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 양천구에서 이른바 ‘빌라왕’에게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 중 한명이 거주하던 집 앞에 꽃다발이 놓여잇다. /사진=정세진 기자 |
“푹 쉬어요…” -이웃-
12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빌라 문 앞에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지난 8일 숨진 이모씨(31)가 2021년 6월 대출받은 돈을 포함해 전세보증금 3억원에 김모씨(당시 41세)와 계약한 집이다. 이씨는 김씨가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주택 1139채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빌라왕’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2021년 5월 빌라왕 김씨는 이씨가 살던 빌라 1채를 3억원에 사서 같은 가격에 이씨에게 전세를 줬다. 당시 김씨는 이씨에게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에 가입해 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세보증금 3억원 중 2억4000만원 가량이 대출금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전세사기 피해대책 위원회 관계자는 “이씨는 대책위 임원은 아니었지만 피해자 단톡방에서 의견을 나눠주던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전에 취합한 피해 상황을 보면 이씨는 빌라왕 김씨와 직접 계약한 것이 아니고 전 임대인이 김씨에게 집을 팔았는데 김씨가 보증보험 블랙리스트라 가입이 거절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변동금리를 감안하면 은행에 월 100만원에 달하는 이자를 감당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은행으로부터 전세보증금에 대한 대출연장이 거절당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빌라왕 김모씨는 지난해 10월 숨졌다. 이씨가 살던 집은 지난해 12월 세금체납으로 포천세무서와 성북구청이 압류했다.
이씨 전세보증금 3억원 중 상당 부분 돌려받지 못할 상황이었다. 주변 부동산에 따르면 이씨가 살던 집은 현재 매매가는 2억2000~3000만원 수준이고 전셋값은 1억6000만∼1억7000만원 수준이다.
이씨는 지난 8일 전세계약만료일을 1개월여 앞두고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타살당한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한다. 경찰 관계자는 “외상은 확인하지 못했고 병적 원인에 의한 사망 가능성이 있으나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씨가 살고 있는 빌라 11세대 중 7세대가 전세사기 피해가구다. 이 빌라의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보면 지난해 10월 사망한 빌라왕 김씨가 4채를 소유하고 있고, 또 다른 임대사업자 김모씨(51)가 3세대를 소유하고 있다. 김모씨 역시 또 다른 전세 사기범으로 알려졌고 그가 소유한 빌라 3채 역시 세금체납으로 울산세무서와 양천구청이 압류한 상태다.
12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골목에 붙어있는 신축빌라 입주 광고. /사진=정세진 기자 |
지역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피해자가 거주했던 목동은 빌라 밀집 지역이면서 외지인의 전입은 적고 동네주민 간 이사가 잦은 편이다.
해당 빌라 인근에서 20년째 부동산을 운영 중인 오모씨는 “3~4년 전에 부동산이 한참 오를땐 컨설팅 업체 직원이라는 사람들이 와서 수수료 많이 줄 테니까 세입자 좀 구해달라고 했었다”며 “그런 빌라는 가격이 너무 높아 보증사고 날까봐 우린 엄두조차 못 냈다”고 했다.
인근 다른 부동산 관계자는 “빌라는 아파트와 달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오랜 경험을 가진 중개인이 감각적으로 가격을 측정하고 전세계약 땐 다음 세입자가 들어갈 수 있는 가격인지를 파악해야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굴을 다 아는 동네 사람끼리 다음 세입자에게 돈을 못 돌려줄 신축빌라를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에 전세계약을 중개하는 일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컨설팅 업체가 홍보했던 신축빌라는 주로 젊은 사람들이 트렌드에 맞게 깨끗하게 지어진 집을 보고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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