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남들이 보기엔 좋아 보여도 우리끼리는 언제 탈출할지만 얘기해요.” (1년 차 공무원)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경기도 구리시의 신입 공무원 A씨가 평소 악성 민원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입 공무원들은 A씨의 고충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며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5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 구리시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던 A씨가 전날 근무지에서 벗어나 극단적 선택을 했다. 미혼인 A씨는 지난해 공무원 임용시험에 합격해 시보기간(수습기간) 6개월을 마치고 며칠 전 정식 공무원이 됐다. A씨는 해당 행정복지센터에서 민원 담당 근무를 하며 스트레스로 우울증 약을 복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의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지난 3일 강릉시청 게시판에는 ”강릉시 사회복지직 신입 공무원인 가족이 XX 충동을 느낀다고 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신입 공무원의 가족이라고 밝힌 글쓴이 B씨는 “(처음엔 열정적으로 업무에 적응하려던 제 가족이) 이제는 죽어야 이 일이 끝날 거 같다는 말을 자꾸 한다”며 “제 가족이 지금 그런 정신적인 압박을 받고 있으니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내일은 병원에 데려가서 정신과 상담을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3일 강릉시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 /사진=강릉시청 게시판 |
1년 차 신입 공무원인 박모씨 역시 악성 민원인을 만날 때마다 속으로 삼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하루에 1~2명씩 악성 민원인이 찾아오는 것 같다”며 “만취한 상태로 찾아와서 욕을 내뱉는 사람도 있고 본인이 서류를 누락했는데 빨리 처리를 안해줬다고 물건을 던지고 ‘야야’ 소리 지른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도 이를 악물고 ‘네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원인을 주로 상대하는 주민센터나 동사무소의 경우, 청원경찰이 배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공무원들이 직접 악성 민원인을 대응해야 한다. 박씨는 “사무실에 비상벨이 있긴 한데 경찰과 통화하는 내용이 외부에도 모두 들려 몰래 신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모씨는 업무 매뉴얼이 없어 일을 익히는데도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는 “처음 입사했을 때 업무를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전임자는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경우가 많고 모두들 바쁘다 보니까 각자도생하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민원인이 찾아오면 다른 동사무소에 일일이 전화를 돌려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봐야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신입 공무원에 대한 업무 교육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민원인과의 갈등이 심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민원인 입장에서는 복지행정 전문가를 찾아 온 건데 신입은 아는 내용이 없다고 하니 화를 내는 것”이라며 “충분히 업무를 익힐 시간만 줘도 괜찮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높은 업무 강도 역시 신입 공무원을 힘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1년 차 신입 공무원 신모씨는 “하루에 15명 정도 민원인이 찾아오고 전화는 30통 정도 오는 것 같다”며 “민원인이 제출한 서류들 정리하고 전화로 응대도 하고 구청에서 내려오는 업무도 처리하다 보면 하루가 모자라다”고 말했다.
적은 임금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신씨는 “내가 일한 만큼 보수가 따라오지 않으니 다들 수당을 받아내려고 한다”며 “일이 끝났는데도 늦게까지 남아서 야근 수당을 챙기거나 주말에 나와서도 개인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씨와 신씨는 공무원을 위한 심리 상담 프로그램, 힐링 교육 등이 마련되어 있지만 신청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박씨는 “익명을 보장해준다고 하지만 결국 내가 신청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록이 남을 수밖에 없다”며 “이런 저런 상황 따졌을 때 혼자 삭히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행정연구원이 발표한 ‘2021년 공직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공무원들이 ‘조직에 남고자 하는 의지’는 2.93점으로 최근 5년 중에 가장 낮았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 역시 2017년에는 3.94점으로 가장 높았지만 2021년에는 3.74점으로 최저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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