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 박종경씨(32)는 올해 설날도 떡국을 혼자 먹을 예정이다. 7평 원룸에서 박씨 스스로 끓여서 먹을 것이다. 박씨 나름의 레시피가 있다. 곰탕맛 라면 스프를 물에 풀고 떡을 넣어 끓인다. 유튜브로 컴퓨터 게임 영상을 보면서 먹을 것 같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안부를 물을 사람도, 박씨에게 물어줄 사람도 없다.
박씨는 1998년 5월30일 오전 6시쯤 경상북도 구미 기차역 앞에 버려졌다. 여섯살이었다. 자신을 두고 뒤돌아걷는 엄마 배모씨(당시 33)의 뒷모습을 박씨는 기억한다.
아빠 박모씨(당시 41)는 매일 술에 취해 어린 박씨를 때렸다. 아빠는 박씨가 도망치면 끌고 와서 더 때렸다. 박씨가 만 세살쯤 됐을 때 외할머니 권모씨(당시 66)가 박씨를 경북 김천에 있는 외할머니 집으로 데려갔다. 그 후로 박씨는 외할머니와 살았다.
버려지기 전날 엄마는 밤 10시쯤 나와 외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왔다. 엄마는 한살 어린 박씨 여동생을 데리고 왔다. 박씨는 엄마를 3년 만에 처음 봤다. 그동안 연락한번 없던 엄마는 그날도 박씨에게 말 한마디 안 붙이고 잠을 잤다.
엄마는 이튿날 새벽 4시쯤 박씨를 흔들어 깨워서는 ‘따라나오라’고 했다. 박씨는 세수도 못하고 엄마를 따라나섰다. 현관문을 나설 때 외할머니는 방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박씨는 그날 기차를 처음 탔다. ‘어디 가느냐’ 묻고 싶었지만 입을 떼지 못했다. 박씨는 지적 장애에 언어 장애가 있었다. 9세 때 목젖 수술을 받기 전까지 박씨는 말을 하지 못했다.
구미역 계단을 내려왔다. 오른쪽으로 10m쯤 돌아나가니 가로로 긴 벤치가 있었다. 엄마는 박씨를 벤치에 앉혔다. 그리고 박씨 옆에 신문지 한뭉텅이를 놨다. ‘덮으라’는 뜻이었다. 엄마는 여동생 손을 붙들고 역으로 되돌아갔다. 여동생에게는 장애가 없었다.
초봄 공기가 따뜻했다. 박씨는 벤치에 눕고 신문지로 몸을 덮었다.
박종경씨는 30여년 전 이곳 경상북도 구미역 앞에 버려졌다. 지난달 24일 구미역을 찾았을 때 박씨는 엄마가 자신을 두고 간 위치를 정확히 찾았다. 박씨가 누웠던 벤치는 사라지고 없었다./사진=김성진 기자 |
서너 시간 흐른 뒤 남자 경찰관 두명이 다가왔다. “엄마는 어딨니” 물었다. 경찰관들은 박씨를 근처 지구대로 데리고 왔다. 슈퍼에서 사온 빵을 하나 건넸다. 그날 박씨의 첫 끼였다.
박씨는 구미시의 어느 보육원(고아원)에 입소했다. 보육원 사회복지사를 ‘엄마’라 부르며 컸다. 16세 때 서울의 그룹홈으로 옮겨졌고 성인이 됐다. 그룹홈은 가정집에 차려진 고아원을 말한다.
박씨는 “친부모를 찾기 싫다”고 한다. 친부에게 맞은 기억, 친모가 자신을 버린 기억 때문이다. 박씨는 친부모가 없는 듯 살았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 얼굴을 그려오라는 과제를 받으면 박씨는 사회복지사 엄마를 그렸다.
박씨는 서울에서 그룹홈을 수차례 옮겼다. 폭행당하는 등 박씨가 원치 않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같은 그룹홈에 살던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다.
박씨는 코로나19(COVID-19)가 퍼지기 전 매년 설날에 구미 고아원에 갔다.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새배하고 함께 떡국을 먹었다.
박씨는 “여동생은 만나고 싶다”며 “피 섞인 가족이 있다면 명절 풍경이 더 즐거웠을 것”이라 했다. 이어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안 버려졌을 거 같다”고 했다.
박씨는 구미역에 버려진 후 15세까지 근처 고아원에 살았다. 박씨는 그때 삶은 즐거웠다고 했다. 박씨가 엄마라 부르던 사회복지사는 이제 다른 아이들의 엄마가 됐다. 지난달 24일 방문했을 때 사회복지사 엄마는 “종경이 왔니” 묻고 다른 아이들을 돌봤다. 박씨는 “엄마가 좋다”고 했다. 박씨가 학교에서 운동회할 때, 대학병원에서 목젖 수술을 받았을 때 옆을 지켜준 사람은 사회복지사 엄마였다./사진=김성진 기자. |
━
장애인은 버려져왔고, 지금도 버려진다
━
지적장애 3급 이대길씨(42)도 버려졌다. 이씨는 갓난아기 때 서울 송파구 문정동 어느 쓰레기통에서 발견됐다.
이씨는 서울의 어느 장애인 거주시설로 옮겨졌다. 어릴 때 이씨는 얼굴도 모르는 친부모를 찾고 싶지 않았다. 시설에서 삶에 부족함이 없었다. 시설 내 학교를 다니고, 여행도 다녀왔다. 설날에는 시설 원장에게 세배했다. 세뱃돈도 받았다.
시설에서 자립한 후 이씨는 조금씩 부모님의 부재를 느꼈다. 20대 후반 이씨는 같은 장애인 시설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했다. 아내는 경찰관의 도움으로 친부모와 연락이 닿았고 결혼식 후 만났다. 부모와 만나던 날 아내는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이씨는 그날을 떠올리며 “부러웠다”고 했다.
이씨는 슬하에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뒀다. 아들이 어릴 때 이씨는 “네 친할아버지, 할머니는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들이 학교 생활을 하고, 명절, 공휴일을 보낼수록 ‘아들에게 친조부모가 있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씨는 “내심 시설에서 부모님 있는 장애인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다”며 “내 사진을 보고 부모님이 날 찾아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달 17일 이대길씨가 일하는 모자 공장 앞. 토요일이라 문은 닫았다. 이씨가 쓴 모자가 이 공장에서 만들었다. 이씨는 이 사진을 보고 부모님이 자신에게 연락하면 좋겠다고 했다./사진=김성진 기자. |
지적장애인 최모양(11)은 갓난아기 때 아동보호소에 맡겨졌다. 친부모는 장애가 있는 최양을 키울 여건이 안됐고 친조부모가 최양을 안고 보호소를 찾았다. 최양은 장애인 영유아 거주시설에 갔다가 2019년 서울 은평구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로 옮겨졌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 최양은 부모님이 궁금했다. 사회복지사는 최양의 기록을 보여줬다. 최양은 그날 친부모의 이름을 처음 봤다. 친부의 사진도 있었다. 최양은 사회복지사 앞에서 펑펑 울었다.
최양은 친부모를 찾고 싶다. ‘부모님과 무엇을 가장 하고 싶느냐’ 묻자 담희양은 “그냥 그 집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께 하고픈 말이 있느냐’고 묻자 최양은 “사랑해”라고 했다.
최모양(11)은 미성년자인 관계로 사진을 싣지 않는다. 지난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최양이 산타에게 쓴 편지를 싣는다. 최양은 ‘포켓몬스터 카드가 갖고 싶다’고 썼고 원했던 선물을 받았다. 최양은 취재진에 선물받은 카드 사진을 보여줄 때 무척 행복해 보였다./사진제공=최양이 거주하는 서울 은평구 장애인 거주시설. |
━
통계에 잡힌 버려진 장애인 6000명
━
가족이 없는 장애인을 보건복지부는 ‘무연고 장애인’이라 부른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이 제출받은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장애인거주시설(거주시설)에 무연고 장애인 6777명이 산다. 지난해에만 무연고장애인 122명이 시설에 입소했다.
무연고 장애인의 유형은 크게 세가지다. 부모가 버린 장애인이 일반적이다. 부모가 방임하거나 학대해 친권을 박탈 당한 경우도 있다. 부모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장애인도 있다.
‘버려진 장애인’으로서 무연고 장애인은 통계보다 많을 가능성이 크다. 보건복지부 통계의 무연고 장애인은 △장애인 시설 거주 △주민등록상 부모가 없는 장애인들이다.
장애인 시설 밖에도 무연고 장애인들이 있다. 성인이 돼 자립했거나 장애인 시설에 자리가 없어 일반 보육원(고아원)에 사는 장애인들이다. 박종경, 이대길씨는 자립한 무연고 장애인이다. 서울아동복지협회 자료를 보면 2021년 4월 기준 서울에만 지적, 뇌병변 장애인 88명이 일반 보육원에 산다.
주민등록상 부모가 있지만 연락이 끊긴 장애인도 적지 않다. 은평 기쁨의집에는 부모가 있는 장애인 12명이 산다. 부모가 정기적으로 찾아오고 정서 관계를 유지하는 장애인은 2명이라고 한다. 서울 노원구의 장애인 거주시설 동천의집도 장애인 54명 중 12명을 빼면 부모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
날 버렸지만 부모님 찾고 싶다는 장애인들
━
지난 7일 서울 노원구 장애인거주시설 ‘동천의집’ 앞에 장지음씨(24, 왼쪽)와 신모니카씨(24, 오른쪽). 이들은 초등학생 때 같은 시설 친구가 친부를 만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부모님을 찾고 싶다’ 느꼈다고 한다. 이들은 현재 동천의집이 마련한 가정집 지역홈에 머물며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김성진 기자. |
버려진 장애인은 연령에 따라 다른 시설로 보내진다. 7~8세 미만은 장애인 영유아거주시설, 8세 이상은 장애인 거주시설로 간다.
영유아 시설은 전국에 9곳 있다. 2021년 12월 기준 장애인 357명이 영유아 시설에 산다. 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연령이 되면 장애인은 일반 장애인 거주시설로 옮겨진다. 이후 24~25세쯤이 되면 자립한다.
이들은 드물게 친부모를 찾는다. 10여년 전 동천의집 사회복지사들은 7세 때 입소한 여성 지적장애인의 친부를 찾고, 설득해서 딸을 찾아오게 했다. 처음에 친부는 미안함에 거절했지만 한번 만난 후 관계가 깊어져 지금은 둘이 여행도 간다.
부모님을 찾기 쉽지는 않다. 지적장애 3급 박경인씨(30)는 지난해 5월 경찰서에 가 친모의 신상을 물었다. 친모의 소재가 파악됐지만 경찰은 “개인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을 버렸지만 적지 않은 장애인들이 부모님을 찾고 싶어 했다. 지적장애인 신모니카(24)씨는 10여년 전 동천의집 장애인이 친부를 만나는 모습을 봤다. 그는 “TV 속 외식하는 가족 모습을 봐도 부모님을 찾고 싶어진다”며 “앞으로 결혼도 할텐데 아빠가 내 손을 잡고 행진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