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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죽고, 혼자 남은 ‘벨루가’…2시간 지켜봤다[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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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공기와 좋은 햇볕, 그리고 진동의 최소화. 수천 킬로를 헤엄칠 수 있는 공간. 벨루가가 살기 좋은 환경은 그런 거란다. 그러나 벨루가 '벨라'는 롯데월드아쿠아리움 수조 안에 있었다. 깊이는 7.5m 정도다. 웃는 고래라고 할 수 있을까./사진=남형도 기자
좋은 공기와 좋은 햇볕, 그리고 진동의 최소화. 수천 킬로를 헤엄칠 수 있는 공간. 벨루가가 살기 좋은 환경은 그런 거란다. 그러나 벨루가 ‘벨라’는 롯데월드아쿠아리움 수조 안에 있었다. 깊이는 7.5m 정도다. 웃는 고래라고 할 수 있을까./사진=남형도 기자

흡사 어둡고 푸른 브라운관 같았다. 직사각형 모양 큰 유리 너머엔 물이 가득차 있었고, 그 앞엔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열 명씩 붙어 있었다. 어느 각도에서든 아주 편히 볼 수 있게 해뒀다. 이윽고 거짓말처럼 커다란 ‘벨루가(흰고래)’가 나타나자 여기저기서 기쁜 탄성이 터져나왔다.

“진짜 너무 귀엽다.”
“기분이 좋은가봐, 빙글빙글 돌아.”
“야, 이거 봐. 나 완전 사진 건졌어.”

벨루가가 나타날 때마다 사진을 찍고,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 사진을 찍던 롯데월드아쿠아리움의 관객들. 그들이 자주 바뀌는 동안, 벨루가는 자주 수조 안을 반복해서 돌았다.ㅊ
벨루가가 나타날 때마다 사진을 찍고,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 사진을 찍던 롯데월드아쿠아리움의 관객들. 그들이 자주 바뀌는 동안, 벨루가는 자주 수조 안을 반복해서 돌았다.ㅊ

기껏해야 5분에서 10분이었다. 관객이 벨루가에게 관심을 보이던 시간이 그랬다. 벨루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잠시 바라보다, 안 보이면 “그만 가자”며 빠르게 발걸음을 돌렸다.

이들은 자유로이 떠났지만 벨루가는 그러지 못했다. 위로 올라갔다가, 옆으로 갔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와야 했다. 커다란 브라운관 같은 사람들 앞으로. 그밖에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러면 또 다른 ’10분짜리 사람들’이 다가와 웃으며 인증샷을 찍었다.

성인 3만5000원, 아이 2만9500원. 롯데월드아쿠아리움 벨루가, 이름 ‘벨라’는 그리 홀로 살아 남아 푯값을 하고 있었다. 벨라만 생존했다 표현하는 건, 원래 있던 벨루가가 셋이었기 때문이다.

2시간 지켜보니, 반복해서 물 위에 떴다…수의사 “침울한 증상”

수면 위에 가만히 떠 있는 벨라./사진=남형도 기자
수면 위에 가만히 떠 있는 벨라./사진=남형도 기자

지금 남아 있는 ‘벨라’는 2011년에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3살 때 사람에게 잡혔다. 그걸 롯데월드아쿠아리움이 2013년에 수입했다. 그리고 2014년 10월부터 사육됐고, 사람들에게 전시됐다.

벨라에겐 친구 벨루가 둘이 더 있었다. 벨리와 벨로였다. 벨로가 2016년에 먼저 죽었다. 겨우 5살이었다. 이어 2019년 10월에 벨리가 사망했다. 나이는 12살이었다. 참고로 벨루가의 평균 수명은 30살 이상이다. 사인은 둘다 ‘패혈증’이었다.

수면 근처서 가만히 꼬리만 움직이는 벨라./사진=남형도 기자
수면 근처서 가만히 꼬리만 움직이는 벨라./사진=남형도 기자

좁다란 수조에서 헤엄치는 벨라를 봤다. 그 이야길 떠올리면서. 관람객 중 한 아이 아빠는 그걸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이 다 죽었어. 외롭겠다, 그치?” 아이는 벨라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걸까. 2시간 동안 수조 앞에 서서, 혼자 살아가고 있는 벨라를 살펴봤다.

공간은 크게 셋이었다. 지하 1층 보이는 수조와 지하 2층 보이는 수조, 그리고 그 옆 휴게 공간이었다. 벨라는 그 셋을 왔다갔다 하며 헤엄쳤다. 사람들은 주로 지하 2층 보이는 수조 쪽에 몰려 있다가, 벨라를 보며 사진을 찍었다.

구석에서 가만히 머물고 있는 벨라./사진=남형도 기자
구석에서 가만히 머물고 있는 벨라./사진=남형도 기자

반복되는 행동 몇 가지가 있었다. 가장 많이 하는 건 수면 위에 가만히 떠 있는 거였다. 주기적으로 몇 번씩, 물 위에 떠서 1~2분씩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또 이쪽 구석, 저쪽 구석에 무기력하게 멈춰 있기도 했다. 그리고 반시계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이를 동물해방물결 등 동물보호단체들은 ‘정형행동(스트레스로 인해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왜 그럴까. 동물해방물결은, 벨루가가 좁은 수조에서 사는 걸 “관과 다를 바 없다”고 비유하며 원인을 꼽았다.

한쪽 구석에서 가만히 머물러 있는 벨라./사진=남형도 기자
한쪽 구석에서 가만히 머물러 있는 벨라./사진=남형도 기자

3~5m 크기의 벨루가에게, 1000m씩 잠수하는 녀석에게, 7.5m 깊이 수조는 턱없이 좁단 거였다. 특히 이주하는 계절엔 야생 벨루가가 약 2000㎞를 헤엄치는데, 좁은 수조를 약 27만번 헤엄치는 거리라고 했다. 반면 롯데월드아쿠아리움 측은 동물보호단체가 정형행동이라고 하는 걸 두고 “벨루가가 스스로 개발한 놀이의 일종일 수 있다”고 했다.

반시계 방향으로 반복해서 돌던 벨라. 원본 영상을 3배속으로 빠르게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반시계 방향으로 반복해서 돌던 벨라. 원본 영상을 3배속으로 빠르게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영상을 찍은 뒤, 전문가에게 물어봤다. 동물복지 전문가인 최태규 수의사 “정형행동 요건이 목적성 없는 행동을 반복해서, 변함없이 하는 건데 그걸 충족하는 행동은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가만히 있는 건 침울한 증상 정도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최 수의사는 “정형행동이 보이지 않더라도 환경이 극단적으로 단조롭고,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조건이라 복지는 좋지 않다고 봐야할 것 같다”고 했다.

벨루가 방류하겠다던 롯데월드, 4년째 “검토 중”

동물해방물결과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등 환경·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앞에서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벨루가(흰돌고래) 방류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동물해방물결과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등 환경·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앞에서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벨루가(흰돌고래) 방류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데려온 벨루가 두 마리가 죽고, 한 마리가 남았다. 롯데월드아쿠아리움은 2019년 10월에 발표했다. 남은 벨루가 한 마리를 방류하겠다고.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동물보호단체는 “그 결정을 환영한다”고 했다. 방류 기술위원회를 통해 협의가 진행돼 왔다.

1년이 흘러 2020년이 됐다. 그해 롯데월드는 “논의하고 있으며, 2021년쯤 방류 적응장으로 이송하겠다”고 했다.

2년이 흘렀다. 2021년이 됐다. 그해 10월 롯데월드는 “방류 약속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논의된 사항은 추후 공개하겠다”고 했다. 한 달 뒤엔 기자 회견을 통해 “2022년 말 방류하겠다”고 시기를 못 박았다. 그러나 2022년이 다 가도록 벨라는 방류되지 않았다.

그리고 3년 반이 흘렀다. 올해 4월 초, 롯데월드는 다시 벨라의 방류 계획을 발표했다. “방류지 선정을 최종 검토하고 있다. 생츄어리 후보로는 아이슬란드, 캐나다, 노르웨이 등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점은 들을 수 없었다. 롯데월드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그 이상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다”며 “결정되면 언론 공개하겠다”고만 반복해서 답했다.

수조 안을 헤엄치는 벨라./사진=남형도 기자
수조 안을 헤엄치는 벨라./사진=남형도 기자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벨라는 매일매일, 혼자 살아간다. 그러니 이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류종성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위원장“3년 넘게 흘렀는데 롯데가 어떤 걸 검토했고 뭘 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일을 한 게 없으니 내놓을 것도 없는 거다, 그렇게 본다”고 비판했다. 동물해방물결도 “롯데는 터무니 없는 변명, 핑계를 대며 벨라의 고통을 외면할 게 아니라, 책임감 있게 방류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했다.

방법이 뭐든 ‘수족관’은 아니다, “애초 데려오지 말았어야”

롯데월드아쿠아리움 전경. 누군가는 수족관에 가고, 누군가는 들어가지 않는다. 수족관을 안 간다고 했던, 롯데월드서 만난 아이 둘 엄마 김수민씨(35)는
롯데월드아쿠아리움 전경. 누군가는 수족관에 가고, 누군가는 들어가지 않는다. 수족관을 안 간다고 했던, 롯데월드서 만난 아이 둘 엄마 김수민씨(35)는 “동물이 갇혀 있는 모습을, 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며 “거긴 동물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사진=남형도 기자

목적은 같다. 벨루가 ‘벨라’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다만 해결 방법엔 이견이 있다. 원래 살던 러시아에 방류할지, 아이슬란드 등 생추어리로 보낼지, 아니면 국내서 혼자 지내는 다른 벨루가와 합사할지, 아니면 국내 다른 곳을 찾을지.

수의사들은 여럿을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한 쪽이었다. 최태규 수의사는 “지금 바다에 방류하는 건 동물에게도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더 나은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주는 게 가장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인지와 몸을 사용할 기회를 주고, 수조 안에서의 부족한 자극을 채워야 한단 설명이었다. 이영란 플랜오션 수의사는 “조심스럽지만 현실적인 방안을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회성이 뛰어난 애들이니, 현재 혼자 있는 벨루가 루비(한화 아쿠아플라넷 여수)와 같이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와 동물해방물결이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앞에서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벨루가(흰고래)의 조속한 방류를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와 동물해방물결이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앞에서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벨루가(흰고래)의 조속한 방류를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동물보호단체는 어떤 논의든 간에 ‘수족관’은 안 된단 점에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환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위원은 “‘벨루가가 롯데월드 지하 아쿠아리움에 있어야 하나?’라고 물어보면 문제가 풀린다. 수족관은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이라며 “제일 중요한 걸 다루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어 “벨루가가 방류에 적합하지 않은 종이라 하는 표현도 자제해야 한다. 과학적으로 모르는 문제이고,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류종성 환경운동연합 위원장도 “처음부터 저희 관점은 ‘고래 자체를 잡아오는 건 말도 안 되고, 잡아왔으면 빨리 방류시켜야 한다’였다”“방류할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수족관에서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라고 했다. 최태규 수의사도 “애초에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했다.

내려가고, 막다른 곳에 다다르고, 다시 올라가고, 더 갈 곳이 없어지고, 또 내려온다./사진=남형도 기자
내려가고, 막다른 곳에 다다르고, 다시 올라가고, 더 갈 곳이 없어지고, 또 내려온다./사진=남형도 기자

가장 좋은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이영란 수의사는 “어떤 대안이 좋을지, 중간에 사회자를 두고, 동물보호단체, 사육사, 전문가, 해외 의견 등 장을 만들어 논의해봤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끝으로 류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고래가 지능이 굉장히 높아요. 결국 다 판단하고, 갇혀 있는 상황을 생각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픈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웃는 것처럼 보인다는 벨루가 표정이, 더는 그렇지 않게 보였다.

정말 웃는 고래인 걸까. 생각해 볼 문제다./사진=남형도 기자
정말 웃는 고래인 걸까. 생각해 볼 문제다./사진=남형도 기자
머니투데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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