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
80대 할머니의 오랜 생(生)이 스러져가고 있었다. 유독한 연기를 마시고 거실에 쓰러진 뒤였다. 화재는 지난해 8월 9일 저녁 8시쯤, 강원도 태백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했다. 할머니와 같은 3층 한 집에서 불이 번졌다. 냉장고 합선이었다. 불길은 벽을 타고 올라갔고, 연기는 자욱했고, 피할 사람은 바깥으로 피했다. 연로한 할머니는 집 밖을 미처 나가지 못했다. 아마도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 때였다. 집 문이 열렸다. 20대 청년이 집안에 들어왔다. 그가 핸드폰 불빛을 켰으나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청년은 핸드폰을 던져버린 채, 집안을 샅샅이 기어다녔다. 아직 살아 있을 사람을 더듬고 더듬어 찾았다. 마침내 손 끝에 할머니의 머리가 만져졌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청년은 할머니를 들쳐 업었다. 그리고는 바깥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
할머니는 다행히 의식이 있었다. 부르는 소리에 손가락을 움직였다.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불은 20여 분만에 꺼졌다.
해피엔딩. 그러나 자칫하면 위의 글은 이렇게 쓰일 수도 있었다. 80대 할머니를 구하려다 20대 청년도 안타깝게 숨졌다고. 절반의 확률로 생과 사가 바뀔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청년이 살아 다행이었으나, 하마터면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다행히 살아서 그 의로운 청년, 김진호씨(27)의 목소릴 들을 수 있음에 안도하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자신이 한 일이 별 것 아니라는 듯 덤덤하고 짧게 대답해, 그건 대단한 게 맞단 이의 질문이 무척 많아진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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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현장 갔다가 “아직 사람이 있다”는 말 듣고, 집안에 뛰어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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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난 집에 뛰어들어 할머니를 구한 의인 김진호씨(27)./사진=김진호씨 제공 |
형도 : 아파트에서 불이 났고, 그 현장에 가신 건데요. 어떻게 가시게 된 걸까요.
진호 : 그날 장모님과 저녁 식사를 했어요. 모셔다 드리고 집에 가고 있었는데요. 장모님께서 “우리 아파트에 불이 난 것 같다”고 연락이 오셨어요. 걱정이 되어서 돌아갔지요. 정말 그 아파트 3층에서 불이 났더라고요. 장모님 댁은 7층이었고요.
형도 : 그리고 그 아파트 3층에, 미처 못 나온 어르신이 계셨던 거고요.
진호 : 아파트 계단에서 “도와주세요”란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할머님의 아드님이셨어요. 집안에 어머니가 못 나오셨다고 하더라고요. 한 80~90대 정도 되는 어르신이신데, 댁에서 잠이 드신 거예요. 허리도 좋지 않으셨다고요.
형도 : 어떡해요. 그래도 이미 불길이 많이 퍼진 상황이면 들어가기 위험하셨을텐데요.
진호 : 불길이 벽을 타고 확산되는 상황이었어요. 베란다 샷시 너머로 올라가는 게 보이더라고요. 연기도 계속 나오고요.
형도 : 그런데도 집안에 들어가셨던 걸까요.
진호 : 대부분 어르신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였거든요. 젊은 사람도 없었고, 도움줄 수 있는 게 저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막 들리는 참이었고, 시간이 많지 않았지요. 다들 선뜻 들어가지 못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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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수 있겠단 생각에, ‘두고 와야할까’ 고민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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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말 열린 2022 생명존중대상 시상식에서 수상한 김진호씨와 가족들의 모습./사진=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
형도 : 살리겠다고 집안에 들어가신 거고요. 위험한데도요. 들어가 보니 어떤 상황이었는지요.
진호 : 여름이어서, 상의를 먼저 벗었어요. 코와 입을 막고 들어갔지요. 너무 컴컴하고 연기가 자욱해서 핸드폰 불빛을 켰어요. 그런데도 앞이 전혀 보이지 않더라고요.
형도 : 저녁인데다 연기가 많으니 당연히 보이지 않았겠지요. 상상만 해도 아찔하네요….
진호 : 그래서 핸드폰은 아예 바닥에 던져버렸어요. 그리고 기어서 들어갔지요. 손으로 땅을 짚어가며, 더듬으면서 사람이 있나 찾았어요.
형도 : 상의는 물에 젖게하지도 못했고, 유독가스 때문에 시간은 많지 않고요.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잖아요. 두렵진 않으셨나요.
진호 : 호흡이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집안에 2~3분 정도 머물렀는데, ‘이러다가 정말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두고 그냥 혼자 나올까 생각할정도로 힘들었지요.
해병대 부사관이었던 김진호씨./사진=김진호씨 제공 |
형도 :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하실만하지요.
진호 : 그런데 두고 나오면…돌아가실 것 같더라고요. 많이 무서웠지만, 끝까지 힘을 써봤습니다.
형도 : 그리고 다행히 할머님을 발견하신 거고요.
진호 : 맞아요. 다니는데 손 끝에 무언가 만져지더라고요. 할머님의 머리였어요. 연기를 드셨는지, 거실에 쓰려져 계시더라고요.
할머니는 다행히 의식이 있었단다. 이름을 부르면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였다. 김진호씨는 그제야 굉장히 안도했다. 그 길로, 아들이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들은 나중에 김씨에게 연락해 “어머니를 살려줘서 너무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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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어르신 무료로 밥 주던, 부모님의 가르침…”도우며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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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생명존중대상’ 시상식에서 딸을 안고 있는 김진호씨./사진=남형도 기자 |
지난해 12월 말, 김진호씨를 서울에서 봤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2022 생명존중대상’ 시상식에서였다. 멀리서 본 김씨는 단짝인 소중한 아내와, 사랑스런 딸과 함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린 딸은 안겨 있었다. 그 자리에서 가장 빛나던 자랑스러운 아빠의 품에. 가족에겐 자랑스러우면서도, 또 걱정되는 일이었을 터였다. 김씨도 그때 연기를 많이 마셔서, 병원 치료를 받았단다. 가래에 검은 게 섞여나왔다.
형도 : 가족 분들은 아마도…나무라셨겠지요. 사람을 살리신, 더없이 귀한 일이지만요.
진호 : 그렇지요. 장모님과 아내가 “너도 위험해질 수 있었는데 왜 들어갔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랬지요. “그땐 살려야겠단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요. 그래도 나중엔 자랑스러워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두 번 다신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어요.
형도 : 진호님이 누군가를 돕고픈 마음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어떤 계기나, 영향을 준 분이 있었나요.
진호 : 어머니, 아버지께서 식당을 하셨어요. 그런데 동네 어려운 어르신이 오시면, 식사를 무료로 주셨지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배웠어요. 많이 알려주시기도 했고요. 힘든 이들이 있으면 도움을 꼭 주라고요. 굉장히 자랑스럽고, 배워야겠단 생각이 컸지요.
형도 : 훌륭한 부모님이시네요. 해병대에서 군생활을 하셨던데, 이것도 영향이 있으셨을까요.
진호 : 기왕 군생활을 하기로 맘 먹었으니, 해병대가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아무나 갈 수 없는 데라고 생각했고요. 부사관으로 지원했고 4년 정도 한 뒤에 전역했어요. 해병대에서 ‘도움을 주는 마음’을 많이 배웠지요.
형도 : 마지막 질문이에요. 앞으론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사람을 구해야 할 때, 안 그러실까요.
진호 : 아뇨. 고민 없이 또 살리고 싶고,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2005년 10월 17일, 지하철 2호선역. 한 시민이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 틈으로 발이 빠졌다. 몸이 빨려 들어갔다. 시민들은 한 마음으로 전동차를 밀었다. 열차가 요동치며 틈이 벌어졌다./사진=온라인 커뮤니티 |
에필로그(epilogue).
‘강한 파도가 강한 어부를 만든다’는 말을 좋아한다고, 김진호씨가 인터뷰 말미에 그랬다.
살아보니 그 말이 응당 맞다. 그러나 조금 더 덧붙이고 싶다. 강한 어부도 감당하기 힘들정도의 파도가, 삶이라는 드넓은 바다에선 때론 몰려온다고. 그 파도는 배를 뒤집어질 정도로 너무 강하다고.
그날, 아파트에서 갑작스레 난 불은 그런 파도였다. 우연히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긴 세월을 부대끼며 살아 남았어도, 정말 강한 그런 것에선 너무나 미약한 게 또 인간이었으므로.
그러므로 강한 파도를 이길만큼 정말 강한 건, 어부가 넘어졌을 때에 대신 노를 잡아주는…차마 모른척하지 못하는 그런 마음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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