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최장 ’69시간’ 근로를 골자로 한 노동법 개정안과 관련해 한국의 논란을 조명하는 외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NBC 방송은 “한국에서 주당 근로시간 상한을 52시간에서 69시간으로 늘리는 방안이 젊은 노동자들의 극심한 반발을 불렀다”고 보도했다.
NBC는 이 과정에서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과 관련한 세대 간 논쟁도 촉발됐다면서,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흐름의 일부라고 진단했다.
미국에선 맡은 일만 최소한으로 소화하는 직장인을 가리키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나, 자발적 퇴직이 급증하는 추세를 의미하는 ‘대퇴사(The Great Resignation)’ 등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퇴직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연금 개혁이 국민적 반대에 막혀 심각한 역풍을 맞고 있다.
한국 또한 주 69시간 근로제 철회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학생들 사이에서도 일며 관련 대자보들이 학내를 채우고 있다.
지난 21일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은 교내 대자보를 통해 “지난 3월 8일, 4일 연속 62시간 노동을 하던 경비 노동자가 종로구의 한 빌딩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며 “일하는 사람의 질병과 죽음을 초래할 69시간제 노동시간 연장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밝혔다.
NBC는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더 짧은 근무시간이나 재택근무에 익숙해진 많은 노동자가 임금을 벌기 위한 노동에 지배되는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의향이 있는지 재고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의 일 중독 문화’가 있는 한국의 경우 과도한 노동과 관련한 우려가 특히나 심각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초과근무 일상화에 회식 참석까지…일 중독이 공중보건 측면까지 영향 미쳐
실제로 한국 근로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많다. 미국과 프랑스 근로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각각 1791시간과 1490시간이다.
초과근무가 일상화해 있고 일을 끝내도 상사보다 먼저 퇴근하기 힘든 데다 퇴근 후엔 회식까지 참석해야 해 과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으며, 최근 직장인을 위한 ‘낮잠 카페’가 한국에서 성행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NBC는 지적했다.
또 NBC는 한국의 자살률이 10만명당 26명으로 선진국 중 가장 높고,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이 2022년 기준 0.78명으로 세계 최저인 것을 언급하면서 “일 중독이 공중보건 측면에서도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에선 전체 인구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20∼30대 MZ세대를 중심으로 이런 일 중독 문화에 저항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에 한국 정부는 21일 ‘주 52시간 근로제’를 유연화하되 60시간 이내로 상한선을 둬야 한다는 수준으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고 NBC는 덧붙였다.
한편, 미국 CNN 방송도 지난 20일 한국의 노동시간 조정 문제를 다루며 한국 노동자들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과로사’로 매년 수십명이 목숨을 잃는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근로시간 상한 확대에 반대하는 이유를 소개했다.
지난 14일에는 호주 ABC 방송이 이와 관련한 논란을 전하면서 과로사를 발음 그대로 ‘kwarosa’로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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