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고위험 성범죄자가 출소 후 학교, 어린이집·유치원 등지에서 500m 이내에 살지 못하도록 하는 ‘한국형 제시카법’을 추진하는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정책적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법도 종합법률사무소의 엄정숙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23일 “교육환경법에 따라 교육 환경보호 구역 내에서 불법 성매매 업소나 마사지 업소 등은 영업이 불가능하다”며 “사회적인 합의로 성범죄자 거주 제한 정책은 추진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나란 서지원 변호사는 “성범죄자 격리에 대해 정교하게 정책을 짤 필요가 있다”면서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한 경우에는 효과가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성범죄자를 격리하더라도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주권 제한이 위헌 요소라는 의견도 나온다. 법무법인 한세 강길 대표 변호사는 “현재 신상 공개만으로 충분하다고 보고 거주지 제한을 하는 것은 지나쳐 보인다”며 “과도한 거주지 제한은 위헌 법률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보호시설 설립과 관련해서는 “대상자들이 처벌을 받았는데 다시 시설로 가는 것은 감금 행위에 해당할 수 있고 일종의 처벌이기 때문에 이중처벌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지난달 상습 성폭행범이나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자 등 재범 우려가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교육 시설 반경 500m 이내 거주를 제한하는 내용의 한국형 제시카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국 성범죄자(3172명) 중 36%(1130명)가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살고 있어 이동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성범죄자들이 한 곳에 몰려 살게 되면, 오히려 치안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진단도 있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도심지 기준으로 제시카법을 적용했을 때 실제 성범죄자의 거주공간이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며 “결국 성범죄자들이 몰려가는 지역에 치안 불안정이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범죄자들이 한 곳에 몰려 관리의 효율성은 있겠지만, 오히려 치안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밀리고 밀리다 보면 성범죄자촌처럼 형성될 수 있다”면서 “결국 교화가 안 됐다는 전제하에 재범을 우려하는 부분이 있는데 성인지 감수성 개선, 교도관의 역량 강화 등을 통해 사법 제도 안에서 이들의 행동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성범죄자 집단 보호시설을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조두순, 김근식 등이 출소 후 경기도 안산, 화성 등에 거주하려 하자 지역 주민들은 시청에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한국 특유의 지역 이기주의에 대해 고민해 보고, 시설 등을 수용했을 땐 구체적인 혜택을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거주 제한 조건을 붙이는 보호 수용 조건부 가석방 제도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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