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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정이’ 시뮬레이션 전투신…이곳에선 영화 아닌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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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국내 1호 시뮬레이션 전문센터, 전기硏 ‘스마트이노베이션센터’ 가보니

전기연 스마트 이노베이션 센터 전경/사진=전기연

넷플릭스 SF(공상과학)영화 ‘정이’에선 가상 전쟁 시뮬레이션이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하지만 각종 군(軍)로봇과 대적한 전투현장이 알고보니 실내 좁은 원형무대 위에서 일어난 가상현실(VR) 전투였다는 설정은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VR를 배경으로 인간이 설계한 그래픽에 맞춰 지형지물을 만드는 특수바닥장치, 벽엔 각종 센서·카메라·다연발총 등이 부착돼 실제 전투현장 분위기를 연출하는 극중의 특수시설. 이를 현실에서도 그대로 만들 수 있을까.

정이(JUNG_E)/사진=넷플릭스

백명기 한국전기연구원(이하 전기연) 공정혁신 시뮬레이션 센터장은 “정이를 봤는데 총을 맞았을 때 타격감은 몰라도 시뮬레이션 전투신은 저희 AR·VR(증강·가상현실)룸에서 그대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7일 찾은 경남 창원시 전기연 정문 앞 스마트 이노베이션센터. 전기연은 지난해 12월 22일 문을 연 이곳 내부를 국내 언론사 중 처음으로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에 공개했다. 시뮬레이션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술센터로는 국내 처음이다.

재료실험 회의실/사진=류준영 기자

1층 재료실험회의실에 들어서자 눈짐작으로 대략 높이 2미터(m)가 넘어 보이는 만능재료실험기가 있었다. 신소재를 활용한 부품·기기를 개발·검증하는 시뮬레이션을 제작하기 전에 물성 데이터베이스(DB)를 확보하는 일종의 전처리 시설이다.

전기연 공정혁신시뮬레이션센터 이희준 박사는 “메탈 소재를 올려 놓고 1톤(t)까지 부하를 줘 표면부 인장 잔류응력 등의 로우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면서 “시뮬레이션을 할 때 검증된 물성 데이터를 써야 제대로 된 결과값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옆방엔 이보다 더 큰 재료실험기가 놓여 있었다. “선박, 탱크 부품 등 주로 10톤 이상일때 쓴다”고 했다.

시뮬레이션 기술을 강의하는 모습/사진=전기연

2, 3층은 창원대, 경남대 학생들이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SW)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학습하는 공간이다. 지역 내 산·학·연과의 협력을 통해 시뮬레이션 관련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 매년 100여명 이상의 해석기술 전문인력 양성에 나설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대학의 교육 커리큘럼, 연구장비 등을 한데 모아 관리·활용하는 공유대학 개념으로 운영된다. SW 활용 교육은 전기연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 박사급 연구자들이 주로 맡을 예정이다. 백명기 한국전기연구원 공정혁신 시뮬레이션 센터장은 “경남권 제조기업들 대부분이 비용절감을 위해 시뮬레이션 전문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면서 “작년에 비슷한 교육과정을 운영한 적 있는데 50명 학생 중 43명이 취업에 성공했다”고 귀띔했다.

4층엔 성인 허리만한 초대형 빔프로젝트가 3면에 설치된 가상현실검증시스템실이 위치해 있다. 주로 시뮬레이션 결과물을 입체영상으로 확인하고자 할 때 이용하는 곳이다. 모서리마다 특수센서가 설치돼 있다. VR 안경과 플라이스틱이란 공간마우스를 들고 흰색 3면인 공간 안에 들어가면 의뢰했던 시뮬레이션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이희준 박사는 “선박의 경우, 내부에 복잡하게 엉켜 있는 크고 작은 파이프라인 전부를 눈으로 정교하게 확인해 볼 수 있을 정도”라며 “본격적인 건조에 앞서 배 안 전체를 다 둘러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AR·VR룸 뒷 공간에 설치된 초대형 빔프젝터, 이 같은 빔프로젝터가 3개면 각각 설치됐다. 총 3개를 설치·운영하고 있다/사진=류준영 기자

백명기 센터장은 “AR·VR룸에선 눈에 안 보이는 유체의 흐름, 전자기파의 방향성 등도 가시화해서 볼 수 있다”면서 “시뮬레이션을 잘 모르는 클라이언트들이 해석 결과물을 보다 알기 쉽게 직관적으로 확인시켜주자는 취지에서 만든 공간”이라고 했다.

스마트이노베이션센터는 전기연 정문 앞 부지에 지상 5층, 연면적 5509㎡ 규모로 조성됐다. 국비 80억원, 지방비 60억원 등 총 140억원이 투입됐다. 노후화된 경남 창원 지역 산단에 디지털 전환 기술을 수혈, 탄소 전환을 이뤄내는 ‘스마트그린산단 촉진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백 센터장은 시뮬레이션이 기업에 주는 이점을 묻는 질문에 “기존엔 새로운 제품을 설계·제작한 뒤 시험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므로 이 기간만 한달에서 6개월은 족히 걸렸다”면서 “이젠 시뮬레이션 기술을 통해 하루 만에 가능하고 조건을 10번, 50번씩 바꿔 진행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어 “대기업에선 자체 기술과 전문인력을 대부분 갖추고 있지만, 아직 지역 중소·중견기업에겐 SW가 워낙 비싼 데다 전문인력 채용도 쉽지 않아 이런 센터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전기연이 이 센터의 구축·운영 과제를 맡을 수 있었던 건 2016년부터 151개 기업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약 270억원 규모의 제품 개발 및 생산기간 단축 효과를 이끌어낸 실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 센터장은 “지금까지 40개 중소·중견기업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력기기(3차원 모터) △자동차(배터리 쿨링 패드) △관광(첨성대 지진 영향) △건축(몽골식 가옥 에코 팬) △헬스케어(밸런스 운동기구) 등 분야에서 기술 지원을 받아 제품 개발 및 생산기간 단축 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실례로 지난해 경남 창원 소재 부품 전문기업 태림산업은 전기연 공정혁신시뮬레이션센터로부터 3차원(3D) 시뮬레이션 장비와 전문인력을 지원 받아 독일 폭스바겐 차량 100만 대에 들어갈 자동차 조향장치 부품을 수주한 바 있다.

특히 업력이 길고, 젊은 인력을 쉽게 구하기 힘든 중소·중견기업은 기술 노하우를 정확하게 이전하기 위해 이런 시뮬레이션이 필수적이란 설명이다. 백 센터장은 “저희가 만난 한 중소기업의 경우 반원처럼 휜 파이프를 전문으로 제작하는데 이 휜 각도를 고참 엔지니어 한 분의 감에 의존해 만들고 있었고, 이분이 안 나오는 날엔 공장이 올스톱해야 하는 실정이었다”면서 “파이프에 주름이 안 가게 열처리하면서 잘 휘게 할 수 있는 재질과 정확한 직경 및 각도 수치 등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알아내 알려드렸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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