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북 장수에서 결혼 3개월 차 지역농협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족은 유서를 토대로 “노량진 킹크랩을 사오라”는 등 상사의 괴롭힘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지역농협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유독 자주 터지는 곳이다. 특유의 폐쇄적인 분위기와 가해자에게 유리한 내부 규정이 괴롭힘 신고를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전북 장수농협의 직원 이용문씨(32)는 사무실 건물 앞 주차장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족은 기자회견을 열고 “아들이 (센터장의) 괴롭힘 때문에 죽었다”고 주장했다.
유족 주장을 종합하면 센터장 A씨는 이씨의 주차, 화장실 이용, 결혼식 등을 문제 삼았다. ‘왜 일을 이렇게 하느냐’며 직원들 앞에서 면박도 줬다.
A 센터장은 이씨에게 “서울 노량진에 가서 킹크랩을 사 오라”는 지시도 내렸다고 한다. 이씨는 유언장에 ‘택시를 타고 사비로 킹크랩을 사 왔다’고 썼다.
앞서 이씨는 정신과 상담을 받다가 지난해 9월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잠적했다. 경찰이 이씨를 발견했고 농협은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A 센터장의 괴롭힘이 없었다는 취지로 조사를 종결했다. 4개월 뒤 이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후 유족은 경찰에 A 센터장을 고소했고,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해 장수농협의 조직 문화를 전반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A 센터장은 수사, 조사가 끝날 때까지 명령휴가를 받았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경찰 수사나 고용노동부 조사가 끝나면 그 결과에 따라 엄중히 문책할 계획”이라며 “수사, 조사에도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다.
전북의 한 지역 단위농협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직원 이용문씨(32)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이씨 유족이 지난 25일 전북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하기 전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
지역농협 조합장, 형 확정 전까지는 직위 유지
지역농협에서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은 꾸준히 불거진다. 지난달 30일 인천 서부경찰서는 인천의 한 지역농협 조합장 B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입건했다. 조합장은 여직원에게 귓속말하고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 혐의를 받는다. 충남의 한 조합장 C씨는 “모텔방을 잡아달라”는 등 여 직원 두명을 성희롱한 의혹으로 기소돼 지난해 12월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역농협 특유의 분위기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직장 내 괴롭힘, 갑질에 관한 경각심이 낮아서 조직 내 정화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아울러 피해자-가해자 분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장수농협 직원 이씨의 유족은 “괴롭힘을 신고했지만 피해자와 가해자의 업무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매일 얼굴을 맞대며 조롱과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역농협의 수장 격인 조합장은 괴롭힘 의혹이 불거져도 재판에서 형이 확정되기 전에는 직위를 유지할 수 있다. 인천과 충남의 조합장 B씨와 C씨도 직위를 유지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혐의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농협은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돼도 항소, 상고를 하면 조합장의 직무를 정지하지 않는다. 당초 농협법 46조 3항에는 ‘금고 이상’ 형이 선고만 되면 조합장 등의 직무를 정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3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해당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무죄추정 원칙과 평등권에 어긋난다는 취지였다. 당시 헌재는 국회의원 등 공직자도 1심 선고만으로 직무를 정지하지는 않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도 헌재는 ‘직무정지’ 장치는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인 위험이 예상되거나 사회적으로 비난 가능성이 큰 범죄는 직무정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조항이 위헌 결정으로 삭제된 후 대체 입법이 이뤄지지 않았다. 농협은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직무정지한다”는 포괄조항으로 직무정지를 하지만 형이 확정돼야만 하고 있다. 센터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기업과 비교하면 느슨한 기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은 임직원 구분 없이 형사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으면 징계면직(파면)당한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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