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마약을 성인용품으로 속여서 들여와 대량 유통한 일당과 투약자 등 74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검거된 투약자와 유통책 가운데 미성년자도 있는 등 국내 마약 투약이 일반인들에게 급속히 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서울 용산경찰서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조직 총책인 A씨(48·남)와 유통·판매책 등 총 14명을 검거하고, 이 중 8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2월부터 필리핀에서 마약을 성인용품 수입하는 것으로 가장해 국내 반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고액 아르바이트’라면서 유통·판매책을 모집하고 마약을 판매했다.
이날 오전 서울서부지검에 송치된 A씨는 검은 후드티를 입고 얼굴을 가린 채 차량에 올라탔다. 그는 “필리핀에 총책이 따로 있다는데 어떤 관계인가?” “조직 가담한 공범은 총 몇 명인가?” 등 취재진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 일당은 2021년 1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4개월 동안 필리핀에서 마약을 들여와 판매했다. A씨는 마약류를 국내로 밀반입하고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회 초년생들을 유통·판매책으로 모집했다. 그는 수사를 피하기 위해 다단계 점조직 형태로 판매 조직을 운영하면서 고속버스 수화물 무인보관소 등에 현금을 두거나 가상화폐를 주는 방식으로 활동비를 지급했다. 가상화폐로는 2억2000만원가량 거래됐다.
투약자 절반 가까이 초범…윗선까지 수사 확대
경찰이 검거한 투약자 58명 중 27명은 초범이었다. 또, 상습 투약자는 8명에 불과해 대부분이 호기심 등으로 마약을 접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약자는 20~30대가 45명으로 대다수였다. 유통책과 투약자 가운데 미성년자도 각각 1명, 4명 있었다.
이들은 일명 ‘던지기 방식’으로 마약을 거래했다. 던지기 방식이란 판매자와 구매자가 따로 만나지 않고 판매자가 마약을 정해진 장소에 놓고 가면 구매자가 들고 가는 거래법이다.
경찰은 지난해 2월 서울 용산구 일대에서 마약을 팔던 판매책을 검거하면서 수사를 개시했다. 판매책은 서울 용산구 일대에서 마약을 유통하던 중, 경찰에 자수했다. 이후 수사를 확대하면서 판매책에게 마약을 공급한 유통책들과 자금관리책 등을 잡으면서 A씨의 신원을 파악했다. 2019년 필리핀으로 출국한 A씨는 지난해 9월 인터폴 수배를 당했다. 서울경찰청 인터폴 팀과 용산경찰서의 공조수사를 통해 A씨는 수배 1개월 만에 필리핀에 위치한 은신처에서 붙잡혔다. 지난 4일 A씨는 국내로 송환돼 이틀 뒤 구속됐다.
향후 경찰은 윗선까지 수사를 확대할 전망이다. 경찰은 A씨 이외 필리핀에서 체류 중인 B씨가 최종적으로 수익금을 챙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A씨는 필리핀에서 알게 된 B씨가 마약 관련 사업을 제안하면서 범행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B씨에 대한 인터폴 수배 조치를 하고 강제 송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마약이 국내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이용된 국내 무역업체도 범죄 연루 가능성이 있다고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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