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를 착용한 성범죄자가 세입자로 들어왔습니다. 아이가 있는 가정 등 주변 다른 주민들의 반발이 심한 상태인데 계약 해지는 어려울 것 같아 고민입니다.”
집주인 A씨는 이달 세입자가 전자발찌를 착용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A씨는 주변 주민들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지만 정식 임대계약 해지는 어려워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고 21일 밝혔다. 현재 입주민들은 세입자의 퇴거를 요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세입자에 계약 해지 통보를 하더라도 법원의 판단을 구해야 하는 만큼 해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앞서 성폭행범 박병화와 원룸 임대를 계약한 집주인은 당시 박씨가 거주할 것이란 사실을 전혀 몰랐다. 박씨의 어머니가 대신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박씨가 오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로 방을 내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성범죄자 가족 대리 계약도…일일이 확인 어려워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부동산을 대리로 계약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부동산은 “성범죄자가 사전에 말을 해주지 않으면 계약할 때 일일이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계약상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집주인은 계약 무효 사유라고 주장할 순 있겠지만 부동산 입장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의 한 부동산은 “최근 수년간 범죄자 신상 관련 특약을 요청하거나 이를 확인하는 작업은 전혀 없었다”며 “가뜩이나 계약도 줄고 있는데 성범죄자 관련 이야기를 중개소 입장에서 꺼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헌법상 주거권 명시…’특약’ 명시해 사전 파악 필요
법조계에서는 계약한 이후에 해당 사실을 알게 됐다면 실제 해지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법도 종합법률사무소의 엄정숙 부동산 전문변호사는 “계약의 효력 자체가 강력한 구속력이 있기 때문에 전자발찌 착용을 해지 사유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면서 “헌법상에도 주거권이 명시돼 있기 때문에 법원 판결도 해지로 해석하긴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서지원 법무법인 나란 변호사는 “범죄의 경중과 관계없이 전부 계약 해지 사유로 보긴 어려울 것 같다”며 “임차인이 계약 해지를 통보할 경우 임차인은 일방적으로 부당한 계약이라고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거주하면서 성범죄를 저질렀거나 손해를 끼쳤으면 명백한 계약 해지 사유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약 사항에 ‘범죄와 관련되지 않았으며 개인 신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대리 계약일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거주할 경우 범죄와 관련된 신상이 없어야 한다’ 등의 내용을 명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일부러 하지 않음)에 의한 기망 행위로 취소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법원은 고지의무 위반에 대해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로 보고, 사기죄가 성립된다고 보고 있다. 기망행위란 사람을 착오에 빠뜨리는 행위를 말한다. 강길 법무법인 한세 변호사는 “집주인이 성범죄자인 것을 알았다면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알려야 하는 사항임에도 알리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면 이를 부작위에 대한 기망행위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