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버스기사) : 교차로 부근이 혼잡해 저는 전방을 주시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정차 전 먼저 일어난 피해자를 룸미러로 살필 수 없었습니다.
피해자 유족 : 피고인이 전방주시를 못 해 버스가 팍 정지하게 된 블랙박스 영상을 제가 정확히 봤습니다. 지금 너무나 틀리게 말씀하신 겁니다.
급정거한 시내버스 안에서 70대 노인 승객이 넘어져 사망한 사고로 60대 버스기사 김모씨가 형사 재판 법정에 섰다.
28일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2020년 12월30일 낮 3시쯤 서울 중구 숭례문에서 을지로입구역으로 버스를 몰다가 한국은행 교차로 부근에서 앞서가던 버스가 멈추는 것을 뒤늦게 발견해 급제동을 했다. 버스는 정류장을 80m가량 남기고 시속 29㎞로 운행하던 상황이었다.
이때 하차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71세 할머니가 차량 앞쪽으로 튕겨 나갔다. 벨을 누른 뒤 한손으로 봉을 잡고 다른 손엔 봉지를 들고 있던 할머니는 운전석 기둥 카드기에 머리를 부딪쳐 크게 다쳤다. 김씨가 응급조치를 했지만 할머니는 대학병원에 입원한 뒤 약 1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검찰은 김씨가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봤고, 교통사고처리법 위반(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김씨를 재판에 넘겼다. 법정에서 김씨 측은 “사고를 예측하거나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1심은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하차벨을 누르고 버스가 정류장에 완전히 멈춘 뒤 자리에서 일어나 하차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면서도 “피고인이 승객의 안전을 배려할 의무 등을 게을리한 점이 사고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항소심에서 김씨 측은 “피고인은 7~8m 간격을 유지하던 앞 버스가 멈춰 급정거했을 뿐이다. 전방주시 의무를 지킨 것”이라며 “당시 넘어진 승객도 할머니 한 분뿐이었다”고 말했다. 평소 버스 내 안내 방송과 게시물을 통해 ‘정차 중엔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 것’을 안내해 온 점도 강조했다. ‘버스가 정지할 당시 쓰레기통이 넘어지거나 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승객들이 밀려난 일은 없었느냐’는 변호인 질문에 김씨는 “네”라고 답했다.
반면 유족은 “앞 버스는 서서히 섰을 뿐”이라며 김씨가 전방주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년 간 김씨 측의 사과가 없었다. 오늘 법정에서 김씨를 처음 봤다”며 “재판부가 영상을 잘 살펴 제 마음을 헤아려달라”고 말했다.
김씨는 “제가 운행한 버스에서 피해자가 돌아가셔서 매우 황망하고 가슴이 아프다”며 “저도 가족 생계를 위해 운전 일을 하다가 사고 이후 트라우마로 고통스럽게 근무 중”이라고 호소했다. 또한 “이 자리를 빌려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허리를 숙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2부(부장판사 최태영 정덕수 구광현)는 오는 6월14일 김씨의 항소심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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