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3일 이른바 ‘검수완박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표결하는 과정에서 위헌적 요소가 있었지만, 무효는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같은 판결을 두고 여야는 극명하게 대립했다. 여당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반발하는 한편, 야당은 헌재 판결을 존중한다면서 권력 기관 개혁 작업을 완수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헌재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며 항의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 도중 기자들과 만나 “황당한 궤변의 극치”라며 “헌재가 아니라 정치재판소 같아 보인다”고 질타했다.
김미애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말이 떠오르는 결정”이라며 “헌법재판소가 오늘 결정으로 169석 거대 야당 민주당에 국회법이 정한 법사위 심의표결권을 무시해도 된다는 ‘법사위 패싱권’을 공식적으로 부여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지난해 민주당의 검수완박법 강행처리 과정에서 당시 법사위원장은 수적 우위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없게 만든 기구인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민주당에서 꼼수 위장 탈당한 민형배 의원을 비교섭단체 몫 조정위원으로 선임했다”며 “최대 90일 동안 이견을 조정하는 취지인 안조위 논의를 민주당은 17분 만에 졸속 종결한 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오늘 헌재가 민주당의 ‘검수완박’ 의회 폭거에 면죄부를 주었다”며 “상임위에서 위헌적 의결을 했는데, 어찌 본회의 의결이 합헌적인 것이 되는가. 어떤 국민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헌법 소송을 제기한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위장 탈당을 하고 당시 법사위원장이 안조위를 거치지 않은 법안을 가결했기 때문에 그것이 인정된다면 법사위원장의 가결 결의도 무효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며 “정치적으로 법안의 효력을 무효로 하지 않은 여러가지 배경이 있거나 잘못된 논리적 판단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유감을 표했다.
반면 민주당은 헌재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일부 절차상의 문제가 지적된 점에 대해서는 유감이라고 밝혔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직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헌법 정신에 기인해 국회의 입법권과 검찰 개혁의 입법 취지를 존중한 결정”이라며 “민주당은 이번 헌재 판결을 계기로 권력 기관 개혁 마무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으로 불리는 시행령을 개정한 것을 지적하며 당장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한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검찰 개혁 입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분명하게 사과하고 당장 불법 시행령부터 원상 회복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안 통과 당시 법사위원장을 맡았던 박광온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늦었지만 헌재를 통해 검찰개혁 법안의 적법성이 인정됐다”며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다만 “검찰개혁 법안은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과 박홍근·권성동 양당 원내대표가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쳐 만들어 낸 안이었다”며 “여당과 야당의 의원총회에서 수용된 안이다. 양당의 원내대표단과 법사위원들은 법사위에서 통과시키기 직전까지 법 조문을 조율했다”고 헌재에서 인용된 절차상의 문제에 대해 반박했다.
한편 법안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위장탈당’으로 논란이 됐던 민형배 무소속 의원의 복당 여부와 관련해서는 향후 당 차원에서의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민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가 안조위에 가기 위해서 법사위에 옮겨온 것처럼 나오는 것은 완전히 오보”라며 “저는 한 장관의 인사청문회를 위해서 단 한 사람하고 사보임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이어 “저는 제삼자였다”며 “명백히 이것은 검찰, 국민의힘에서 정치 장사를 한 것”이라고 호소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6월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사건을 기존 6대 중요범죄(경제·부패·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부패·경제범죄 등 2개로 축소하고, 수사 개시 검사와 기소 검사를 분리하도록 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유상범·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 소속의 박 당시 법사위원장과 박 의장이 개정안들을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가결한 행위가 소수당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는지, 이 행위가 무효인지를 확인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헌재는 이날 유·전 의원이 당시 박 법사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권한쟁의 심판 청구를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인용했다. 법사위원장이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가결한 행위가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해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검수완박법’을 가결·선포한 국회의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는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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