먹어서 지금은 나눠서 주고 있다”라며 “아침, 점심을 저희가 챙겨주는데 저녁에는 못 챙겨주니까 미리 좀 많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비둘기가 날개를 푸드덕거리거나 소리내 울지 않아 업무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다른 부서 직원들이 구경을 오기도 하면서 사무실은 더 활기차졌다.
유 수사관은 “원래 대화가 그렇게 많지 않은 부서였는데 비둘기가 오면서 직원들 사이에 대화가 늘어나서 좋았다”고 말했다.
벌금 290만원을 미납해 노역장에 유치된 노인은 하루 일당을 10만원으로 계산해 총 29일간 노역장에 유치돼 있다가 24일 자정 풀려난다. 하지만 25일 바로 비둘기를 찾아가지는 못 할 것으로 보인다.
유 수사관은 “노인 분께서 24일까지 유치 집행하시고 찾으러 오신다고는 하셨는데, 이분이 걸어서 오실 생각이신 것 같았다”라며 “구치소에서 검찰청까지 걸어오시겠다고 하셔서 저희가 한 5일 정도는 더 데리고 있을 테니까 그때까지 찾으러 오시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막상 보내려고 하니까 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같다”며 그새 정든 비둘기와 헤어지는 서운한 심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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