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의 A고등학교. 이 학교 학생 B군(16)이 지난 12일 서울의 어느 숙박업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B군은 홀로 투숙했고 경찰은 극단적 선택으로 결론 내렸다.
B군은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였다. 지난 10월29일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그 골목에 있었다. 다리를 다쳤지만 생존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곁에 있던 다른 학교 친구 두명은 골목에서 숨졌다.
B군은 참사 일주일 만에 학교로 돌아왔다. 친구들 앞에서 슬픈 내색을 크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B군의 빈소에서 만난 한 친구는 “참사 후 같이 놀았는데 ‘밥 먹었느냐’ 등 일상적인 대화를 했고 (B군이) 밝은 모습만 보였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B군이) 마지막까지 우리 앞에서 웃었다”고 했다.
그래서 B군의 극단적 선택은 친구들도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심적으로 얼마나 힘들었을지 같은 학교 친구들은 헤아리기 어려웠다. B군에게 솔직한 심정을 묻기도 어려웠다. 한 친구는 “(참사 당시)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일까 봐 (묻기)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겉으로 ‘괜찮다’ 해도 속앓이…10대, 트라우마에 취약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심리학계는 극단적 선택 후 남겨진 사람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이 재난 생존자만큼이나 크다고 한다. 남겨진 사람을 ‘자살 생존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겉으로 무덤덤한 모습이 10대 청소년들의 자연스러운 트라우마 반응이라고 했다. 10대가 유독 재난에 취약한 이유다.
김은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아동청소년위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세월호 참사 후 2년 동안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 상주하며 생존 학생들 심리 치료를 했다. 김 위원장은 “어른들은 자기감정을 깨닫고 설명할 수 있지만 청소년들은 예상 못한 경험에서 자기감정을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표현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청소년 심리 전문가로 꼽히는 홍현주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극도의 심적 고통을 느껴도 상당수 학생은 ‘힘들다’고 표현하지 않는다”며 “그렇다고 그들이 슬퍼하지 않거나 감정적인 충격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사상자 학교에도 심적 고통을 드러내지 않는 10대들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김 위원장은 “10대는 자기감정을 깨닫더라도 주변에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며 “서로 더 힘들어질까 봐 숨기고 먼저 감정을 표출한 친구를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참사 사상자 주변 친구들까지 광범위하게 상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애도 교육’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세월호 참사 후 단원고는 한 반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교사 한 명씩 들어가 트라우마와 애도가 무엇인지, 어떤 종류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알려줬다. 김 위원장은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A학교 위클래스에 특별상담실을 설치하고 학부모 동의를 받아 전교생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최초 상담 후 추가 상담이 필요한 학생은 상담을 계속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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