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월급도 이렇게 인상됐으면 벌써 집 샀겠네요.”
경기도 화성시에서 서울 양재동으로 하루 왕복 3시간 거리를 출퇴근하는 30대 남성 정모씨는 이같이 말했다. 퇴근 후 혼자 국밥과 소주 한 잔을 즐기는 정씨는 “국밥이 7000~8000원인데 소주가 6000원이면 술값이 거의 밥값 수준”이라며 “1병에 3000~4000원이 적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 1병을 다 비우지 않아서 더 부담스럽다”며 “앞으로 편의점에서 사서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해야겠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이모씨(26)씨도 “소주 가격이 40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랐을 때 ‘비싸서 어떻게 마시냐’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또 오른다고 한다”며 “앞으로는 2명이 소주 1병·맥주 2병으로 소맥을 말아 마시면 술값만 2만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와인 또는 사케를 3만~4만원에 파는 가성비 좋은 와인바와 이자카야(일본 선술집)가 많이 생기지 않았냐”며 “그 돈이면 와인을 마시겠다”고 했다.
지난해 일제히 올랐던 소주와 맥주 가격이 올해 또 인상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시민들과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4월부터 맥주 주세 30.5원 올라…전년보다 인상폭 커
지난 19일 서울시내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소주, 맥주 제품을 고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
2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오는 4월부터 맥주에 붙는 세금이 지난해보다 리터(ℓ)당 30.5원 오른 885.7원이 된다. 지난해 리터당 20.8원보다 인상 폭이 커졌다.
맥주 세금 인상은 주류 업계의 출고가 인상으로 이어진다. 지난해에도 하이트진로는 테라와 하이트의 출고가를 7.7%, 롯데칠성음료는 클라우드의 출고가를 8.2% 각각 인상했다. 또 원·부자재 가격과 물류비·전기료 등이 오르고 있어 출고가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
소주도 가격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주세가 오르지는 않지만 원재료 값과 에너지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주정 회사들은 소주의 원료가 되는 주정(에탄올) 가격을 10년 만에 7.8% 올렸다. 소주병 제조 업체들도 최근 소주병 공급 가격을 병당 180원에서 220원으로 20% 인상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요소들이 소주 원가 부담으로 이어져 출고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주류회사들이 출고가를 인상하면 마트나 식당에서 파는 술 가격은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해 소주 1병당 출고가가 85원가량 오르자 마트·편의점 판매 가격은 병당 100∼150원 인상됐다. 식당과 주점에선 소주 가격을 병당 500~1000원가량 올렸다.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추세로 출고가가 오르면 식당에서 ‘소주 1병 6000원’ 가격표를 보게 될 수도 있다.
식당에서 판매되는 소주 가격의 인상폭이 큰 이유는 유통 구조 때문이다. 주류 유통은 ‘주류제조사→주류 취급 면허 취득 전문 도매상→소매점→소비자’ 순으로 공급된다. 도매상은 유통 과정에서 마진을 붙인다. 그러면 최종판매가는 병당 300~500원가량 높아진다. 1100원대에 출고됐지만 식당 업주들에게는 병당 1400~1600원에 판매된다. 업주는 여기에 마진을 붙여 판매한다. 요식업계에서는 500원, 1000원 단위로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업주들은 올해의 경우 물가와 운영비가 치솟으면서 가격 인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압구정동 소재의 한 주점 업주 김모씨(26)는 “인건비에 난방비까지 안 오른 게 없다”며 “주요 매출인 주류의 가격을 높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외식산업연구원이 일반음식점 외식업주 130명을 조사한 결과 55.4%가 소주 출고가 인상에 따라 소주 판매가격을 올렸거나 올릴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미 올린 업주들은 “병당 500∼1000원을 인상했다”고 답했다.
“올릴까 말까”…고민 깊어지는 자영업자들
회식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술값 인상 예고에 서울 강남구에서 한우전문점을 운영하는 원모씨(57)는 “지난해 소주 가격을 40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렸을 때 2개월 동안은 손님들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따졌다”며 “실제로 그 기간 소주가 덜 팔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가게 매출이 20%는 줄었다. 이미 힘든데 더 힘들어질 것 같다”면서도 “흙 퍼다 장사하는 것 아니니까 업체에서 올린다고 하면 우리도 올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가격 인상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자영업자들도 있었다. 서울 강남구 한 해장국집 사장 박순휘씨(49)는 “소주 가격을 6000원으로 인상할지는 주변 가게들의 동향을 보고 결정할 것”이라며 “소주 1병을 6000원에 마신다는 게 소비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격이 오르면 처음에는 사람들이 안 먹으려고 한다. 특히 올해는 경기가 안 좋아서 더 그럴 것”이라며 “지난해에는 ‘무슨 소주가 5000원이냐’며 가게 안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간 손님들도 종종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해 주류 물가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이 올랐던 것으로 파악됐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주류 가격은 전년 대비 5.7% 뛰었다. 1998년 주류 가격 상승률은 11.5%이었다. 경제 위기와 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주류 가격 상승률은 통상 2%대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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