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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안 갈래” 해외 떠도는 청년들…39세까지 버티면 면제?

머니투데이 조회수  

유명인만? 병역기피 해외도피 연평균 110명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기업가나 유명인만 처벌을 피하기 위해 해외로 도피하는 건 아니다. 병역의 의무를 기피하려고 해외로 사라진 청년들도 있다.

15일 병무청에 따르면 병역의 의무를 피해 다른 나라로 도주한 이들은 한해 평균 110명에 달한다.

병역의무 기피자 가운데 ‘국외여행 허가 의무’를 위반한 청년들이 이들이다. 국외여행 허가 의무 위반은 병무청이 허가한 기간이 지났는데도 귀국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사실상 병역의 의무를 피하려고 해외로 도피한 것이다.

연도별로는 2021년 140명, 2020년 183명, 2019년 79명, 2018년 106명, 2017년 139명, 2016년 108명, 2015년 18명으로 최근 7년 동안만 총 773명이다.

2015년 도피한 18명은 9년째 해외를 떠돌며 숨어 살고 있다. 병무청은 2015년 7월부터 병역의무 기피자들의 이름과 나이, 주소를 매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

한국에 돌아오면 취업제한·출국금지·여권발급 제한 등 제재를 가할 수 있지만 강제로 입국시키지는 못한다. 이들은 숨어 지내다 입영의 의무가 면제되는 38세가 지나면 자유로워진다.

◇장기간 해외체류로 나이 찼으니 병역 면제? “처벌 가능”

병역기피 해외도피자가 귀국했을 때 처벌할 여지가 있긴 하다. 최근 법원은 병역을 피해 외국에서 불법체류 상태로 지내다 입영 의무가 사라지는 나이가 지난 뒤 귀국한 남성 A씨를 처벌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A씨는 14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 국외 여행 허가 기간을 연장받다가 2002년 12월 허가 기간이 끝났지만 귀국하지 않아 병역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았다.

병역법에 따르면 병무청장의 허가 없이 기간 내에 귀국하지 않은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만약 병역의무자가 국외 여행 허가 기간 안에 귀국하기 어려우면 기간만료 15일 전까지 병무청장의 기간연장 허가를 받아야 한다.

A씨는 비자 연장이 불가능해진 2005년부터는 불법체류 상태로 미국에 거주했고 학업도 중단했다가 2017년 4월 귀국했다. 당시 A씨의 나이는 41세로 입영 의무 면제 연령을 넘긴 시점이었다.

재판에서 쟁점은 공소시효가 지났는지 여부였다. 1심과 2심의 판단은 갈렸다. 1심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공소시효 3년이 지났다며 면소 판결을 내렸다. 면소란 형사소송 요건이 사라져 유·무죄의 판단 없이 재판을 종결하는 것이다. A씨의 최종 국외여행 허가기간 만료일인 2002년 12월31일부터 공소시효 3년이 시작되는데 기소는 15년이 지난 2017년 12월에야 이뤄졌다는 이유다.

대법원은 지난달 20일 A씨의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면소판결한 원심을 파기,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가 병역법 위반이라는 형사처분을 피하기 위해 미국에 계속 머문 점이 인정되는 만큼 그동안의 공소시효를 정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에 따르면 범인이 형사 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공소시효가 정지된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해외도피범 낙원 된 동남아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시리즈 '카지노' 캡쳐.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시리즈 ‘카지노’ 캡쳐.

“웰컴 투 필리핀.”

필리핀 카지노계의 거물이 된 한국인 차무식(최민식)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디즈니플러스의 신작 ‘카지노’. 극중 차무식이 20억원의 로비자금을 들여 사업 입찰권을 따낸 칼리즈볼튼 호텔 카지노는 연일 한국인으로 문전성시다. 한국에서 죄를 짓고 도망나온 이들이 필리핀으로 몰려든 까닭이다. 드라마에서는 “해외교민 살인사건의 60%가 필리핀에서 벌어진다”, “잘 때도 방탄조끼를 입어야 한다”는 대사가 나온다.

이 드라마에서 그린 해외도피사범의 동남아 호화행각이 최근 현실에서 확인됐다. 수사기관의 포위망을 피해 8개월 동안 해외 도피생활을 이어온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태국에서 검거되면서다. 김 전 회장은 수십억원에 달하는 달러를 보유하고 태국과 싱가포르 등을 돌아다니며 현지 경찰 출신 경호원을 대동하고 골프를 치는 등 호화 생활을 해왔다.

김 전 회장은 한국 검찰과 경찰이 공조한 태국 현지 경찰 이민국 직원들에게 검거됐을 때도 양선길 현 쌍방울그룹 회장과 태국 빠툼타니 소재 골프장에서 여가를 즐기던 중이었다. 남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기는 도망자의 삶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황제도피 생활을 해왔다는 얘기다.

“가깝죠. 물가 싸죠. 불법 환치기로 도피자금 마련하기 쉽죠. 치안 약하죠. 도망다니는 범죄자들에게 빠질 게 없는 곳이죠.”

경찰청 국외도피사범 송환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7월 해외로 도주했다가 검거돼 국내로 송환된 범죄자 203명 가운데 필리핀에 숨어지내던 이들이 56명(27%)으로 가장 많았다.

동남아가 해외 도피범들의 낙원이 된 이유로 법조인들은 접근성과 물가, 치안을 꼽는다. 특히 동남아에서는 위조 여권을 만들기가 쉬워 입국이 수월하다고 한다.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다”고 입을 모으는 지점이다.

필리핀에서 도피생활을 이어온 의뢰인을 변호한 A씨는 “귀국해 수사에 응하겠다는 의뢰인의 사건을 맡았을 때 어떻게 동남아에서 도피 생활을 했냐고 물었더니 위조 여권으로 단기 여행 비자를 받아 필리핀과 태국·베트남 등 동남아 일대를 돌아다니며 체류기간을 늘렸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물가가 싸고 불법 환치기 등을 통해 국내에 있는 자금을 끌어오는 것도 쉬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비교적 덜하다고 한다. 카지노 등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환치기를 통해 자금 조달이 용이하다는 점이 동남아를 범죄자들의 0순위 은신처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검사 B씨는 “몇 년 간 해외로 도주한 피의자를 잡아 생활비 등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를 들여다봤는데 국내와 이어진 동남아 일대의 카지노 등에서 불법 환치기가 횡행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환치기란 통화가 다른 두 나라에 각각 계좌를 개설해 한 곳의 계좌에 돈을 넣고 다른 나라에 만들어놓은 계좌에서 그 나라의 화폐로 빼다 쓰는 불법 외환거래 수법을 의미한다. 한국 계좌에 송금한 뒤 해외에서 현금으로 인출하는 형식이다.

중국이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출입국 시스템을 강화하면서 은신처로서의 이점이 한풀 꺾인 것도 동남아 주가를 띄웠다. 수년 전만 해도 중국으로 배를 타고 밀항하거나 위조 여권으로 입국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밀입국도 어렵고 중국에서 다른 나라로 나가는 것도 어려워져 해외도피 수요가 동남아로 옮겨갔다.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동남아에는 필리핀만 해도 7000여개의 섬이 있어 마음 먹고 숨으면 잡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도 동남아가 떴다고 귀띔했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출신 법조인 C씨는 “작정하고 해외로 도망가 섬에 숨은 사람을 잡기는 정말 어렵다”며 “불법 환치기 같은 자금줄을 막는 방식으로 압박해 도피 수요를 줄이는 게 대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도피 땐 재판시효도 정지”…공 넘겨받은 국회

'라임자산운용(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지난해 9월20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추가 혐의 관련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정을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라임자산운용(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지난해 9월20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추가 혐의 관련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정을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부실 펀드 판매로 투자자들에게 1조6000억원대 피해를 입힌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피고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어쩌면 실형을 피할 수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결심공판을 1시간여 앞두고 전자팔찌를 끊고 잠적하면서 해외 밀항설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도주 48일만에 경기도 화성시에서 체포되면서 재판이 재개됐지만 김 전 회장이 만약 해외로 도주해 25년 동안 잡히지 않을 경우 법원은 재판시효를 근거로 면소 판결을 내리게 된다. 면소란 형사소송 요건이 사라져 유·무죄의 판단 없이 재판을 종결하는 것이다.

현행법상 수사 중이나 재판이 확정된 뒤 처벌을 피할 목적으로 해외로 도피하면 공소시효와 형집행시효가 정지되지만 재판 중인 피고인이 해외로 도주한 데 대해선 딱히 재판시효 정지 규정이 없다. 사법규정의 구멍인 셈이다. 1997년 5억6000만원의 사기 행각을 벌인 피고인이 기소 직후 출국해 2020년까지 귀국하지 않아 대법원이 지난해 9월 면소 판결을 내린 실제 판례가 있다.

법무부가 김 전 회장의 도주극 이후 부랴부랴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해외로 도피했을 때도 재판시효 25년이 정지되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게 이 때문이다. 법무부는 이달 30일까지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최종 개정안을 확정하고 국회 통과를 추진할 계획이다.

김 전 회장과 달리 실형이 확정된 경우라면 현행법으로도 해외도피 기간 형집행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에 시일이 얼마가 지났든 상관없이 국내로 송환되거나 입국했을 때 실형을 살아야 한다.

해외도피사범 중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의 경우가 그렇다.

선 전 회장은 지난해 3월 대법원 재상고심에서 징역 5년이 확정되기 전인 2021년 8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5년형이 나오자 미국으로 출국해 잠적했다. 검찰이 뒤늦게 도피 사실을 확인했지만 대법원 선고가 확정된 만큼 해외도피 기간 동안 형집행시효가 정지된다.

머니투데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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