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한 해 동안 특정강력범죄의처벌에관한특례법에 따라 검경 수사 단계에서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 7명.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기영(31), 전주환(31), 이승만(52), 이정학(51), 조현수(30), 이은해(31), 조현진(27). /사진제공=경기북부경찰청(이기영), 경찰청(전주환), 대전경찰청(이승만, 이정학), 인천지검(조현수, 이은해), 충남경찰청(조현진) |
지난해 검경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 7명의 신상 정보가 공개됐다. 모두 사람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된 피의자였다. 하지만 범죄의 잔혹함에 있어 이들 7명에 뒤지지 않는데도 피의자 신상이 공개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신상정보 공개에 일관된 기준이 적용될 수 있게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북부경찰청은 지난달 29일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택시기사와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1)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심의위는 “범행 수단이 잔인해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며 “국민의 알 권리와 재범 방지·범죄 예방 등 공익을 위해 신상 공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검경은 2010년 특정강력범죄의처벌에관한특례법(특정강력범죄법) 개정 이후 강력범죄 피의자의 얼굴, 성명, 나이 등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최근 5년간 특정강력범죄법에 의거해 신상이 공개된 25명 가운데 경찰이 공개한 건 23명이다. 지난해만 7명이 공개됐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 공개 여부는 사건을 관할하는 일선 경찰서가 결정한다. 일선 경찰서가 특정강력범죄법에 규정된 4개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판단한 피의자에 한해 총경급 이상 경찰관 3명과 외부 위원 4명으로 구성된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심의위)의 심사를 거쳐 신상 공개 여부가 정해진다.
법에 규정된 4개 요건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일 것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 권리, 피의자의 재범 방지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것 등이다.
이 요건을 충족하는데도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사건도 있었다. 제주경찰청 심의위는 지난달 16일 발생한 제주지역 유명 식당 여성 대표 살해사건 피의자 3명의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심의위는 “범행이 계획적이고 피해가 중대하다”면서도 “수사가 진행 중이고 공공의 이익 유무를 고려해 비공개를 결정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25일 경기 광명에서 아내와 중학생·초등학생 아들 둘을 살해한 40대 남성 A씨의 신상 공개 여부는 심의위에 안건으로 올라가지조차 않았다. 당시 경기남부경찰청은 A씨의 범행이 잔혹하다고 하더라도 ‘가족 간 범죄’임을 고려하면 신상정보 공개에 따른 공공의 이익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2019년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던 고유정(39)의 신상이 공개된 것과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공개 기준이 모호한 신상 공개 제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신상 공개 4개 요건 가운데 특히 ‘공공의 이익’이라는 부분이 모호하다”며 “기준을 ‘살인 피의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되 만 19세 이하의 미성년자는 제외한다’처럼 간명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개 요건에 해당하면 경찰이 판단 내릴 게 아니라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심의위를 필수 절차로 거치도록 해야 한다”며 “위원들도 즉흥적으로 섭외하는 게 아니라 검증된 전문가 풀(인력자원) 안에서 반복적으로 진행해 일관된 결정이 나오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력 범죄 피의자의 재범을 막고 범죄를 예방한다는 신상 공개제도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만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강력범죄는 장기간 구금되거나 무기징역을 받아 피의자가 재범하기는 어렵다”며 “범죄예방을 위해서는 상습 사기처럼 재범률이 높은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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