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갑질119가 16일 ‘경비노동자 갑질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0월 경비노동자 5명, 청소노동자 1명, 관리소장 1명, 관리사무소 기전 직원 2명 등 총 9명을 심층 면접해 정리한 갑질 피해 실태가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자 9명 모두 입주민으로부터 고성·모욕·외모 멸시, 천한 업무라는 폄훼, 부당한 업무지시·간섭 등 갑질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입주민이 자녀에게 ‘공부 잘해라. 못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고 대놓고 비하하는 발언을 비롯해 일부는 “키도 작고 못생긴 사람을 왜 채용했냐, 당장 바꾸라”, (경비초소에 불을 켜놓은 것을 두고) “너의 집이었으면 불을 켜놓을 거냐”는 등 폭언에 시달렸다.
9명 중 6명은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강남 아파트의 70대 경비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업무 외 부당한 지시를 수행하는 등 ‘원청 갑질’을 경험했다.
경비노동자 A 씨는 “관리소장 지시로 갑자기 정화조 청소를 했다. 분뇨가 발목까지 차오르는 곳에서 작업하고 나왔는데 독이 올라 2주 넘게 약을 발랐다”고 진술했다. 입주민과 갈등이 발생했을 때 해고 종용을 당하거나 근무지가 변경되는 경우도 있었다.
경비 노동자 B 씨의 경우 “입주민에게 차를 빼달라고 요청했다가, 경비 주제에 무슨 말을 하냐며 관리사무소에 얘기해서 그만두게 하겠다고 협박한 경우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입주민에게 이러한 해고 협박을 받은 노동자는 9명 중 4명에 달했다.
경비노동자가 갑질에 노출되는 근본적인 이유…간접 고용 구조와 초단기 근로계약기간
직장갑질119는 경비노동자들이 입주민·용역회사 갑질에 노출되는 근본적인 이유로 간접 고용 구조와 초단기 근로계약 기간을 꼽았다.
조사 대상 노동자 9명 모두 1년 미만의 단기 근로계약을 반복해서 체결하는 고용 형태였다. 경비회사에 고용된 경비노동자의 계약기간은 더욱 짧았다. 5명 중 4명은 3개월 단위로, 1명은 1개월 단위로 계약을 체결했다.
직장갑질119는 관련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 용역회사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 ▲ 입주자 대표 회의의 책임 강화 ▲ 갑질하는 입주민 제재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 대상 확대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 2021년 10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일명 ‘경비원갑질 방지법’)을 시행해 경비 노동자들이 갑질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기틀을 마련한 바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 등 입주민이 경비노동자에게 차량 대리 주차 혹은 택배 세대 배달 등의 요구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실질적 고용주인 입주자와 경비노동자 사이에 자연스럽게 갑을 관계가 형성돼 있어 갑질이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모습이다.
경기노동자권익센터의 경비노동자 갑질피해지원센터에 따르면 갑질피해 상담을 포함한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상담건수는 2020년 19건에서 2021년 187건 등이었다. 경비원갑질 방지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지난해에도 73건에 달하는 상담이 접수되는 등?갑질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더욱이 갑질에 의한 피해는 신고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실제로 피해를 겪는 경비노동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경기노동자권인센터는 보고 있다. 특히 공동주택 경비 노동자 대부분은 3개월이란 초단기 계약을 맺기 때문에 재계약을 위해선 갑질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현철 직장갑질119 사무국장은 “‘법’이 있어도 입주민과 관리사무소가 갑, 경비 노동자가 을이란 관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경비 노동자들이 항의하지 못하고 괴롭힘을 참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근로 계약 기간을 늘리는 것인 만큼 이들의 근로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