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송하은씨(26·가명)는 2021년 4월 25일 아들 연수(가명)를 낳았다. 경기도의 어느 원룸에서 혼자 출산했다. 송씨는 이틀째 감기 몸살을 앓아 그날도 침대에 누워 쉬었는데 화장실에 가던 길에 연수를 ‘쑥’ 낳았다고 한다.
송씨는 연수를 낳기 전까지 임신 사실을 몰랐다. 원래도 생리가 불규칙했다. 돌이켜보면 임신 기간 중에 생리하듯 하혈도 했다.
신생아인 점을 감안해도 연수는 몸집이 너무 작았다. 몸무게가 2.5kg보다 가벼워도 ‘저체중아’로 분류하는데 연수는 1.1kg이었다. 송씨는 눈썹 정리하는 칼을 라이터 불로 소독해서 탯줄을 잘랐다. 연수를 수건으로 몇겹 감싼 뒤 구급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구급대원들은 경기, 서울 일대 대형병원들에 전화를 했다. 송씨와 연수를 받아주겠다는 병원이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병원 응급실들에는 자가 분만한 산모, 특히 미혼모를 잘 받아주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병원에 신생아를 두고 떠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지난달 16일 송하은씨(26·가명)가 연수에게 이유식을 먹이는 모습. /사진=김성진 기자. |
송씨는 3시간 동안 구급차에 앉아 연수를 안고 있었다. 송씨 원룸에서 약 20km 떨어진 서울의 어느 대형병원이 송씨를 받아주겠다고 해 이동했다.
병원에서 검사해보니 연수는 ‘무뇌증’이었다. 한자 뜻 그대로 뇌 없이 태어났다. 좌뇌, 우뇌 이렇게 뇌의 50%가 없는 무뇌증도 있지만 연수는 뇌의 90%가 없었다.
의학계에 따르면 무뇌증의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규명이 안 됐다. 현재로선 유전적인 영향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연수를 낳기 전까지 송씨는 무뇌증 장애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송씨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라며 “나는 가족과 연을 끊고 혼자 사는데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 눈 앞이 깜깜했다”고 했다.
/사진=김성진 기자 |
송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출했다. 집에서 송씨는 상습 폭행을 당했다. 친모는 ‘네가 검정고시에 합격하면 가출해도 신고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송씨는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가출했다.
송씨는 친구 집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를 한 끝에 원룸을 구했다. 나중에는 연애도 했다. 연수를 출산하고 1년6개월쯤 흐른 시점에 송씨는 남자친구에게 연락했다. 도저히 병원비를 혼자 부담할 수 없었다. 남자친구는 도움을 주지 않았다.
송씨는 연수를 출산한 날 ‘베이비박스’에 전화했다. 가출하기 전 TV로 베이비박스를 본 적이 있었다. 송씨는 “나 혼자 책임질 수 있을까 눈앞이 깜깜했다”며 “하물며 연수가 아프니 더 막막했다”고 했다.
베이비박스는 송씨를 위로하고 연수를 키우도록 설득했다. 연수를 돌보면 베이비박스가 지원할 부분도 안내했다. 송씨는 연수를 키우기로 다짐했다. 송씨는 “의사가 연수의 예상 수명이 길어야 수개월인데 엄마가 잘 먹이고 돌보면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하더라”라며 “그 말을 듣고 내가 돌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연수의 예상 최장 수명은 2~3년이다. 송씨는 “이제 바라는 건 연수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고 “성인이 될 때까지 살면 좋겠다”고 했다.
베이비박스에 장애아 버리는 부모 절반은 미혼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에 따르면 2017~2022년 베이비박스에 장애 아기 45명이 맡겨졌다. 이들을 맡긴 부모 중 24명(53.3%)은 미혼모였다.
미혼모는 장애 아기를 낳으면 기혼 부모보다 큰 부담을 느낀다. 배우자가 없고 가족과 관계도 단절돼 아기를 돌볼 사람이 자신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송씨는 연수를 낳기 전 화장품 프랜차이즈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연수가 태어난 후 송씨는 직장을 그만뒀다.
연수는 하루에도 몇차례 근육경직을 겪는다. 송씨는 연수를 안고 다독여준다. 지방자치단체 활동지원사가 있지만 송씨는 연수를 활동지원사에게 맡길 수 없다. 송씨는 “간호사도 연수를 다루기 어려워하는데 활동지원사는 얼마나 힘들어하겠나”라고 했다.
송씨는 연수를 낳고 초반에 우울증을 겪었다. 송씨는 “연수와 함께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답답했다”며 “스트레스가 쌓였고 집에만 갇힌 느낌이었다”고 했다.
생활비에 병원비까지 이중고
미혼모 김모씨(46)의 두살 아들에게는 뇌병변 장애가 있다. 아들은 면역력이 약하다. 지난달 패혈증으로 병원에 입원해 산소호흡기를 단 모습./사진제공=김모씨(46) |
연수는 태어난 직후 뇌압 수술을 받았다. 뇌에 호스를 꽂아 뇌수를 빼내는 수술이었다. 무뇌증 환자는 이 수술을 받지 않으면 남겨진 뇌가 점점 부풀어 오른다. 연수는 생후 14개월 때 호스 교체를 위한 재수술을 받았다.
송씨가 기초생활수급자여서 수술비가 대부분 지원됐다. 하지만 일부는 송씨 부담이었다. 병실에서 식사비는 지원되지 않았다. 송씨는 빠져나간 수술비를 상쇄하려 배를 곯았다. 고민 끝에 연수의 친부에게 전화한 것도 병원비 부담 때문이었다.
송씨는 기초생활수급비, 아동수당, 한부모지원수당 등 매달 100만원으로 생활한다. 여유로워 보이지만 매주 차로 10여분 거리 대형병원에 연수 검진을 받으러 가야 해 지출이 크다. 연수의 면역력이 약하고 언제 근육경직 등 긴급 상황이 터질 수 있어서 송씨는 택시를 탄다. 매달 택시비가 50여만원 지출된다.
송씨도 가끔 고기가 먹고 싶지만 그 돈을 아낀다. 송씨는 “생활비가 빠듯한 것을 알아서 내가 좋은 것을 먹을 돈이 있으면 연수의 이유식 재료를 사거나 택시비에 보탠다”며 “연수가 클수록 아동수당은 줄어들던데 지금보다 정부의 금전적인 지원은 커지면 좋겠다”고 했다.
미혼모 김모씨(42)에게는 올해 두살 뇌병변장애 아들이 있다. 김씨는 배기량 1000cc 경차가 있어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하고 아동수당, 양육수당, 한부모지원수당 등 45만원을 지원받는다. 김씨는 친부의 암 투병 때문에 제2, 3 금융권 대출을 받았다가 빚을 상환하지 못해 경차가 압류됐다.
김씨의 아들은 지난달 패혈증을 앓아 병원에 입원했다. 김씨는 “다행히 대형병원이 사회복지사업 차원으로 의료비를 지원했다”면서도 “간당간당하게 사는 기분”이라고 했다.
장애 아기를 낳은 미혼모 지원이 강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한국은 매달 장애 수당을 4만원씩 지원한다. 장애가 전문 분야인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프랑스, 미국과 비교하면 장애 아이를 낳은 한국 부모를 향한 지원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미혼모는 기혼 부모보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데 경제, 심리적 부담뿐 아니라 장애 아기를 키우는 체력적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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