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2시쯤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에 올라온 게시물. 익명의 글쓴이가 “너무 힘들어서 몇 시간만이라도 카카오톡을 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좌). 해당 게시물 작성자가 다른 이용자들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우) / 사진=김지은 기자 |
“지금 너무 우울한데 나랑 카톡할 사람?”
지난 20일 오전 12시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 같은 글이 여러개 올라왔다. 우울해서 잠이 안 오는데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아이디와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는 사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해당 게시물들에 “알겠다”는 댓글이 3~4개씩 달렸다.
최근 10대 청소년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우울증을 호소하는 2030세대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30대 청년 우울증 진료 환자 비율은 2017년 23.4%에서 2021년 34.1%로 4년새 45.7% 증가했다. 우울증 환자 10명 중 3~4명이 청년인 셈이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청년들은 고민을 토로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사이버 공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우울을 이겨내기 위해 소통을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익명성에 기댄 사이버 공간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대 박모씨는 “그동안 우울증 때문에 상담을 많이 받아왔다”며 “문득 문득 우울한 순간이 찾아올 때 내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사이버 공간이 없으면 숨막혀서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 10대 여학생이 SNS 라이브방송을 켠 채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 우울증갤러리에도 여전히 ‘채팅할 사람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온다. 25세 김모씨는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졸업을 앞두고 취업 경쟁에 뛰어들면서 번아웃과 불안 증세를 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는 “부모님과 친구들은 제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며 “주변 사람들한테 말할 수 없는 고민들을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다 보면 우울한 마음이 풀린다”고 말했다.
20일 오전 2시쯤 우울증갤러리 이용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대화 내용. /사진=김지은 기자 |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모인 오픈 채팅방도 있다. 실제 이 방에 들어가 보니 이들은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며 위로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오전 2시쯤 한 이용자가 우울감을 호소하자 ‘침대에 누우면 기분 좋다. 얼른 씻고 누워라’ ‘삶이 힘들 땐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고 버텨라’ 등의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이와 관련,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익명성에 기댄 곳은 어쩔 수 없이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다”며 “외국에서도 익명의 사이트들은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개인정보 인증 등 이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