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용품 보내고 커피차까지 쏜다”…’MZ세대’가 대기업 경영리더 되면 벌어지는 일
경제활동의 축이 MZ세대로 이동하면서 국내 재계를 이끄는 오너 3·4세가 속속 경영 전면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대부분 1980년대생인 이들은 기존 세대와 달리 자신만의 경영 행보로 기업 변화를 이끌어내는 등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2022년 주요 식품기업 인사에서는 CJ그룹 이선호 경영리더, 오리온 담서원 상무, 농심 신상열 상무 등이 임원으로 승진하거나 핵심적인 보직을 맡으면서 3세 경영에 닻이 올랐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미국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해외 사업 확대와 미래 신사업 발굴이란 공통의 미션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심각한 경기 불황 국면을 맞아 30대의 젊은 오너 경영인들은 이제 경영수업 단계를 넘어 기업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혹독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입니다.
‘재벌집 막내아들’ 실사판, 오리온 담서원 상무
식품업계에 따르면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의 장남 담서원 씨는 2021년 7월 오리온 경영지원팀의 수석부장으로 입사한지 1년6개월 만에 경영관리담당 상무로 승진해 이달 초부터 임원으로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1989년생인 담 부장은 미국 뉴욕대를 졸업하고 중국 북경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졸업 후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서 근무하다가 오리온에 들어왔습니다. 담 상무는 기획과 사업전략 수립, 신사업 발굴 등의 업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식품사업에서 베트남 중국 러시아 등 해외시장 매출 확대와 신사업인 바이오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그의 미션이 될 전망입니다.
그는 지난 2022년 임원 승진과 함께 얼굴 사진이 공개된 이후 훈훈한 외모로 온라인에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담 상무의 사진이 담긴 뉴스 기사를 공유하면서 “재벌 2세(실제는 3세)가 이 얼굴이면 인간적으로 상속세를 한 60% 더 때려야 하는거 아니냐“고 부러움을 나타냈습니다.
입사 9년만에 경영리더, CJ그룹 이선호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장남이자 오너가 3세인 이선호 경영리더는 2022년 10월 조직개편에서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이란 중책을 맡았습니다. 이 리더는 1990년생으로 미국 컬럼비아대 금융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013년 공채로 CJ그룹의 주력사인 CJ제일제당에 입사했습니다. 입사 9년만인 2022년 1월 임원직급인 경영리더로 승진했습니다.
식품성장추진실은 기존 식품사업의 해외 확대와 신사업 진출을 포괄하는 회사 내 핵심 콘트롤타워입니다. 이 실장은 만두, 김치, 김, 가공밥 등 기존 전략제품의 세계시장 공략을 확대하는 한편,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신사업 발굴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전망입니다.
신세대 비건 사업 도전, 농심 신상열 상무
라면업계 1위 농심 신동원 회장의 장남 신상열 상무는 1993년생으로 미국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2019년 농심에 평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2021년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승진했고, 2022년 초 구매담당 상무로 초고속 승진했습니다.
식품 기업의 구매 담당은 원재료 값이 폭등하는 상황에서 기존 협력 업체를 관리하고 가격 인상 요인을 방어해야 하는 요직입니다. 농심의 주력상품인 라면의 주요 소비층인 10~30대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대체육, 건강기능식품 등 신사업 돌파구 마련이 신 상무의 최대 과제로 지적됩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식품 기업들은 다른 업종에 비해 불황 국면에서도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 하지만, 한류 후광을 입은 K푸드 열풍으로 해외 사업에서 기업의 명운이 갈리는 상황에서 유학파 젊은 3세들의 경영 성적표가 비교적 뚜렷하게 갈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재벌 문화 바꾸는 3·4세 오너들
2022년 12월 남양유업 및 기업 재벌 3세들의 마약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논란을 자아내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빠뜨린 바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경영 일선을 통해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국내 주요 그룹 오너 3~4세들이 재조명 되고 있습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HD현대 사장은 얼마 전 경기 판교 글로벌연구개발센터 공사 현장에 나가 있는 공사 관리담당 직원 수십 명에게 1인당 1개씩 간식 박스를 보냈습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공사 현장에 식사할 곳도 마땅치 않다는 얘기를 듣고 간식과 커피를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정 사장은 2022년 초 현대중공업그룹 사내 벤처 1호로 자율운항 선박 기술을 개발하는 아비커스의 사무실에 직접 도넛을 사들고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는 애로 사항을 묻고 기술 개발에 대해 직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했다고 합니다. 정 사장이 서울 북촌의 유명 가게에서 직접 도넛을 사왔다는 얘기를 듣고 아비커스 직원들이 감동했다고 합니다.
철강업체 세아그룹의 특수강사업 부문 지주회사 세아홀딩스에서는 이태성 사장이 사내 카페나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마주 앉아 대화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장은 노조가 없는 지주사에도 직원들의 고충을 들어줄 창구가 필요하다면서 2022년 노사협의체를 만들었습니다.
이 사장은 고(故) 이운형 전 세아그룹 회장의 아들입니다. 세아홀딩스 관계자는 “이 사장은 임직원과 소통을 위해 인사관리 설명회나 문화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회사는 이 사장의 아이디어로 2015년부터 출산한 직원의 가정에 회사 캐릭터를 넣어 제작한 옷·턱받이 같은 출산용품도 보낸다고 합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겸손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젊은 오너입니다. 그는 사업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업무 현황을 설명하러 나온 직원에게도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젊은 직원들이 ‘연초 신년사를 제대로 읽어볼 시간이 없다’는 의견을 전하자 올해 신년사는 평소보다 10일 먼저 만들어 보내기도 했습니다.
MZ세대 직원 사로잡기 위해 변해야 한다
오너들의 리더십 변화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필연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창업 1~2세대의 강한 리더십이 필요했지만 지금처럼 직원들의 창의성과 자발적인 열정이 강조되는 시대에는 직원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한 10대 그룹 임원은 “MZ세대 직원들은 언제든 대기업의 명함을 버리고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소통하는 문화가 있는 스타트업·벤처로 이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인재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라도 조직 문화를 바꿀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오너 3~4세가 경영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을 기반으로 사업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습니다. 김경준 CEO스코어 대표는 “세대가 바뀌면 생각과 문화가 바뀌기 때문에 리더십과 조직문화도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면서 “이들이 바뀐 사내 문화와 새로운 리더십을 토대로 어떤 성과를 내는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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