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렸던 진솔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동네 주민. 진솔이가 자기 집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달라고 바라보고 있다./사진=진솔이 보호자님 |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
지난달 3일, 저녁 7시 12분. 혜율씨는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걸 느꼈다.
산책하고 마트에 함께 온 반려견 ‘진솔이’가 없어져서였다. 잠시 묶어뒀는데 버둥거리다 목줄이 빠진 모양이었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손이 덜덜 떨렸다. 남편은 야근하다 전화를 받고 전속력으로 오고 있었고, 혜율씨는 동네 중고마켓에 실종됐단 글을 빠르게 올렸다.
귀여움을 뽐내고 있는 진솔이의 평상시 모습./사진=진솔이 보호자님 |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를 돌았다. 진솔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차로 다니며 찾아야겠단 생각을 했다. 차 키를 가지러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내렸을 때였다.
글쎄, 잃어버렸던 진솔이가 집 앞에 와 있었다.
화물 카트에 잠시 묶었으나…움직이며 목줄 빠져
마트 앞 화물 카트에 진솔이를 잠시 묶어 두었고, 그게 내리막 경사에 움직이며 강아지를 잃어버렸다./사진=진솔이 보호자님 |
17년 키우고 무지개다릴 건넌 강아지 아롱이 생각이 났다. 한겨울이었다. 부모님이 산책하다 녀석을 잃어버렸다. 온 가족이 미친듯이 동네를 뛰어다니며 찾았다. 다행히 다른 층, 같은 호수에서 아롱이를 찾았다. 남의 집 앞에서 짖고 있었다. 집을 찾아오려 애쓴 거였다. 옛날식 아파트라 공동 현관이라던지, 그런 게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진솔이는 어떻게 온 걸까. 자초지종을 물었다.
형도 : 일단 너무 다행이에요. 얼마나 놀라는지 잘 알거든요. 어떻게 잃어버리신 걸까요.
혜율 : 마트 정문 앞에 화물 카트 2대가 있었거든요. 롤 휴지가 담겨 있었고요. 거기에 잠깐 묶어뒀었어요. LED로 된 가슴줄을 착용하고 있었고요. 종종 묶어뒀던터라 걱정이 없었어요.
형도 : 그런데 어떻게 풀린 건가요.
혜율 : 밖에 진열된 고기를 3초만에 골라 계산대로 갔어요. 그런데 진솔이를 묶어둔 화물카드 2대가 움직이는 거예요. 약간 내리막이라 움직이다 속도가 빨라졌나봐요. 너무 놀라서 뛰쳐나갔죠.
형도 :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혜율 : 화물카트는 굴러서 다른 차에 박았고요. 진솔이는 격렬히 버둥거리다 결국 목줄이 빠졌어요. 순식간에 사라졌고요. 차가 시야를 가려서 진솔이가 어디로 갔는지 못 봤어요.
형도 : 너무 놀라셨겠어요. 어떡하나요.
혜율 : 카트가 부딪힌 차주에 연락처를 줬고요. 동공지진에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더라고요. 진솔이 성향상 무서웠던 장소는 다시 안 올 거라 생각했어요. 집으로 갔을 것 같아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았죠. 진솔이가 휘파람 소리에 빨리 반응해서, 휘파람 불며 다녔는데 안 보이더라고요.
CCTV 돌려보니…진솔이 곁에 한 동네 주민 있었다
/사진=진솔이 보호자님 |
형도 : 그래서요. 그런 와중에 집에 가보니, 진솔이가 와 있었던 거고요.
혜율 :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문 앞에…진솔이가 있는 거예요.
형도 : 신기하네요. 진솔이가 대체 집에 어떻게 온 걸까요.
혜율 : 그러니까 저희 집이 1층이 아니고, 복도식 아파트고요. 누가 문을 열어줘야 공동 현관에 들어올 수 있고, 누군가 엘리베이터 층수를 눌러줘야 내릴 수 있잖아요. 너무 신기해서 아파트 CCTV를 보고 왔지요.
/사진=진솔이 보호자님 |
CCTV 화면을 봤다. 잃어버린지 15분 만에 공동현관 앞에 진솔이가 등장했다. 마침 한 아저씨가 뒤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진솔이는 “아저씨, 문 좀 열어주세요” 하듯 그를 쳐다봤다. 진솔이와 아저씨는 함께 들어왔다.
형도 :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거군요.
혜율 : 맞아요. 그런데 아저씨네 집과 저희 집이 다른 층수거든요. 의아해서 계속 지켜봤지요.
“저희 집 눌러주세요” 진솔이 눈빛에, 엘리베이터 버튼 눌러줬다
/사진=진솔이 보호자님 |
형도 : 그러네요, 생각해보니까요. 같은 층 주민이 아닌데, 진솔이가 어떻게 집 앞에 온 걸까요.
혜율 : 엘리베이터 CCTV를 봤어요. 아저씨가 먼저 자기 집 층수 버튼을 누르셨지요.
형도 : 그럼 진솔이도 거기서 같이 내린 걸까요?
혜율 : 왼편에 탄 진솔이가 아저씨를 바라보더라고요. “저희 집 층수 좀 눌러주세요” 하듯이요. 아저씨와 진솔이가 눈을 마주쳤고요.
/사진=진솔이 보호자님 |
형도 : 진솔이도 너무 똑똑하네요. 그런데 아저씨가 진솔이네 집이 몇 층인지 아셨을까요.
혜율 : 아저씨가 잠시 고민하시더니, 저희집 층수 버튼을 누르시는 거예요. 어떻게 아신 건지 신기하더라고요. 제가 내려갈 땐 엘리베이터에 사람 있으면 평소 안 탔었거든요. 얼굴을 아는 분도 아녔고요.
형도 : 그건 정말 신기하네요. 진솔이를 평소에 좋아하신 분이실지…
혜율 : 진솔이는 그걸 보고 엘리베이터에서 빨리 내리려고 문 사이에 코를 박았고요. 열리자마자 바로 내려서 집 앞에 온 거지요.
형도 : 진솔이도 정말 똑똑하고, 아저씨도 너무 감사하네요. 안 눌러주셨으면 다른 층에서 또 헤매고 잃어버렸을 수 있잖아요.
혜율 : 그러니까요. 너무 감사해서, 작게나마 사례를 하고 싶어서 아저씨가 내린 층에 벽보를 붙였어요. 그런데 연락이 없으시더라고요. 벽보는 누군가 뗐고요.
/사진=진솔이 보호자님 |
홀로 있는 개를 모른척하지 않은 사람. 그 개가 몇 층에 사는지 알고 있던 사람. 그 덕분에 진솔이가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혜율씨는 아직 그를 찾지 못했으나, 기사로나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감사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돼요. 그만큼 크나큰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죽어가던 저를 살려주신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꼭 다시 만나길 바라고, 진솔이를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을만큼 놀랐다고 했다. 진솔아,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사진=진솔이 보호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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