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에 아찔한 사건이 벌어졌다. 10대 여학생 두 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다 경찰에 구조됐다. 자살 시도 장면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생중계됐다. 누군가는 이를 지켜봤다. 이름도, 성별도, 연령도 모르는 관전자들. 인간의 생명은 누군가의 유희 대상이었다. 가정의 달이라는 5월에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여학생들은 온라인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에서 만난 사이다. 여학생들은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이곳밖에 없다”고 했다. 4월16일에도 우울증 갤러리에서 활동하던 다른 여학생이 서울 강남의 옥상에서 뛰어 내려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그의 죽음 역시 SNS로 생중계됐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한 심리상태. 그들은 삶의 위안을 찾고자 우울증 갤러리를 찾았다. 하지만 그곳은 익명에 몸을 숨겨놓은 지옥도(地獄道)와 다름없었다.
따뜻한 조언을 전하는 이도 있었지만, 범죄의 먹잇감을 기다리는 인간 맹수들도 서식했다. 우울감에 시달리는 이들을 상대로 폭행과 협박, 심지어 성 착취와 자살 강요까지 이어졌다.
우울증 갤러리는 여전히 건재하다. 경찰은 폐쇄를 요구했지만, 디시인사이드는 이를 거부했다.
정부가 강제 폐쇄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가 걸려 있다. 우울증 갤러리 범죄자들은 사회를 조롱한다. 갤러리를 폐쇄해도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일까.
물론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 폐쇄가 문제의 본질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억제 효과는 분명히 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여론 관심이 집중될 때만 냄비처럼 끓다가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되는 모습이다.
외롭고 힘든 청소년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안식처를 찾는 현실은 사회의 시스템에 커다란 구멍이 있음을 의미한다. 단지 정부의 관련 부서 기능을 증대하고, 예산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해법에 한계가 있다. 정부와 학교, 가정과 사회가 고유 영역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과거보다 삶이 더 행복해졌는지는 의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우리의 현주소다.
청소년들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설 때까지 누구 하나 손을 잡아주지 않는 사회라면 지옥도와 무엇이 다른가. 타인의 죽음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낄낄대는 모습. “나만 아니면 돼”라는 천박한 인식이 만들어 낸 끔찍한 악몽 아닌가.
사회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연결고리로 묶여 있다는 걸 잊고 지내는 이가 많다. 영상 속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 언젠가는 관전자를 옥죄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옥도는 우울증 갤러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나와 너,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공간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정부가 주목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자살 권유와 방조는 명백한 범죄라는 점을 깨닫도록 법과 제도, 시스템을 정비하는 게 변화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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