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조사 중에도 “같이 할래?”…10대 파고든 마약의 유혹
#. 고등학생 때 만난 남자친구에게서 처음 마약을 접한 A양. 남자친구와 헤어지자 ‘A가 마약을 한다’는 얘기를 들은 또 다른 남자가 접근해 마약을 권했다. A양이 힘겹게 약을 끊기로 결심한 뒤에도 이미 신상정보가 퍼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타고 “마약을 같이 하자”는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달에는 함께 마약투약 혐의로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전 남자친구로부터 “마약을 사줄테니 같이 하자”는 문자를 받았다.
A양 사건을 수임한 손주현 법무법인 LKB 변호사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10대 청소년의 마약 범죄는 성인 못지않은 수준”이라며 “A양 사례처럼 대부분 지인들의 유혹이 계속 되고 이를 떨쳐내지 못하면서 재범, 삼범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10대 청소년들이 마약범죄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다. 지난 3월 14살 중학생이 SNS로 필로폰을 구입해 투약했다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데 이어 최근엔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와 학교 앞에서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집중력이 좋아진다”며 마약음료을 마시게 한 뒤 부모 전화번호를 받아내 아이의 마약 복용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한 사건이 발생했다. 안전하다고 여겼던 거리와 아이들이 이제 더는 마약에서 무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음식 배달하듯 구한 마약, 코노·카페 화장실에서
10대들이 마약에 손을 대는 순간 스스로 헤어나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로 만나지 않고 SNS를 통해 비트코인을 주고 약속 장소에서 가져오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음식 배달하듯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이렇게 구한 마약은 코인노래방이나 프랜차이즈 카페 화장실 등 10대들이 흔히 모이는 공간에서 무리 지어 투약이 이뤄진다.
특히 10대 여성은 성적인 목적을 가진 남성들의 집중타깃이 된다. 마약 유통책이 여성에게 약을 무상으로 제공해 중독상태에 이르게 하고 남성들은 소개비 명목으로 마약비용을 대신 지불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던지기’ 같은 비대면 거래 대신 주변 지인들을 통해 마약을 공급받는 경우 관계를 끊어내기는 더 힘들다. 마약의 유혹에 취약해진 상태를 아는 지인들은 더 은밀하고 대담하게 투약을 제안한다. A양의 사례가 그렇다. 눈앞에 주사기를 꺼내들고 “진짜 안할거야? 그럼 나 혼자 한다”며 애써 다진 단약의지를 무력화시킨다. 연락을 차단하고 핸드폰번호를 바꿔도 결국 지인을 건너건너 다시 접근하는 일이 반복된다.
마약사범으로 적발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유통책들은 진술거부와 조작을 종용하려고 끊임없이 마약을 제공한다. 심지어 검찰청과 법원이 있는 서울 교대역 인근 오피스텔에서 “지금 약하고 있는데 오겠냐”고 연락하는 대담함까지 보인다.
◆단순 투약 넘어 판매조직에도 10대…”예방·치료 병행 필요”
10대가 주축이 된 마약유통조직 5명이 소지한 마약류.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판매목적으로 소분해 소지한 케타민, 액상대마, 마약류 포장도구, 마약류 판매대금 압수품. /사진제공=수원지검 |
10대들이 단순 투약이나 지인간 거래를 넘어 전문적인 유통·판매조직에 빠지는 악순환도 포착된다. 마약에 중독돼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마약 배달·유통책으로 일하거나 마약과 성을 교환하는 일명 ‘몸딜’을 하면서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경우다.
10대 중반부터 펜타닐에 중독된 B씨는 10대 후반에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처방받은 펜타닐을 복용하고 밀매상에게 약을 수십회 매수해 투약한 뒤 일부를 재판매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수원지검은 지난 7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마약유통 조직원 A(21)·B(19)·C(17)·D(19)·E(18)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올해 3월 엑스터시(MDMA) 438정, 케타민 256.12g, LSD 162장 등을 소지하면서 ‘던지기’ 수법으로 유통한 혐의를 받는다.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강력한 단속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한 중독성으로 약물의존도와 재범률이 높은 마약사범의 특성상 치료와 재활인프라가 병행돼야 반복되는 투약과 검거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해국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은 “미국처럼 ‘약물법원’을 설치해 주기적으로 법원에서 마약사범 치료를 확인하는 제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코노·카페서 투약하는 10대들”…’마약청정국’ 어쩌다 이 지경 됐나
-온라인 검색해 구매까지 10분도 안 걸려…”수사기관 적극 대응 필요”
“요즘 10대 청소년들은 프랜차이즈 카페 화장실에서 마약을 합니다. 감독하는 사람이 없는 코인노래방도 아이들이 주로 마약하는 장소입니다. 누군가 한명이 마약을 구해오면 친구들끼리 모여서 투약하는 거죠.”
서초동의 한 마약 전문 변호사는 이같이 말했다. 마약류 관련 범죄로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10대 의뢰인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그는 “아무래도 청소년은 돈이 많지 않으니 1회 투약할 분량을 친구들과 나눠 약하게 투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10대 등 젊은 층의 마약류 관련 범죄는 급증세다. 대검찰청의 마약류 월간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10대 마약류사범은 총 481명에 달한다. 수사기관이 인지하지 못한 암수범죄율이 최대 30배 이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한 가상자산(암호화폐) 결제와 서로 만나지 않고 물건을 주고받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이 널리 퍼진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이런 방식으로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수사기관에 적발될 가능성이 줄면서 마약 유통과 투약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사당국 한 관계자는 “5~6년 전만해도 유흥업소 등에서 암암리에 유통되던 마약이 최근에는 SNS를 통해 은밀하지만 공공연하게 거래된다”며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불특정 다수의 중고생들에게 마약음료를 나눠주고 아이의 마약 투약 사실을 알리겠다고 부모를 협박한 사건처럼 단순 투약과 유통뿐 아니라 마약을 이용한 연관범죄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말했다.
실제 기자가 7일 직접 텔레그램으로 판매자 접촉을 시도해봤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텔레그램 계정으로 메시지를 보내자 곧장 답장이 왔다. 믿고 거래를 할만한 사람인지를 확인하거나 나이를 물어보는 절차는 전혀 없었다.
“무슨 약을 살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필로폰, 엑스터시, 대마, LSD, 케타민, 코카인, GHB, 졸피뎀 등이 적힌 시세표를 보내왔다. 필로폰은 0.5g에 40만원, 1g에 70만원이었다. 서울시내 한 번화가 지역명을 이야기하자 “1시간 안으로 받을 수 있다”는 답이 왔다.
그는 “물건을 찾기 쉬운 곳에 던져드린다”며 “무통장 입금이나 비트코인으로 입금해 달라”고 했다. 마약류를 판매하는 텔레그램 계정을 검색해 메시지를 보내고 계좌를 받는 데까지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인구 10만명당 마악류 사범 수를 나타내는 ‘마약류 범죄 계수’는 2012년 18에서 꾸준히 상승해 2015년 23, 2020년 35, 2021년 31까지 올랐다. 계수가 20을 넘어서면 급속한 확산 위협이 있거나 마약 범죄를 통제하기 힘든 상태를 의미한다. 위험 수위를 넘은 지 벌써 10년이 돼 간다는 뜻이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은 “마약과 관련한 통제가 적절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약’ 검색하자 게시물 80개 ‘우수수’…그래도 수사 못한다, 왜
-SNS에 마약 판매 광고 쏟아지는데 처벌 못해…거래 정황 포착해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아이스’, ‘작대기’, ‘빙두’ 등 마약 은어나 마약류명을 검색하면 마약류 판매 광고가 줄줄이 게시되고 있다./사진=트위터 갈무리 |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가상자산(암호화폐)을 입금하고 마약류를 구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거래가 암암리에 이뤄지다보니 적발과 수사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7일 트위터 등에 ‘아이스'(필로폰), ‘떨'(대마), ‘빙두'(북한산 필로폰) 등 마약류를 뜻하는 은어와 엑스터시, MDMA 같은 마약류를 검색하자 1시간 사이 80여개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게시글에는 마약류 사진과 함께 ‘안전 최우선’, ‘빠른 거래’, ‘샘플 보고 가라’는 문구가 함께 게재됐다. 마약상과 1대 1로 연락할 수 있는 텔레그램 계정 아이디도 여럿 눈에 띄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와 함께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단속한 온라인 마약류 판매 광고에서도 전체 적발건수 7887건 가운데 SNS 광고가 5783건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마약류 불법 광고 건수는 2020년 3506건, 2021년 6167건, 지난해 7887건으로 매년 증가세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런 마약류 판매 광고를 성인은 물론, 10대 청소년으로 마약류 관련 범죄가 확산하는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문제는 SNS에 마약류 판매 광고를 올리는 것만으로는 게시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처벌하려면 실제 마약 거래가 이뤄졌다는 정황이 있어야 한다.
서울 지역에서 마약 수사를 전담하는 경찰 관계자는 “SNS 광고만으로는 마약 거래가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어 수사를 시작하기도 어렵다”며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SNS 운영업체에 마약류 판매 광고를 걸러 달라고 건의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SNS를 통한 마약 거래가 늘어나는 이유는 익명성 때문이다. 마약 거래에 주로 사용되는 텔레그램은 대화 내용이 기록으로 남지 않는 데다 애초에 나이, 직업, 이름 등을 속이고 거래할 수도 있어 추적이 어렵다.
경찰 관계자는 “10대가 신상 정보를 속이고 마약 거래를 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며 “결제도 가상자산이나 무통장입금 등으로 하기 때문에 단속이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마약 적발돼도 못 빠져나오는 이유…’꾼’들의 촘촘한 사후관리
/사진=뉴스1 |
마약이 연령을 가리지 않고 확산일로다. 아는 사람을 통해 은밀하게 유통됐던 전통적인 대면 거래 방식이 ‘다크웹’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같은 신종 비대면 유통 채널과 결합하면서 순식간에 성인은 물론, 10대 청소년까지 파고들었다.
서울경찰청이 지난달 30일 판매책 18명과 구매자 52명 등 70명을 검거해 8명을 구속한 ‘파티룸 마약 사건’에서도 마약이 비대면과 대면 거래가 결합한 방식으로 대거 유통됐다. 판매책들은 텔레그램 등을 통해 비트코인을 받은 뒤 약속한 장소에서 마약을 가져가도록 하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공급했고 일부는 유흥업소에서 지인들과 생일파티를 하며 마약류를 투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약 투약사범 사건을 다수 맡은 A 변호사는 “SNS를 통해 마약을 구하더라도 지인들이 어울리는 모임에서 권유하고 함께 투약하는 사례가 많다”며 “여성들끼리 파티를 즐기자고 모인 자리에 한 여성이 남자친구라는 사람을 데려오고 그 남성이 꺼낸 약을 함께 한 사건도 있다”고 말했다.
중독된 사람들은 검거되기 전까지 집단 투약을 반복한다. 마약 범죄는 성행위와 연관되는 경우가 적잖다. 판매책이나 함께 투약하는 남성들이 중독된 여성들에게 마약을 공급하는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한다.
모임을 관리하는 마약 유통·판매책이 중독된 여성에게 공짜 마약을 계속 공급하는 경우도 흔하다. 여성들을 중독 상태로 둔 뒤 이들과 성관계를 원하는 남성에게 약을 판매하기 위해서다.
(서울=뉴스1) =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지난해 6월부터 이달까지 강남 등 인구 밀집 지역 클럽·유흥업소 집중단속을 실시한 결과, 마약 유통 판매책과 구매자 등 70명을 검거하고 8명을 구속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번에 검거된 마약 판매책은 18명, 매수자는 52명이다. 이들은 20~30대의 유흥업소 접객원 및 종업원, 회사원 등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한 판매책이 매수자들의 마약류 투약 편의를 위해 원룸을 개조해 만든 파티룸. (서울경찰청 제공) 2023.3.3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돈벌이 수단이나 성관계 대상으로 전락한 뒤로는 빠져나오기 어렵다. 10대 후반에 남자친구와 함께 마약 투약을 시작한 B씨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에도 다른 남성 마약사범들이 접근해 투약을 권하면서 마약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SNS 등을 통해 퍼진 B씨의 연락처를 통해 남성들이 계속 접근해온 것이다. B씨에게 접근한 이들 중에는 조직폭력배 출신도 있다. 마약 판매책이 B씨를 ‘관리’한 정황이 짙은 대목이다. 현재 B씨는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대면 거래 사건은 투약자나 중간 판매책 1명이 검거될 경우 조직원과 가담자가 줄줄이 잡혀갈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말단 판매책이나 투약자의 얘기다. 상위 판매책은 하위 판매책에게 덮어씌우는 ‘꼬리 끊기’로 수사망을 빠져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위 판매책들은 돈벌이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동원해 투약범들을 관리한다. “○○○ 등을 수사기관에 던지면 나는 안 걸리기 때문에 내가 준 마약을 하는 게 안전하다”는 식으로 투약자를 안심시킨다. “수사기관에 나를 언급하지 않으면 다음에 마약을 또 주겠다”거나 “검·경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시키는 대로 진술하면 빠져나갈 수 있다”고 회유하기도 한다.
A 변호사는 “‘꼬리 끊기’가 수사기관에서 통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일부는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도 사실”이라며 “투약자들도 더 많은 투약 사실이 드러나길 원하지 않기 때문에 판매책이 시키는 대로 본인과 상관없는 판매책을 수사기관에 던지고 다시 마약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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