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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부터 뉴진스까지’ 쉼 없이 달려온 케이팝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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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트의 생명은 수출 가능성 유무로 결정된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영역에서 세계화를 기적적으로 이뤄낸 케이팝의 영향력은 그런 측면에서 향후 오랜 시간 사람, 그리고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기억될 것이다. 그 기초가 되는 케이팝의 역사와 가치에 주목했다.”

1세대 아이돌과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의 흐름 K-콘텐츠로 이어져 4반세기 만에 수출 주력사업으로 우뚝 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월 발표한 ‘2021년 기준 콘텐츠산업조사’에 따르면 2021년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124억 5000만 달러로 한국 대표 수출품목인 가전(86억 7000만 달러), 전기차(69억 9000만 달러)를 크게 뛰어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가 반짝이는 현재에 집중하는 순간, 케이팝의 흐름을 아이돌 중심으로 역사적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 주목받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뉴진스까지, 히스토리로 읽는 케이팝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케이팝의 시간’은 90년대 중반부터 202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등장한 아이돌과 소속사, 트렌드와 기원을 역사적 흐름 순으로 다뤄냈다. 20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태양비 작가는 “케이팝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케이팝의 맥락.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책에서 케이팝 그룹을 사조별로 구분해 제시한다. 통상 케이팝 그룹을 세대별로 구분하는 것에 맞춰 집필하려 했지만, 실제 그룹들의 활동기간을 놓고 보니 상충하는 지점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동방신기와 빅뱅은 활동 시기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아이돌이다. 동방신기가 시스템주의 아이돌의 완성형이라면 빅뱅은 뮤지션주의의 창시자라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방탄소년단과 블락비 역시 비슷한 시기 활동했지만, 블락비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한 뮤지션주의였다면 방탄소년단은 아미의 리더라는 커뮤니티 정체성이 강해 커뮤니티주의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책에서 케이팝의 역사 속 그룹의 사조를 ▲시스템주의 ▲뮤지션주의 ▲커뮤니티주의 ▲아이콘주의 등 4가지로 분류해 아이돌의 활동을 정리했다.

통사적 관점에서 케이팝의 역사는 보통 1960년대부터 다루지만, 작가는 대중이 기억하는 강렬한 한 그룹의 등장을 시작점으로 설정했다. 작가는 케이팝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하는 순간에 대해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로 알려진 1992년 4월 11일 MBC 특종 TV연예 방송 무대는 일대 충격의 순간이었다”며 “이 장면엔 화려한 의상, 놀라운 브레이크 댄스, 강렬한 메탈 기타 사운드,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전문가들의 ‘멜로디에 신경을 안 쓴 것 같다’, ‘동작에 노래가 묻힌 느낌이다’ 등의 날카로운 비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인가수에겐 가혹했지만, 이 데뷔곡 ‘난 알아요’는 가요 역사상 손꼽힐 만큼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며 “지금의 스트레이 키즈, NCT, 블랙핑크처럼 활발히 활동하는 케이팝 대표 그룹의 선배이자 시조를 떠올린다면 대부분 이 순간, 이 한 곡을 떠올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양비 작가는 “솔직히 서태지와 아이들, 현진영과 듀스, HOT의 활약을 담은 책 초반부를 집필할 때 가장 재밌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지금의 관점에선 그 시작이 훌륭하진 않고, 또 몇몇 곡의 활동은 명확한 한계까지 보였지만, 그 작은 원소가 커져 빅뱅을 이룬 것처럼 이전과 다른 명확한 특징을 드러낸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작가는 지금의 아이돌 그룹은 더는 ‘시키는 대로 춤추는 인형’이 아닌 ‘아이돌이자 뮤지션’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아이돌, 특히 보이그룹에는 프로듀서가 멤버 중에 있고, 대다수의 멤버는 직접 가사를 쓰려고 노력한다”며 “GD를 기점으로 ‘아이돌이자 뮤지션’이라는 카테고리가 자리 잡았고, 이후 등장한 방탄소년단, 세븐틴, 데이식스, 스트레이 키즈 등 보이그룹들은 직접 음악을 만들고 주도할 수 있는 훈련을 받고 등장한 케이스”라고 강조했다.

책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에 대해 작가는 ‘히치콕’ 같은 인물이라 표현했다. 책 ‘히치콕/트뤼포’를 보면 최고의 흥행 감독이었던 히치콕을 예술영화의 기수인 트뤼포가 자신만의 관점으로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집약해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최근 SM을 둘러싼 논란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태양비 작가는 책에서 다룬 프로듀서 이수만과 사업가 이수만에 대한 평가는 별개 영역으로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H.O.T.는 진정한 의미의 첫 번째 케이팝 아이돌이다. 기획사가 있고, 연습생을 거친 멤버들이 있었으며, 기획사와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협업하며 긴장 관계를 구축한 팬덤이 있었다. 이 모든 요소를 더해야 비로소 케이팝 아이돌이 된다”고 했다. 또한 “상업주의적 관점에서 대중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또 승승장구한 커리어를 오래 이어가며 아이돌 시스템을 만든 그의 경력은 문화 역사에 남을 현상이고, 영화사에 히치콕이 미쳤던 영향력만큼 큰 존재로 각인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IT 회사에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태양비 작가는 케이팝에 관한 다양한 글을 시사 주간지 와 음원 사이트에 연재하면서 출간 제안을 받았고, 케이팝 산업의 가능성을 보고 전업 작가로 전향했다. 그는 “한국에서 어떤 산업, 그리고 직업의 생명은 수출 가능 여부로 결정되는데 그런 면에서 케이팝은 가장 상업적이면서도 기술로 승부하는 예술 분야라는 의식이 생겼다”며 “다만, 기술에 관점 또는 미덕이 없다면 그 기술은 잔재주로 그치게 되는 만큼 책을 통해 단순한 기술을 넘어 K-팝에 담긴 사조를 찾아내 하나의 관점으로 조망했다”고 밝혔다. 영국팝이 비틀스와 브릿팝으로 두고두고 회자 되며 지금도 많은 그룹이 유효한 활동을 펼치듯 K-팝도 오랜 기간 세계 음악시장에서 큰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는 그는 인터뷰 말미, 앞으로도 K-팝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전했다.

작가 태양비는 한 작가의 이름이 아니라 케이팝을 주제로 다양한 콘텐츠에 대해 집필하는 작가 팀명이다. 단 ‘케이팝의 시간’은 그중 한 멤버가 온전히 집필한 책으로, 인터뷰에서는 편의상 태양비로 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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