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부동산 앞에 ‘불법 부동산 컨설팅’에 대한 주의를 요구하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
“아니 컨설팅 부동산은 이미 다 떴는데 남은 우리만 장사가 아예 끊겼다니까. 원래 3~5월은 이사 대목이라 전체 매출의 40%는 전세 중개수수료가 차지하는데 요즘은 한 건도 중개가 안 돼.”
24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ㄱ부동산을 운영하는 오모씨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인천은 미추홀구, 동탄은 동탄이라고 하는데 왜 화곡동은 강서구도 아니고 그냥 화곡동으로 보도를 하냐”며 “여기 매물이 다 전세사기인 것도 아니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화곡동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가격이 고공행진 하던 3~4년 전, 화곡동에는 신축빌라 공급이 활발했다. ‘전세대란’과 맞물려 신축빌라 전셋값은 매매가와 동급으로 올랐고 이렇게 분양된 매물이 최근 ‘전세사기’ 피해자를 양산했다는 것이 화곡동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오씨는 “우리 부동산에서는 전세사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며 “어떻게 감당하려고 어떻게 매매가랑 전셋값이 같은 물건을 중개하겠냐”고 말했다.
이른바 ‘화곡동 빌라왕’으로 불린 임대사업자 강모씨(55)씨는 공인중개사 등과 공모해 2015년 9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건축주 등으로부터 1채당 평균 500만~1500만원의 ‘뒷돈’을 받고 자본금 없이 화곡동 일대 빌라 283채를 매입했다. 강씨는 부동산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대여하거나 자격증이 없는 ‘중개보조원’ 등을 통해 이렇게 마련한 빌라를 임대한 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는 18명, 피해 금액은 총 31억6800만원에 이른다.
화곡동을 중심으로 활동한 전세사기 피의자는 강씨뿐이 아니다. 검찰에 따르면 임대사업자 이모씨(54)역시 강서구 일대에서 470여채가 넘는 주택을 사들여 2017년 6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서울 강서구 일대에서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임차인 43명에게 84억원의 임대차보증금을 가로챈 혐의(사기)를 받는다.
인근 ㄴ부동산 대표 박모씨는 2년 후를 걱정했다. 보증보험 범위가 축소돼 문제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씨는 “다음달부터 공시지가의 126%까지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하다”며 “2년전 계약을 할 땐 150%까지 보증되던 집들인데 이제 갭투자를 통해 구입했던 집주인들 중에는 전세보증금 못 돌려주는 임대인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2015년쯤 화곡역 인근 길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신축빌라 분양 홍보물./사진=박성대 기자 |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빌라 시세 기준을 매매가가 아닌 공시가격의 140%로 설정했다. 또 다음달 1일부터 매매가 대비 전셋값의 비율이 90% 이하여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다음달부터는 공시가격의 126%(140%x90%) 이하 범위에서만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오씨는 “2억2000만원 하던 빌라 전셋값이 1억8000만원으로 떨어졌다”며 “3000만~4000만원 못돌려주는 집주인들 꽤 많을 텐데 이렇게 보증범위를 줄여 놓으면 2년 후엔 본의 아니게 정상적으로 중개했던 중개인들도 ‘사기 부동산’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판”이라고 했다.
그는 “은행 상품과 정부정책으로 3~4년전까지만 해도 보증 금리 100%를 제공해서 젊은이들이 월세살다 전세로 많이들 옮겼다”며 “월세는 빠르게 오르고 이제 2년 있으면 전세사고가 줄지어 터지게 생겼다”고 했다.
인근 ㄷ부동산 대표 김모씨는 실제 전세사기 피해자를 상담하기도 했다. 몇달 전 50대 여성ㄹ씨가 부동산을 찾아와 “내가 최근 보도되고 있는 전세사기꾼의 피해자인 것 같다”며 “돈을 돌려 받을 수 있겠냐”고 상담을 요청했다.
ㄹ씨는 3년전 전세 계약을 맺고 19평형 빌라(다세대주택)에 가족들과 이사를 왔다. 20년 된 구옥이기에 신축빌라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전세사기를 의심하지 않았다. ㄹ씨는 집에서 물이 새자 집주인에게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부동산에 문의한 뒤에야 ‘집주인이 바뀌었다’며 새로운 연락처를 받았다.
새로운 집주인은 ㄹ씨가 계약을 맺은 집주인으로부터 해당 빌라를 구입한 사람이었고 ㄹ씨와 새 집주인은 이날 처음 만났다. 시간이 흐른 뒤 전세사기 관련 보도가 나온 뒤에야 ㄹ씨는 새로운 집주인이 전세사기 피의자라는 걸 알게됐다.
김씨는 “세입자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집주인과 계약 후에 집주인이 갭투자자에게 매매했는지, 전세사기꾼들에게 매매했는지 알 수가 없다”며 “이 경우 거래를 중개했던 부동산이나 임대차계약을 맺었던 전 주인이 ㄷ씨에게 통보라도 해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ㄹ씨 집에는 구청과 국세청으로부터 세금 체납을 알리는 경고장이 계속 날아들고 있다.
계약만기때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전세’ 위험군이 23만호 이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은 국토교통부로부터 2020년 1월~2022년 8월 제출된 주택자금조달계획서 161만 건을 분석한 결과 전세가율이 80%가 넘는 깡통전세 고위험군이 12만1,553건으로 집계됐다고 21일 밝혔다. 사진은 지난 21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빌라 밀집지역./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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