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화면 |
‘대구 중학생 학교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겪었던 충격적인 폭력들이 담긴 유서가 공개됐다.
지난 1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2011년 12월 19일에 학교 폭력으로 사망한 승민 군의 이야기를 전했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권승민 군은 가족의 분위기 메이커였던 막내 아들이었다.
2011년 12월 30일, 승민 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전화에 집으로 향하던 중 경찰에 전화를 받았다.
승민 군 어머니는 “출근 중 경찰에 ‘사고가 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교통사고라고 생각했는데 아파트 앞으로 오라더라. 이미 하얀 천으로 덮여있었다. 사망 확인을 했다고 하더라. 애를 안았는데 따뜻했다. 막 바닥에 주저 앉아서 ‘아니야!’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울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시체검안소로 간 승민 군 어머니는 승민이의 맨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굴을 제외하고 온통 시퍼런 멍 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팔, 다리, 배, 엉덩이 등에는 멍이 들어있었고, 멍의 색으로 보아 이는 오랫동안 지속된 구타의 흔적이었다.
조사 중 승민 군의 A4용지 4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승민 군은 유서에 그간 자신이 겪은 일들을 빼곡히 적었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화면 |
가해자는 재우와 윤호(가명) 군이었다. 9개월 전 새학기부터 시작된 그들의 괴롭힘의 이유는 단지 게임 때문이었다. 재우는 게임 속 레벨이 높았던 승민 군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키워달라고 부탁한 뒤, 해킹으로 캐릭터와 아이템이 모두 사라지자 괴롭히기 시작했다.
재우는 “XX 우리 형 뭐하는 줄 알아? 조폭이야”라고 협박했고, 두 사람은 ‘갑을관계’가 됐다. 대신 게임을 해준 날이 160일이나 됐다. 주말도 없이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게임을 대신해야 했다.
승민 군은 같은 신세였던 윤호와 마음을 나누며 친해졌으나 윤호가 재우 편으로 돌아서면서 또 다른 가해자가 됐다. 두 가해자는 24시간을 승민 군을 감시했고, 돈을 뺏기도 했다.
이들은 권투 글러브, 단소, 목검을 사용해 시도 때도 없이 승민 군을 구타했다. 그러나 반 친구들과 선생님은 승민 군의 학교 폭력 피해를 알지 못했다.
이 모든 폭력이 승민 군의 집에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승민 군은 가해자들이 떠난 후 집 안에 남겨진 괴롭힘의 흔적들을 스스로 치워야 했다. 마지막 남은 두 달 동안은 무려 30번을 구타 당했다. 가해자들은 옷으로 가려지는 부분만 골라서 때렸다고 전해졌다.
승민 군의 유서에는 “재우하고 윤호가 매일 우리집에 와서 괴롭혔다.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담배를 피우게 하고, 물로 고문하고, 그 녀석들이 ‘엄마가 언제 오냐’고 물은 다음에 오시기 전에 나갔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유서에는 “12월 19일, 라디오를 들게해서 무릎을 꿇게 하고 벌을 세웠다. 내 손을 묶고 피아노 의자에 눕혀놓은 다음, 무차별적으로 구타했다”며 “내 몸에 칼을 새기려고 했을 때 실패하자 내 오른쪽 팔에 불을 붙이려고 하고, 라디오 선을 뽑아 제 목에 묶고 끌고 다니면서 던져주는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먹으라고 했고, 우리 가족들을 욕했다”고 적혀있었다.
이어 승민 군은 “참아보려 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내 자신이 비통했다. 물론 이 방법이 가장 불효이기도 하지만 계속 살아있으면 오히려 더 불효할 것 같다”고 적었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화면 |
유서 맨 마지막 장에는 승민 군의 부탁이 들어있었다.
승민 군은 “내가 일찍 철들지만 않았어도 여기 없었을 거다. 장난 치고 철 안 든 척 했지만 우리 가족을 사랑했다. 제가 하는 일은 엄청 큰 불효일 지 모른다. 매일 남 몰래 울고 매일 맞던 시간들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내가 없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죽지 말아달라. 내 가족들이 슬프다면 난 너무 슬플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부모님께 한번도 진지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는데 지금 전한다. 엄마아빠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승민 군은 “마지막 부탁인데, 저희집 도어락 번호 키 바꿔달라. 가해자들이 알고 있어서 제가 없을 때도 문 열고 들어올 지도 모른다”고 가슴 아픈 당부를 남겼다. 승민 군은 이러한 부탁을 유서 곳곳에 3번이나 적으며 이를 간절하게 바랐다.
승민 군의 어머니는 “가족들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형은 동생이 그렇게 됐는데 아무 것도 못 도와줬다는 죄책감, 남편은 남편대로 멀리 있어서 아이를 못 봤다는 죄책감, 엄마의 죄책감은 뭐라 말할 수도 없다. 내가 내 아이를 못 지켰으니까. 중학교 교사인 자기 아들 저러는 것 몰랐나”라고 자책하며 오열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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