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윗집 층간소음으로 깬 뒤 불을 켜고 소음을 측정한 사진. 65.9dB이 기록됐다. 야간 층간소음을 판단하는 기준은 39dB 이상이다. 이를 한참 초과한 거다./사진=남형도 기자 |
2022년 봄에 윗집이 이사가고, 새로 온 이들로 인해 모든 괴로움이 시작되었다.
새벽 4시. 불현듯 바닥을 찍는 ‘쾅’ 소리에 강제로 눈이 떠졌다. 깬 적 없던 시간이었다. 아내도 놀라 일어났다. “무슨 소리야?” “모르겠어, 윗집인가봐.” 둘다 눈이 휘둥그래졌다.
각성돼 잠이 오질 않았다. 실은 그게 시작이었다. 안방과 거실과 주방에서 반복적으로 ‘쿵쿵’ 소리가 울렸다. 절구 찢는 소리,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뭔가 떨어트리는 소리까지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밖은 아직 컴컴했다. 불 켜진 집도 거의 없었다. ‘아직 다들 곤히 잘 시간인데.’ 그 생각이 들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건 층간소음을 직접, 지속적으로 겪은 지난 1년 간의 기록이다. 자세히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정도 괴롭구나’란 걸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여전히 효과적인 대책이 없으므로. 이대로 뒀다간 또 다른 강력사건이 일어날 게 분명하므로.
귀가 ‘트여’ 버렸다
윗집 소음에 반복적으로 잠을 못 자니, 입술 옆이 이렇게 터졌다. 입안에도 뾰루지 같은 게 오래 나 있었다./사진=층간소음으로 함께 잠을 못 잔 남형도 기자 아내 |
새벽 5시 5분, 새벽 4시 47분, 새벽 5시 8분. 다음날, 다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잠에서 계속 깼다. 강제 기상이었다. 쿵쿵대는 남의 소음으로 시작하는 하루는 기분이 별로였다. 일단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들었다. 왼쪽, 오른쪽으로 뒤척이다 날이 밝아오는 걸 느끼곤 했다.
머리가 뿌옇고 흐린 날씨처럼 벙벙하고 하루종일 피곤했다. 틈틈이 눕고 싶었다.부족한 잠을 채우라고 뇌가 쉴새없이 외쳤다. 자꾸만 초점이 흐릿해졌다. 커피를 마시는 투샷(에스프레소를 두 번 내리는 것), 쓰리샷으로 마셨다.
퇴근해 돌아와도 편치 않았다. 층간소음이 계속됐다. 주로 ‘발망치’였다. 뒤꿈치로 망치질을 하듯 찍으며 돌아다니는 거다. 둔탁하게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너무 컸다. 내 귀에 망치질을 하는듯 했다. 쿵쿵쿵, 쿵쿵, 쿵쿵, 쿵쿵쿵쿵. 집에 있구나, 안방서 거실로 갔구나, 화장실에서 주방으로 갔구나, 이걸 다 알 정도였다. 모처럼 쉬고 싶은데 소리에만 집중하는 게 괴로웠다.
지난해 개정된 층간소음 데시벨 기준은 주간 39dB, 야간 34dB이다. 주간에 측정한 윗집 층간소음 데시벨이 56.1dB로 기록됐다. 한참을 초과한 거다./사진=남형도 기자 |
예민해졌다. 소음을 덮기 위해 TV 소리를 키웠다. 소용 없었다. 낮은 주파수의 쿵쿵 소리가 비집고 파고 들어왔다. 저녁밥을 먹는데 신경이 곤두서서 체할듯 했다. 아내와 난 둘다 말 수가 줄었다. 층간소음 때문에 순식간에 변한 일상.
“귀가 트이셨네요. 이제 그 집의 모든 소리가 다 들리실 거예요.”
층간소음 피해자 카페에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귀가 ‘트였다’는 표현을 썼다. 그 말이 정확했다. 그 뒤로부터는 윗집 소음을 잔뜩 생각하게 됐으니. 웅성거리는 소리, 문을 쾅 닫는 소리 등 온갖 소리가 명확히 들리기 시작했다. 양쪽 귀를 막아버리고 싶었다.
귀마개를 하고, 비행기 소리를 틀고
귀마개는 좋다는 제품은 다 샀고, 그중에서도 내 귀에 맞는 걸 찾기 위해 아예 종류별로 다 샀다. /사진=남형도 기자 |
초반엔 이해하려 애썼다. ‘아직 이사한지 얼마 안 돼 그럴거야’, ‘정리되면 괜찮을 거야’, ‘이 아파트를 얼마나 엉망으로 지었는지 몰라서일 거야’라고.
그러면서 실질적인 해결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둘중 하나였다. 층간소음을 못 내게 하거나, 내가 막거나. 전자는 쉽지 않을듯 하니, ‘방어’에 힘써보기로 했다. 일단 나 먼저 노력해보기로.
새벽 4~5시에 발생하는 층간소음을 먼저 차단해야 했다. 고3 때 독서실에서 쓰던 주황색 ‘쓰리O’ 귀마개가 생각났다. 돌돌 말아 귀에 집어넣으면, 부풀어오르며 소음을 막는 방식. 자기 전 아내가 먼저 귀를 막았다. 사랑한다 했는데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효과가 있구나’ 하고 내 귀도 틀어 막았다. 내일은 부디 제 시간에 일어나길 바라며.
그러나 불현듯 잠을 또 깼다. 아직 컴컴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시계를 봤다. 새벽 4시 34분이었다. 귀마개를 했음에도 ‘쾅’ 하는 소리가 뚫고 들어왔다. 귀마개를 밤새 낀 터라 귓구멍도 너무 아팠다. 어떤 날은 귀마개 한쪽이 빠져 있기도 했다. 그럼 어김없이 층간소음에 노출됐고, 또 잠을 깼다.
기사를 마감할 땐 특히 귀마개가 필수였다./사진=남형도 기자 |
“내 숨소리가 들려서 귀마개가 불편해. 귀도 아프고.”
미칠 노릇이었다. 층간소음 카페에서 폭풍 검색을 했다. 귀마개는 뭘 해도 한계가 있다고 했다. 또 추천하는 건 ‘노이즈 캔슬링’ 해드폰이었다. 외부 소음을 차단해주는 거였다. 이건 머리에 쓰고 자는 게 불편할뿐 아니라, 또 빠질 것 같아 포기했다.
다른 방법을 더 찾아봤다. 백색소음으로, 층간 소음을 덮는 방식을 해보기로 했다. 유튜브 영상에서 ‘비행기 소리’, ‘빗소리’, ‘장작 소리’ 등을 틀어놓고 잤다.잠에서 또 깼다. ‘쿵’, ‘쾅’, ‘콰앙’ 소리가 뚫고 들러왔다. 주파수가 낮은 소음이라 별 수 없었다. 공기청정기나 주방 후드를 세게 트는 정도의 백색소음이어야 그나마 좀 묻히는듯 했다. 그러나 그걸 틀고 잘 순 없었다.
반복 소음에 세 달 넘게 지났을 땐, 이성을 잃어갔다. 윗집에 지독한 괴물들이 사는 것 같았다. 나중엔 일부러 더 소음내는 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거실에서 우다다다 뛰는 소릴 들었을 땐 윗집에 올라갔다가, 참고 내려왔다. 참을만큼 참았다고 여겼다. 이제 알려줄 차례였다. 당신 소음에 고통 받고 있다고.
쪽지 붙이고, 관리실 통해 민원…”애들이 원래 뛰는 거지, 어떡해요”
결국 정중하게 쪽지를 썼고, 조금은 나아지길 기대했으나, 그걸 들은 척도 안 할 땐 울화가 더 치밀었다./사진=남형도 기자 |
층간소음 갈등 기사에서 수없이 봤다. 전문가들이 말했었다. 직접 얼굴 보고 말하지 말라고. 그래, 그 조언대로 해보기로 맘 먹었다. 혹여나 감정 조절을 못할 수도 있으니.
쪽지를 썼다. 최대한 정중하게, 그러나 피해 받는 내용은 구체적으로 써내려 갔다.
“이사오신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렇게 인사드려 송구합니다. 새벽부터 댁에서 나는 층간소음으로 계속 잠을 깨고 있습니다. 안방의 쿵쾅 소리, 주방에서 나는 덜그럭덜그럭, 쿵쿵 소리, 밤에 아이들 뛰는 소리 등으로 괴롭습니다. 하루종일 피곤합니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나는 생활 소음은 이해하겠습니다. 다만 다들 잘 시간에는 조금만 주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쓰면서 감정이 올라왔다. 시간을 두어 퇴고를 거쳤다. 그리 쓴 종이를, 출근하며 윗집 현관문에 테이프로 붙였다. 부디 이 힘듦을 이해하고 조심해주길 바랐다. 층간소음이 줄어들기만 해도 이해하려 했다. 약간은 기대했다.
웬걸,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날 저녁도 아이들이 뛰어다녔고, 어른 발망치 소리가 쿵쾅거렸다. 아직 쪽지를 못 읽은 건가 싶어 올라가봤다. 현관문에서 떼어져 있었다. 분명 읽었다. 다음 날 새벽에도 어김없이 잠에서 깼다. ‘힘들다고 썼는데도 계속 이러는 건가. 아예 안중에도 없는 걸까. 말이 말 같지 않은 건가.’ 그런 생각에 속이 시끄러웠다.
윗집 현관문에 붙인 쪽지./사진=남형도 기자 |
며칠 더 참다가 쪽지를 다시 써서 붙였다. 나아지지 않았다. 그 다음 단계로 갔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연락했다. 고충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했다. 연락해보겠다고 했으나 회신이 없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윗집에 전달이 됐을까요? 계속 시끄러운데요.”(기자)
“네, 아랫집이 피해 보고 있다고 말씀드렸어요.”(관리실)
“뭐라고 하던가요?”(기자)
“새벽엔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래요?”(기자)
“노모와 함께 사는데, 잠이 없으셔서 일찍 깨신다고….”(관리실)
밤 10시까지 나가 있다 왔는데 여전히 ‘쿵쿵’…경찰까지 왔다
관리실에 층간소음 중재를 해달라고 신청했다./사진=남형도 기자 |
그러니까 다섯 식구가 살고 있는 거였다. 어르신과 아이 둘, 어른 둘. 새벽엔 어르신이, 밤엔 아이가 뛰고, 어른이 묵직한 발망치 소릴 내고 있었다. 괴로웠다. 이 아파트는 어떻게 이렇게 지었는지, 자재를 뭘로 쓴 건지, 그 소릴 고스란히 아래로 전달하고 있었다.
무력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왜 하필 내 윗집에 이런 집이 왔을까’ 싶어 울컥했다. 귀마개를 바꿔보고, 공사장서 쓰는 귀덮개를 중고마켓에서 사고, 백색소음기를 검색하고, 가수들이 쓰는 녹음부스용 방음까지 찾아봤다.
층간소음 피해를 겪은지 8개월쯤 됐을 때였다. 평범한 여름날, 피곤했던 주말이었다. 그날은 유독 층간소음이 더 심했다. 마치 천정 전체가 무너져내리는 것처럼 쿵쾅거렸다. 다른 식구가 더 찾아온 모양이었다. 아내와 집을 나갔다. 차를 타고 가며 “차 안은 조용해서 너무 좋다”고 했다. 집은 어느새 들어가기 싫은 우울한 곳이 됐다. 밤 10시 가까이 돼서야 돌아왔다. 그런데, 여전히 쿵쿵쿵쿵, 너무 시끄러웠다.
층간소음이 심해 시간을 확인했을 때 찍은 시계 사진. 낮이 아니라 밤 11시다./사진=남형도 기자 |
이 시간에 또 나갈 수도 없었다. 더는 참기 힘들었다. 우리 층 방화문을 열었다. 계단을 올라갔다. 위층 방화문을 열었다. 윗집 앞에 섰다. 하하호호, 낄낄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마구 뛰어다녔다. 그걸 제지하는 어른의 소리도 없었다. 순간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심호흡을 크게 열 번 했다. 차분하자고 다짐했다.
초인종을 눌렀다. 윗집 남자가 나왔다. 처음 만나는 거였다. 나와 나이 또래가 비슷해보였다. 밤 10시가 넘지 않았냐고,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 그는 무덤덤하게 “알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말하고 내려온 뒤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112를 눌렀다. 늦은 밤인데 층간소음 때문에 너무 시끄럽다고 했다. 경찰 두 명이 출동했다. 8개월을 참았다고, 아무리 말해도 안 바뀐다고 했다. 경찰은 윗집에 올라가서 주의를 줬다. 돌아와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신고가 많아요. 들어봤는데 크게 들리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직접 올라가시면 안 됩니다. 할 수 있는 게 전달하는 것말고는 별로 없어서 저희도 답답합니다.”
‘사과’ 한 마디에… 층간소음이 순해졌다
시끄럽다는 경고를 하기 위해, 고무망치도 사다 놓았으나 정작 거의 쓰지 못했다. 고무 냄새 때문에 비닐과 양말로 싸두었다./사진=남형도 기자 |
쪽지 붙였고, 관리실에 말했고, 직접 찾아갔고, 경찰까지 왔다. 층간소음이 조금 나아졌다 싶다가도, 며칠 지나면 똑같아졌다. 층간소음은 살면서 마주친 문제 중 가장 막막했다.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녔고, 매일 지속됐으며, 가장 편안해야 할 공간이 파괴됐다. 언제 끝날지 모른단 막막함도 컸다.
남은 건 층간소음을 중재해주는 환경부 이웃사이센터와 민사소송, 보복하는 우퍼 세 가지뿐이었다. 이중 이웃사이센터는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후기가 많았다. 민사소송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피해를 증명해야 하며, 층간소음 전문 변호사조차 추천하지 않는단 영상을 봤다. 보복 우퍼도 중고마켓에서 진심으로 찾아봤다가, 스토킹법으로 처벌된다 하여 사지 못했다. 진짜 방법이 없구나, 이래서 강력 사건이 나는 거구나, 잘못된 일인 건 알지만 심경은 이해하게 됐다.
주말 낮에 쉴 때 시끄러워 귀마개를 또 했다. 내 집에서 대체 이게 뭔가 싶어 울적해졌다. 바로 옆에 있는 아내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눴다.
“이사가고 싶다. 단독주택으로.”(기자)
“나도. 조용한 데서 좀 살고 싶어. 되게 평범한 바람인데 왜 이리 힘들지.”(아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서, 층간소음에 대한 기록은 꾸준히 해뒀다. 관리실에 민원 넣은 것, 경찰에 신고한 것, 집에서 녹음했단 걸 증빙할 수 있는 소음 측정 기록도 다 증거가 되니 모아두는 게 좋다./사진=남형도 기자 |
그러면서 층간소음에 대한 피해를 계속 기록했다. 시끄러울 때마다 녹음해 증거를 남겼다. 소음 측정기를 사서 동영상을 찍었다. 관리실에 중재 요청을 했다. 얼굴을 보고 얘기하고 싶다고.
층간소음 피해가 1년 정도 됐을 때, 중재자인 관리실 직원이 참여한 가운데 윗집과 만나게 됐다. 노트북과 스피커를 가져가서 영상을 틀었다. 그걸 들은 직원도 “소리가 심하긴 심하다”고 공감해줬다. 최대한 감정을 뺀 채 윗집 남자에게 말했다. 층간소음 피해가 있을 때마다 기록을 남겼다고. 더는 참기 힘들다고. 앞으로 나아지지 않으면 법적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까진 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가만히 듣던 윗집 남자가 말했다.
“아이 둘다 말을 너무 안 들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어요. 인정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층간소음 매트도 깔고, 앞으로 더 주의하겠습니다. 피해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층간소음 피해를 1년 겪으며, 사과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늦었단 생각에 화가 났으나, 그래도 죄송하단 말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실제 층간소음도 이후로는 좀 나아졌다. 여전히 가끔 깨긴 하지만. 그래도 최근엔 소음이 나도 이전보단 다소 순하게 들린다. 말 한 마디가 그리 중요한 거였다.
대화가 잘 통하는 경우는…그나마 괜찮다
아파트 주민 단톡방에 층간소음 피해를 호소했더니, 당사자로 추정되는 윗집이 이리 남겼다고 했다. 죄송하다는 말로도 마음에 층간소음 방지 매트를 깔듯, 많이 누그러진다./사진=독자 제공 |
그나마 이정도면 대화가 통하는 경우다(강경책을 쓰긴 했으나). 층간소음을 낸 이가 상식적이면 해결이 원만해진다. 원룸에 사는 명완씨도 그런 사람이었다. 어느 날, 아랫집에서 쪽지를 붙였단다. 층간소음 주의해달라고. 그는 그제야 자기가 소음을 냈단 걸 알게 됐다.
명완씨는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땐 일상 생활한 건데 집에서도 눈치봐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2시간 뒤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층간소음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며 “그 분들도 쉬는 공간인데, 함께 사는 사회니까 특히 조심해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그 뒤론 슬리퍼를 사서 조용히 걷고, 의자도 들어서 뺐다. 이후엔 쪽지가 붙지 않았다.
괜찮은 윗집이었다. 보람씨도 그런 윗집을 만났단다. 이사왔을 때였다. 윗집엔 초등학생 남자 아이 둘이 살았다. 윗집에서 먼저 말했다. “항상 조심하라고는 하지만 혹시 모르니, 시끄러우면 꼭 연락주세요.” 그래서 보람씨도 이리 답했다. “저흰 새벽 같이 출근해서 밤에 와요. 낮엔 신나게 뛰셔도 돼요.” 그 말에 윗집 주인의 얼굴색이 밝아졌다.
층간소음 때문에 천장을 참 많이 바라봤다./사진=남형도 기자 |
그 뒤로도 쿵쿵거릴 때면 어김없이, 윗집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너무 죄송해요. 친구들이 와서 좀 신났나봐요. 다음부터 주의할게요.” 보람씨도 이리 답했다. “그러지 마세요. 남자 애들은 뛰놀아야 잘 커요.” 이후엔 아이들과 인사도, 대화도 나눴다.
대화 창구가 다양하면 도움이 된단 생각이다. 대화 과정에서 중재자, 같은 주민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아파트 단체 채팅방서 해결했단 사례도 있었다. 혜선씨는 위쪽 층간소음으로 힘들어, 관리실에 민원을 넣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게 없었다. 주민들이 모인 채팅방에서 그는 “OO동, OO~OO층 주민 분들 부탁 드립니다. 밤 10시에서 12시 사이만이라도 조심해주세요. 잠이라도 편히 자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채팅방에서 답변이 왔다. 윗집이었다. “죄송합니다. 밤 10시 이후엔 더 신경 쓸게요.” 그 뒤로는 그 시간에 조용해졌다. 혜선씨는 “답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글 남겨주셔서 진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대화가 안 통하는데, 대화만 하라고 하니 죽어난다
/삽화=뉴스1 |
이상적인 해결 사례다. 그러나 실제론 이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대화가 안 통한다.
소영씨(가명)가 그랬다. 윗집이 남매가 있는 집이었다. 층간소음이 시작됐다. “매트라도 깔고 조심해달라”고 요청했다. 비싸서 못 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부부는 술 먹고 자주 쿵쿵거리며 시끄럽게 싸웠다. 항의하니 층간소음 가해자가 경찰을 두 번 불렀다. 경찰이 주의하라고 윗집에 말해도 소용 없었다. 소영씨는 “일부러 온 가족이 한 곳에 모여, 더 뛰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결국 이사했다. 20년을 살았는데 아파트에 정이 떨어졌다고.
지아씨(가명)의 층간소음 피해도 마찬가지. 새벽 한 시부터 세 시까지 성인 발망치 소리, 골프 퍼팅 연습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가구 끄는 소리, 아이 뛰는 소리, 장난감 소리 등도 함께. 참기 힘들어 찾아갔더니, 윗집은 “돌이 갓 지난 아이가 있다. 어쩌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외려 “아랫집 소음이 더 심하다”고 탓했다. 시간대를 확인해보니, 지아씨 집에 사람이 없을 때였다.
/삽화=머니투데이 |
대화가 안 되는데, 대화만 하라고 한다. 찾아가는 것도 안 된다고 하고, 보복소음도 불법이다. 이제 와서 건설할 때 층간소음 기준을 강화한단 대책도 와닿지 않는다. 이미 지어진 아파트에서 사는 이들이 너무 많기에. 민사소송 아니면 이사인데, 둘다 한계가 있다.
실제 층간소음 민사소송을 했단 창우씨는 “소송에서 이겼는데, 보복 소음을 시작해 결국 이사를 나왔다”고 했다. 더 교활하게 소음을 내어 증거 잡기도 힘들었단다. 이런 실정인데, 정부에선 층간소음 기준을 몇 데시벨 낮춘단 대책만 내놓고 있다. 소음 측정기를 사서 증거를 남기고 있다는 기철씨도 “실제 소음보다 너무 작게 녹음이 되어서 쉽지 않다”며 “전문 장비를 갖추자니 너무 비싸다”고 했다.
이사를 가도 결국 ‘복불복’이다. 이웃을 누구 만나느냐에 따라, 또 소음 지옥이 시작될 수 있어서다. 국내 아파트는 대부분 벽식 구조다. 벽을 타고 위, 아래로 층간소음이 전달되는 거다. 층간소음 피해를 겪은 뒤 아예 작정하고 꼭대기층으로 이사간 재준씨는 “윗집 층간소음보단 덜한데, 아래층 발망치 소음도 벽을 타고 올라오더라”라고 했다.
2021년 11월 24일 오전, 층간 소음으로 갈등을 빚던 이웃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러 구속된 구속된 A씨(40대)가 검찰 송치를 위해 인천 남동경찰서를 나서고 있다./사진=뉴스1 |
취재한 층간소음 피해를 겪은 이들 중 “층간소음으로 왜 사건이 나는지, 그 심경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해결 방법이 없어 보복 우퍼를 검색해보지 않은 사람도 없었다. 이들을 위안하는 건, 오로지 층간소음 가해자가 말을 듣지 않아도, 강제로 멈추게 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법적 대책이다. 층간소음 피해로 찾아봤던 정보 중 그나마 가장 위안이 됐던 건 변호사장성균법률사무소 장성균 변호사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한 말이었다.
“일단 어떤 사람이 행동하는 걸 강제하고 싶다, 말로 하면은 90% 이상은 그 말에 겁을 안 내요. 목에 칼날의 서늘함이랄까, 그럼 이제야 겁을 먹거든요. 증거를 남겨요. 그리고 내용증명을 30개 정도를 두 달 동안 매일 보내요.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그동안 가압류를 할 수 있어요. 집을 가압류 하는 거죠. 이거는 칼날이 들어온 거야, 그럼 조용하게 돼 있죠.”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뭔가가 필요하단 거다. 법원 판결도 그중 하나. 실제 층간소음 피해자 손을 들어주는 판결도 늘고 있다. 지난 4월 25일엔, 7년 동안 층간소음 피해로 고통 받은 아랫집에, 윗집이 1500만원을 배상하란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 한 관계자는 “층간소음을 내면, 큰 액수의 손해배상까지 가능하단 판결이 많이 나와야하고, 그게 많이 알려져야 그나마 자제시킬 수 있다”며 “대책을 중재나 개인의 인내처럼 뜬구름 잡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참고 참다 강력 사건까지 간다. 반복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송까지 안 가도 층간소음 가해를 멈추게 할만한, 아주 실효성 있는 법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10년째 층간소음을 겪고 있단 성원씨는 이리 말했다. “2017년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건 소음이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구나’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잔 생각이 들었지요. 관리실에 전화하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거구나 싶었고요. 그러니 미움이 많이 사그라들더라고요.” 그리고 덧붙였다. “사회가 제도적으로 중재를 해주면 좋겠어요. 어렸을 때처럼 반상회 가은 걸 하면 얼굴도 트고 긴장도 덜하고 화도 덜 날텐데 싶고요.”/사진=남형도 기자 |
에필로그(epilogue).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누군가의 ‘윗집’이란 걸. 내가 딛는 바닥이, 아랫집의 천장이란 걸.
혹여나 나도 모르는 사이, 피해를 준 적은 없었을까 싶었다.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못한 건 아닐까하고. 그래서 예전 아파트에 살 당시, 아랫집에 쪽지를 이리 붙였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윗집입니다. 오며가며 인사 드렸었지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저희 집에 소음이 난다고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 층간소음 피해를 드린적은 없을지요. 불편하신 게 있다면, 제게 편히 말씀해주시면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다음날, 아랫집 아주머니가 찾아와 말했다.
“아이고, 조용해서 한 번도 불편했던 적 없어요. 아파트 30년 살았는데, 윗집에서 먼저 물어봐 준 적은 처음이에요. 괜히 기분 좋아졌어요. 고마워요. 저희 집도 피해주는 거 있으면 꼭 말씀하시고요.”
이리 될 수 있다면 층간소음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많은 이들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웃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몇 천원’이면 충분하다고. 집에서 늘 신고 다니는 슬리퍼./사진=남형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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