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6살의 나이에 사채 빚을 물려 받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 주인공 이지안(아이유 분). 지안은 물려받은 빚을 갚기 위해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힘겹게 살아간다.
불도 켜지 않은 단칸방에서 지안은 아르바이트하던 식당에서 싸온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배고픔과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커피믹스 2, 3개를 한꺼번에 타 마신다. 그러고도 빚을 다 갚지 못해 허덕이는 지안의 모습에서 많은 시청자들이 애달픔을 느꼈다.
지안과 같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막대한 빚을 물려받아 고통받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는 판례가 최근 나왔다. 부모가 사망한 조부모의 채무 상속을 포기했다면 손자녀가 대신 갚지 않아도 된다는 지난 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지안의 경우 부모의 사채 빚을 물려받은 경우라 판례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빚 대물림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판례는 의미 있다.
2015년 4월 A씨는 돈을 갚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A씨의 배우자는 상속받은 재산 한도 내에서만 빚을 갚는 한정 승인을, A씨의 자녀들은 상속 포기를 택했다.
문제는 A씨 자녀들의 상속 포기로 이들의 자녀, 즉 A씨의 손자녀에게까지 빚이 넘어갔다는 점이다. A씨가 숨질 당시 미성년이었던 손자녀 4명은 상속 포기 신고를 하지 않았다.
기존대로라면 손자녀들이 A씨 배우자와 함께 빚을 갚아야 한다.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에는 배우자와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공동으로 상속인이 된다는 2015년 대법원 판결이 그 배경이다.
하지만 이번에 대법원은 상속을 포기한 A씨 자녀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까지 빚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상속을 포기한 것이라고 봐 8년 전 판결을 뒤집었다. A씨의 배우자가 한정 승인을 택한 것 역시 빚의 대물림을 막고 혼자 빚을 감당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은 “상속을 포기한 피상속인의 자녀들은 부모의 채무가 자신은 물론 자신의 자녀에게도 승계되는 효과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상속을 포기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그럼에도 손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보는 것은 당사자들의 기대와 의사, 사회 일반의 법 감정에 반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손자녀를 공동상속인으로 간주한 종전 판결 이후의 실무를 보더라도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조부모의 배우자와 손주가 공동상속인이 됐더라도 손주가 다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상속을 포기하면서 결과적으로 배우자가 단독 상속인이 되는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는 무용한 절차에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으로, (판례를 변경해) 법률관계를 간명하게 확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유사하게 국회에선 법률지식이나 대응능력이 부족해 부모 빚을 떠안은 사례를 구제할 수 있는 ‘미성년자 빚 대물림 방지법’이 지난해 말 통과됐다. 법정대리인이 한정승인 기회를 놓쳤다면, 미성년 자녀가 성년이 된 후 일정 기간 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도록 개선된 것이다.
지안의 경우 이 법안에 따라 도움받을 수 있다. 지안은 빚을 떠안았을 당시 미성년인 6살으로,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 등을 택할 수 있었지만 주변에 도움받을 수 있는 어른이 없어 홀로 빚을 감당해야 했다. 법안을 통해 한정승인을 선택하면 물려받은 상속분 한도 내에서만 빚을 갚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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