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를 향해 ‘거수기’ 논란 등 비판이 많지만 전문성을 지적하진 않는다.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의 면면을 보면 개별 분야 정점에 있는 명망 있는 인사들이다. 사외이사의 경영 자문도 뛰어나다. 다만 사외이사의 제안이 금융사의 의사결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구조는 문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10일 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의 ‘2022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까지 혹은 지난해 내내 이사회에서 활동한 사외이사 총 36명 가운데 13명은 은행, 증권사, 협회 등에서 대표를 지낸 시장 전문가들이다. 12명은 서울대·오사카상업대 등 유수 대학의 전·현직 교수, 7명은 금융·재정·통화당국 고위 공무원 출신이다. 검사·변호사 등 법조계는 4명이다.
금융지주에 따르면 주요 추진 사업, 경영 전략 등은 반드시 사외이사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 일부 사안은 사외이사들의 결의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외이사의 자문 역량이 발휘된다. KB금융의 사례를 보면, 검사 출신 정구환 사외이사는 생명보험사 통합 추진·자체정상화계획 수립 과정에서 그룹 현안을 점검해 법률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신한금융 이사회는 신한금융이 BNP파리바카디프손해보험을 인수해 지난해 7월 출범한 신한EZ손해보험 대표이사로 손해보험업과 디지털업 모두에서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재를 적극 영입했다. 삼성화재 출신으로, 보험업계에서 IT 전문가로 알려진 강병관 대표다. 지난해 11월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에 불안정성이 생겼을 때는 내부 유동성 관련 시스템·프로세스를 점검하라고 경영진에 요구했다.
전문가들도 사외이사의 역량은 검증돼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권흥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사 사외이사는 리스크, 법률 부문 등 매우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는 소수의 고급 인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사외이사가 자신이 소속돼 있는 금융사에 제대로 기여를 못한다면 좁은 ‘사외이사 노동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만 사외이사들의 목소리가 금융사 경영에 제대로 반영되는 지는 미지수다. 특히 사외이사 제도의 ‘꽃’으로 꼽히는 대표이사 선임·해임 권한은 금융권에서 유독 약해보인다. 정부 입김이 인사 시즌마다 개입하고, ‘낙하산’ 인사가 갑자기 대표로 임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차기 지주 회장 인선을 마친 한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이같은 ‘관행’에 회의를 느끼고 자진사임했다.
이에 이사회 제도에 대한 전면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온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사외이사 제도의 본질적인 문제는 이사회 자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라며 “이사회에 명확한 견제 기능을 보장하지 않으면 한국 이사회는 계속 겉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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