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을 맞아 격려 행보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곁에 딸 김주애가 파격적인 연출과 함께 등장했다. 북한이 김주애를 의도적으로 띄우면서 잠잠해졌던 ‘후계자’에 다시 불을 지폈다.
8일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인민군 창건 75주년을 하루 앞둔 전날 군 장성 숙소를 찾았다고 전하면서 “김정은 동지께서 존경하는 자제분과 함께 숙소에 도착하셨다”고 밝혔다.
김주애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11월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현장이다. 이후 같은 해 11월26일 ICBM 개발 및 발사 공로자와의 기념사진 촬영 행사에 동석한 뒤 이번이 세 번째다.
조선중앙TV가 지난달 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결과를 보도하면서, 김 위원장과 김주애가 탄도미사일 관련 시설을 시찰하는 모습을 공개한 것까지 합치면 네 번째다.
점점 격상하는 호칭…金 초상휘장까지 뗐다
눈여겨볼 점은 달라지는 호칭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해 11월 김주애를 처음 소개할 당시 “사랑하는 자제분”이라 언급했다. 두 번째 자리에선 “존귀하신 자제분”이라고 높여 불렀고, 이번에는 “존경하는”이라는 다소 이례적인 수식어로 표현했다.
이날 공개된 사진들을 보면, 김주애의 위상을 격상하려는 북한의 의도가 담긴 파격적인 연출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우선 김주애는 헤드 테이블에서 아버지 김 위원장과 어머니 리설주 여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사진의 초점은 김 위원장이 아닌 김주애를 향했고, 김 위원장과 리 여사 역시 몸을 돌려 김주애 쪽으로 향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박수일 인민군 총참모장과 강순남 국방상, 정경택 인민군 총정치국장, 황병서 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손꼽히는 군 장성들은 김주애 뒤에 병풍처럼 꼿꼿하게 선 모습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연회장에 들어서는 장면에서도 최고지도자의 손은 부인이 아닌 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반면, 김 위원장의 여동생이자 북한 정권의 여성 중 최고 실세로 평가되는 김여정 당 부부장의 사진은 별도 발행조차 되지 않았다. 여러 참석자들 틈에 섞여 있는 모습이 조선중앙TV에 스치듯이 포착된 게 전부였다.
김주애가 가슴에 ‘김일성·김정일 초상휘장’을 달지 않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김주애는 앞선 대외활동 당시에도 초상휘장을 부착하지 않았다. 리설주 여사도 휘장 대신 북한의 국장(國章·나라를 상징하는 공식적인 표장)을 형상화한 브로치를 달았다.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 초상휘장을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김 위원장과 리 여사 정도다. 김여정 부부장도 항상 가슴에 초상휘장을 단 채 활동한다.
“후계자 의심할 여지 없어” vs. “미래세대 상징”
이 때문에 김주애가 김 위원장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다시 점화했다. 김주애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부터 일부 전문가는 그가 후계자로 정해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지만,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초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김주애가) 후계자가 된다는 판단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취지로 보고한 바 있다.
하지만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존경하는’이라는 표현으로 위상을 한층 더 높인 점에 주목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19일자 노동신문에선 김주애를 ‘사랑하는 자제분’이라고 표현했는데, 같은 달 27일자 보도에선 김정은이 ‘제일로 사랑하시는 자제분’이라는 수식어로 김정은의 후계자가 될 것이란 점을 보다 명확히 시사했다”며 “나아가 ‘존경하는’이라는 표현으로 김주애에 대한 개인 숭배를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김주애가 김정은의 후계자로 내정된 걸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이것이 앞으로 북한의 국내외 정책에 중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북한 주민들이 4대 세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그저 북한의 미래세대를 상징하는 것일 뿐이라는 분석도 여전하다. 박계리 통일교육원 교수는 “김주애가 초상휘장을 달지 않은 데 반해 김여정은 늘 달고 있는 건 백두혈통을 떠나 ‘실질적 리더가 누구인가’를 나타내는 부분”이라면서도 “김주애가 후계자라는 뜻이 아니라 정통성이 있는 적통임을 부각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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