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아이를 둔 40대 안 모 씨는 최근 자녀 입시 문제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주변 학부모는 물론 맘카페, 유튜브에서도 연일 ‘고교 학점제’가 화두에 오르는 탓이다.
오는 2025년 고교 학점제가 도입되면 고교 내신 점수가 절대평가화 되는데, 이 경우 특목고·자사고 학생이 대학 입시에 압도적으로 유리해져 지금부터 입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씨는 “대학 입시는 고등학교 때부터 준비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입시 경쟁이 중학교로 덜컥 내려온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하다”라고 토로했다.
정부가 고교 학점제 등 새로운 교육과정에 따른 대입제도 개편을 오는 2024년 2월까지 추진하기로 하면서 학부모 사이에서 고교 학점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고교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꿔 과도한 학습 경쟁을 완화하고 학생의 자율 학습을 촉진하겠다는 목적이지만, 일각에선 ‘점수 인플레’만 심해져 일반고 학생은 외면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신 1~9등급서 A~E 절대 평가제로
고교 학점제는 학생이 공통과목을 이수한 뒤 각자의 진로·적성에 따라 스스로 배울 과목을 택하고 학점을 취득, 누적해 졸업하는 제도다. 2018년부터 일부 고등학교가 연구·선도대학으로 지정되며 처음 얼개가 드러났다.
고교 학점제의 핵심은 고교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꾼다는 데 있다. 즉, 내신 점수에 따라 1~9등급으로 분류하던 기존 제도와 달리 학생은 성취도에 따라 A~E 점수 중 하나를 받게 된다.
내신 절대 평가제가 시행될 경우 가장 큰 우려는 ‘학점 인플레’의 가능성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일부러 높은 점수를 줘 내신 변별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교육 커리큘럼이 우수하고 시험도 어려운 특목고·자사고 등이 대학 입시에서 일반 인문계 고등학생보다 훨씬 유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현 정부는 전 정부와 달리 자사고 존치를 확정했다.
“절대평가 필요하지만…특목고 학생만 유리할 수도”
그렇다면 교육업 종사자의 견해는 어떨까. 절대 평가제 전환이 ‘필연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도, 입시 경쟁 압력이 고교 아래까지 퍼질 수 있다고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 한 입시학원 종사자인 A씨는 “지난 20년 동안 국내 입시정책은 항상 상대평가를 줄이고 학생 자율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개혁됐다. 내신 절대평가도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본다”라며 “저출산 때문에 수험생은 갈수록 줄고, 상대평가는 경쟁을 너무 과열시키는 측면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교 내신이 절대평가로 바뀌면 당연히 특목·자사고 학생이 유리하다”라며 “설령 대학 입시에 블라인드제를 채택하더라도 일반고 학생과 특목고 학생은 자기소개서부터 다르다”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학원 강사인 B씨는 “중학생의 고교 입학 경쟁이 대학 입시에 준할 만큼 치열해질 수 있을 것”이라며 “자율성이 강화되면서 어떻게 해야 대학 입시에 유리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지, 그런 전략을 짜주는 고액의 컨설팅도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내년 주요 자사고 신입생 모집률이 치솟기도 했다. 지난 18일 공개된 종로학원의 ‘2023학년도 특목·자사고 경쟁률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국에서 신입생을 모집하는 10개 자사고의 평균 경쟁률은 1.82:1로 전년(1.57:1)을 상회해 5년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다.
전문가 “고교 학점제 성공하려면 점수 체계 신뢰성 높여야”
전문가는 고교 학점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하려면 여러 조건이 맞물려 돌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은 “교육적 의미에서 절대평가는 바람직한 방향이 맞지만, 기존의 대입 제도가 새로운 교육 방향에 맞춰 변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라며 “일반고와 특목·자사고가 나뉘는 고질적인 고교 서열 체제를 해소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점수 체계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국제 대입 시험 제도인 국제 바칼로레알(IB) 등을 보면, 어떤 나라에서 시험을 치르든 학점은 동등한 조건에서 성취할 수 있다”라며 “이는 IB의 시험 평가를 검증하는 외부 센터가 엄격히 관리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보증, 혹은 검증 체제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고교 입학 경쟁이 치열해져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학생이 사교육 시장에 과하게 내몰리지 않게 하는 것도 교육부·교육청의 역할”이라며 “국내 사교육 시장은 언제나 교육정책의 변화에 맞춰 적응해 왔다. 진로 설계 부분을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교사들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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