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양자컴퓨팅, 양자센싱 기술은 미국 등 선진국들에 비해 5~10년 뒤처져 있다.” (이용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초전도양자컴퓨팅시스템 연구단장)
슈퍼컴퓨터도 100만년 걸려 풀 암호를 단 몇초 만에 풀어버리는 게 양자컴퓨터다. 글로벌 IT(정보·통신) 공룡 IBM과 구글가 2019년 양자컴퓨터를 상용화한 뒤 전 세계가 양자기술 경쟁에 뛰어들었다. 챗GPT(chatGPT) 등 인공지능(AI)을 비롯해 반도체, 통신, 센싱(감지) 등의 기술에 접목될 경우 경제 뿐 아니라 군사 분야에서도 전 세계의 판도를 바꿔놓을 수 있는 게 양자기술이다.
그러나 IT강국이라 불려온 한국의 양자기술 수준은 통신 분야를 제외하곤 미국과 중국, EU(유럽연합) 등에 비해 최대 10년 가량 뒤처져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회에선 양자기술 육성에 힘을 싣기 위해 발의된 법안이 1년 가까이 잠들어 있다.
11일 국회에 따르면 양자기술 육성 지원을 골자로 하는 ‘양자기술 개발 및 산업화 촉진에 관한 법 제정안'(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지난해 1월 발의됐다. 그 해 3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법안소위에 회부된 이 법안은 아직도 소위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논의도 지난 2월에야 시작됐다. 지난 1월 발의된 ‘양자기술 및 양자산업 집중육성에 관한 법 제정안'(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안)과 함께였다.
이 법안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양자기술과 관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5년마다 양자발전전략을 수립하고 관련 R&D(연구·개발)와 상용화, 표준화, 인력양성 등을 지원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양자기술을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 나라의 새로운 먹거리로 키우자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를 양자과학기술 도약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참모들과 함께 양자기술 학습에 열을 올리는 것도 양자기술없이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에서 양자 분야 석학들과 대담을 가진 뒤 각종 서적과 유튜브 등을 통해 양자기술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달초 약 1조원 규모의 ‘양자과학기술 플래그쉽 프로젝트’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신청한 것도 윤 대통령의 의지와 무관치 않다. 내년부터 2031년까지 8년간 총 9960억원이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양자컴퓨터·통신·센서 분야 핵심 기술들을 확보한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양자기술 육성을 위해선 국가 차원의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동헌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는 “양자기술 관련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학원 수준에서 인력을 양성하고, 장기적 안목에서 꾸준히 지원해야 한다”며 “양성된 인력이 이후 각계로 진출할 수 있도록 산학연 모든 분야에서 관련 일자리가 창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양자센서 분야의 기업들이 마중물 역할을 하고 추후 양자기술이 발전하면 양자통신, 양자컴퓨터 등 어려운 분야에서도 산업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문한섭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양자기술 연구를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했다”며 “그런데도 투자 규모도 작고 전문인력까지 부족해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AI 기술도 몇 차례의 부침을 겪었다”며 “양자기술 역시 그럴텐데,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구를 계속한다면 다른 나라들이 양자기술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졌을 때 역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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