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낀 지자체서 떼로 나타나…”생태계 건강하다는 증거”
입 없어 물지 않고 전염병도 안옮겨…수명 길어야 일주일
피해 일으키지 않지만 ‘징그럽고 많다’라는 이유로 박대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홍준석 기자 = 집에 침입한 강도가 집주인더러 나가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꼴이다.
몸길이 18~22㎜에 이보다 긴 50㎜ 정도 날개를 가져 ‘팅커벨’이라는 별명을 가진 동양하루살이(Ephemera orientalis)한테는 지금 사람들 행태가 ‘집주인에게 나가라는 강도의 요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근 한강 등 큰 하천을 낀 지역에 동양하루살이 떼가 나타났다.
주민들은 동양하루살이 ‘습격’으로 괴로움을 겪는다고 호소한다.
동양하루살이로서는 졸지에 습격자가 됐으니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살이는 전 세계에 분포하며 종류가 19과 2천100여종에 달한다.
이 가운데 11과 50종 정도가 국내에 서식한다.
국내에 서식하는 하루살이는 크게 가는무늬하루살이, 무늬하루살이, 동양하루살이, 사할린하루살이 등 4종이다. 가는무늬하루살이는 해발고도가 500~1천m인 하천 상류, 무늬하루살이는 고도 100~500m의 중류, 동양하루살이·사할린하루살이는 고도 100m 이하 하류에 산다.
이름이 하루살이라고 정말 하루만 사는 것은 아니다.
유충일 때까지 고려하면 대부분 하루살이가 1년 또는 그 이상 살고, ‘하루’는 성충이 돼 날개가 돋고 나서 수명이다. 특히 동양하루살이 암컷은 짝짓기 후 수면 위에 내려앉아 2천~3천개 알을 낳은 뒤 바로 죽는다.
동양하루살이는 굳이 분류하면 해충이 아니라 익충이다.
생태계에든, 인간에게든 해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 설명이다.
동양하루살이는 성충이 되면 입이 퇴화해 먹이도 먹지 않고 짝짓기에만 몰두한다. 입이 없으니 사람을 물지 않고 전염병도 옮기지 않는다.
유충은 일반적으로 1㎝ 이내 모래 속, 때에 따라서는 모래를 10~20㎝ 깊이로 파고든 뒤 산다. 2급수 이상 되는 깨끗한 물에서 살기에 수생태계가 건강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지표종으로 꼽힌다.
한강 주변 도심에서 동양하루살이 대량 출현은 사실 한강이 건강하다는 증거로 환영할 일인 셈이다.
동양하루살이 유충은 하천의 유기물을 먹어 물질을 순환시키기도 한다.
또한 유충과 성체 모두 물고기와 새 먹이가 되므로 수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종이다.
동양하루살이는 1년에 두 번 우화(유충이 날개가 있는 성충이 됨)한다. 5~6월과 8~9월인데 앞서 우화하는 쪽이 대체로 몸집이 크다. 동양하루살이가 떼로 나타나 무섭다는 소동이 초여름에 반복되는 이유다.
최근 대량 발생한 까닭은 가물고 기온이 높은 날이 이어지면서 강 수온도 상승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립생태원 외래생물팀 박영준 박사는 “지금이 동양하루살이가 번식하는 시기”라면서 “하루살이 수명은 길어야 일주일로 반짝하고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사라졌던 동양하루살이가 다시 도심에서 떼로 목격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다. 많은 시민이 동양하루살이라는 종을 처음 알게 된 때로 2006년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떼 지어 나타났을 때가 꼽힌다. 2013년에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떼로 나타나 ‘압구정벌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최근에는 주로 경기 남양주시와 양평군이 동양하루살이에 골치를 앓는다.
남양주시는 2024년까지 동양하루살이를 매년 15%씩 줄인다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설정하고 꾸준히 방제사업을 벌여오고 있다.
사실 동양하루살이를 방제한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방제 뜻풀이는 ‘농작물을 병충해로부터 예방하거나 구제함’인데 동양하루살이는 이렇다 할 피해를 일으키지 않는다. 굳이 실질적인 피해를 찾자면 상가 등의 유리창에 붙어 영업을 어렵게 한다는 것과 ‘사람이 보기에 징그러워 불쾌하다’라는 것뿐이다.
왜 사람이 사는 곳을 침범하느냐고 동양하루살이한테 따질 수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하루살이에게 입이 있어 말할 수 있다면 자신은 그저 빛을 쫓는 타고난 습성대로 행동했고 빛으로 유혹한 것은 사람이 아니냐고 항변할 가능성이 크다.
배경석 한국생태연구소장은 재작년 글에서 “한강을 남북으로 바라보는 남양주시와 하남시의 동양하루살이 출현 양상이 극명히 다르다”라면서 “아파트와 상가가 한강 변과 수십m까지 근접한 남양주시에서 건너편 하남시보다 동양하루살이 출현 밀도가 훨씬 높다”라고 지적했다.
배 소장은 “동양하루살이 같은 종이 도시의 불빛을 찾아 대량으로 출현하면 사람들이 혐오감을 갖는데 곤충으로선 기가 막힐 노릇”이라면서 “도시화에 따른 강력한 불빛은 곤충의 생존을 위협하는 큰 요인이 돼버렸다”라고 강조했다.
곤충 권위자인 배연재 고려대 교수도 “동양하루살이는 한강 잠실수중보 상류 쪽에서 대량으로 나오는데 남양주시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도시의 불빛이 강에 인접해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저 징그럽다는 이유로 곤충을 제거하는 인간중심적인 일은 종종 벌어진다.
지난해 7월 서울 서북권과 경기 고양시 등에 계피우단털파리가 떼로 나타났을 때도 지자체들은 민원을 이유로 즉각 방제에 돌입했다. 피해를 일으키지 않았고 장마가 끝나고 2주 정도 지나면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설명도 이어졌지만 ‘징그럽다’라는 민원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계피우단털파리도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 ‘러브버그’로 동양하루살이처럼 별명은 사랑스러웠다.
국립생태원 박영준 박사는 “하루살이는 수명이 길지도 않고 입이 퇴화해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 같은 종도 아니므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라면서 “동양하루살이가 서식하는 곳에 인간이 사는 것으로 당연히 같이 살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배연재 교수는 “하루살이가 너무 많이 도심으로 날아오는 상황이 불편을 초래하기는 하니 하루살이를 유인하는 불빛을 줄이는 등 지자체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다”라면서 “다만 하루살이가 생태계에서 유익한 역할을 하는 곤충이므로 시민이 불편을 일부 감수해야 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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