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놓으면 깜깜해져서 안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옆 골목에서 의류패션 매장을 운영하는 남인석씨(82)는 오전 10시부터 매장 불을 켜놓는다. 이날도 손님 하나 받지 못했지만 남씨는 “이 매장이라도 불을 안 켜놓으면 골목 전체가 너무 어두워보인다”며 멋쩍게 웃었다.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그는 젊은 사람들만 보면 불쑥 마음이 아파온다고 전했다. 남씨는 “정부와 유족 측 간 합의점을 찾기 전까지 이태원 상권의 회복은 어려워 보인다”며 “헛된 죽음이 되지 않도록 아픈 기억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려졌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24일 오후 12시48분께 찾은 이태원역 일대. 날씨가 풀리고 코로나19 규제도 완화되면서 명동, 홍대 등 상권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이태원은 여전히 조용한 분위기였다. 한창 점심때였지만 주로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와 퀴논길에는 사람들이 뜨문뜨문 보일 뿐이였다. 텅 빈 매장에서 틀어놓은 노래소리는 잡음 하나 없이 선명하게 거리로 흘러나왔다. 일가족으로 보이는 외국인 4명은 한창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닫혀있는 가게들을 보곤 다시 이태원역쪽을 향했다.
오후 7시께 이태원 세계음식거리는 술집 영업으로 점심보다는 나은 분위기였지만 이날이 ‘불금’으로 불리는 금요일 밤이었음을 고려하면 거리는 한산하게만 느껴졌다. 이태원역에서 녹사평역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경리단길 가게도 몇몇 맛집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있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10월29일 할로윈데이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1동의 지난달 4주차 카드 매출액은 사고 발생 직전인 지난해 10월 4주차 대비 58.1%, 유동인구는 29% 감소했다.
상인들은 이태원 상권의 회복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의류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정성은씨(45)는 “이태원 상권은 11~12월 장사로 1~2월을 버티고 3~5월을 일해서 여름을 버티는 식이다”며 “원래라면 많이 팔아야 할 시기지만 영업이 잘 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사주타로집을 운영하는 A씨는 “참사 이후 단골이 아니면 찾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평소엔 오후 12시부터 문을 열었었는데 요즘은 예약이 없으면 오후 1시40분부터 나온다”고 했다. 이어 “첫 손님을 오후 6시에야 받은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시가 이태원 상권 회복을 위해 상품권을 발행하는 등의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상인들은 외부 손님들을 유입하기엔 역부족이라는 반응이다. 시는 지난 1~2월 100억원 규모로 발행한 데 이어 3월에는 그 규모를 300억원으로 확대하고 할인율도 10%에서 20%로 올렸다. 이태원상권회복 상품권의 경우 현재 ‘서울Pay+’, ‘신한SOL’, ‘티머니페이’, ‘머니트리’, ‘신한Pay’ 앱 등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용산구 6개 동(이태원 1~2동, 한남동, 보광동, 서빙고동, 용산2가동) 내 서울사랑상품권 가맹점에서 사용 가능하다. 1인당 70만원의 구매한도가 적용된다.
파스타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씨(62·여성)는 “이태원상권회복상품권을 사용해 결제하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주로 지역 주민들 중심이다”며 “상품권을 이용하려고 외부에서 왔다는 손님은 드물다”고 했다. 정씨는 “상품권 가맹점이긴 하지만 음식점이 아닌 의류매장이라 이를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1월부터 상품권으로 결제한 손님은 한 분 뿐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만난 시민들은 상품권이 있는 줄도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오랜만에 이태원에 방문했다는 강모씨(29)는 “전혀 몰랐다”며 “어디서 받을 수 있냐”고 되물었다. 서울Pay+ 앱에 따르면 20% 할인율이 적용된 이태원상권회복상품권은 이날 기준 잔여금액의 30%가 남아있다.
이날 만난 상인들은 어려운 상황을 얘기하면서도 참사에 대한 애도를 잊지 않았다. 이어 단편적인 지원 정책이 아니라 이태원 자체를 기억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하는 상인도 있었다. 남씨는 “추모의 공간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상황에 마음이 편치 않다”며 “헛된 죽음이 되지 않도록 참사를 기억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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