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년4개월 만에 사실상 코로나19(COVID-19) 종식을 선언했지만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찾아올 또 다른 신종 감염병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감염병 6년 주기설’을 넘어 4년, 심지어 2~3년마다 새로운 팬데믹이 덮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다음 대규모 유행을 일으킬 병원체로는 조류독감을 포함한 ‘인플루엔자’가 거론된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1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발생에서 보듯 새로운 감염병 발생 주기가 계속 짧아지고 있다”며 “심지어는 2~3년 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하는 전문가도 있다”고 말했다.
감염병 전문가의 기존 예측은 신종 바이러스가 6년마다 창궐한다는 것이었다. 사스 바이러스가 2003년, 신종플루 2009년, 메르스 2015년 그리고 코로나19가 2019년 발생했다. 그러나 ‘6년 주기설’이 무색하게 최근 감염병 발생 주기는 짧아졌다.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 후 4년 뒤인 2013년 조류독감이 중국 등 아시아에서 유행했다. 1년 뒤 2014년에는 아프리카에서 에볼라바이러스가 유행했다. 2014년 한 해에만 2만8715명이 감염됐고 약 75% 환자가 사망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에는 브라질을 중심으로 남미에서 지카바이러스가 유행했다. 세계보건기구 추산에 따르면 2015~2018년 지카바이러스 감염자 수는 약 80만 명이다.
코로나19 이후 다음 팬데믹을 일으킬 병원체도 RNA 바이러스가 될 것이다. RNA는 DNA와 달리 한 가닥의 분자로 유전 정보를 저장해 돌연변이가 더 자주 나타난다. 변이가 훨씬 자주, 빠르게 발생한다는 뜻이다. 에이즈가 속한 ‘레트로바이러스’, 에볼라로 대표되는 ‘필로바이러스’, 인플루엔자(독감)를 뜻하는 ‘오르토믹소바이러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가 모두 RNA 바이러스다.
오르토믹소바이러스에 속하는 인플루엔자가 다음 팬데믹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 청장은 “다음 팬데믹을 유발하기 쉬운 감염병 병원체로는 대부분 예상하는 게 조류독감을 포함한 인플루엔자다”고 말했다. 전문가 예측도 인플루엔자를 미래의 ‘DiseaseX'(미지의 감염병)로 지목한다.
피츠버그대학 공중보건대학원 학장을 역임한 바이러스 학자 도널드 버크는 팬데믹을 유발할 바이러스 조건으로 △인류 역사에서 최근 전 세계적 유행을 일으킨 적이 있어야 하며 △인간이 아닌 동물 집단에서 대규모 유행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하고 △돌연변이를 통해 인간 집단 안에서 새로운 형태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해당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바이러스는 코로나바이러스와 오르토믹소바이러스가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최근 코로나19로 우리가 마주했다. 과거 유행 시기와 간격을 고려하면 이제는 오르토믹소바이러스의 인플루엔자 차례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는 H(hemagglutinin)와 N(neuraminidase) 두 가지 표면 항원이 있다. H와 N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유전자 변이가 발생해 인간을 감염시킨다.
인플루엔자는 1918년 이른바 ‘스페인 독감’으로 악명을 떨쳤다. 2년간 전 세계에서 유행하면서 약 5000만명이 사망했다. 1957년 발생한 H2N2 인플루엔자는 중국 등 아시아에서 유행해 약 2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1968년 H3N2 인플루엔자는 약 1억명을 감염시키고, 100만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2009년 유행한 신종플루는 163만2258명을 감염시켰으며 치명률은 1.2%에 달했다. 2013년 H7N9 조류독감이 인간에게 전염된 적이 있는데 1622명이 감염됐다. 약 600명이 사망해 39% 치명률을 보였다.
최원석 고대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역사적으로 큰 유행을 일으켰던 인플루엔자는 10~40년 간격으로 있었다”며 “2009년 신종플루 이후 13년 정도가 지났으니 확률적으로는 새로운 인플루엔자가 등장할 시기가 돼 간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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