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9채를 보유한 일명 ‘빌라왕’ 김모씨가 지난 10월 갑자기 숨지면서, 김씨에게 집을 임차한 세입자들이 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가입한 전세보증보험금도 언제 받을지 알 수 없고, 소송을 걸 수 있는 김씨 상속인마저 없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그야말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유산한 부부도 있을 정도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는 200여명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 상당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했다. 하지만 HUG가 집주인 대신 보증금을 돌려주는 대위변제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 해지를 통보받아야 하는 집주인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상속자도 없으며, 김씨에게 부모가 있지만, 상속을 거부하고 있다.
‘빌라왕’ 김 씨, 수도권 돌며 무차별 갭투자
김씨는 교묘한 수법으로 세입자들을 상대로 사기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상당수는 전세 계약 당시 임대인은 다른 사람이었는데, 계약 후 집이 김씨에게 팔렸다.
임대인이 김 씨에게 바뀌는 과정에서 세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상황을 정리한 김씨는 이후 돈이 없다며 보증금 반환을 거부했다. 여기에 60억원이 넘는 종부세 체납으로 집에 압류까지 걸리면서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날릴 처지에 놓인 것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김 씨는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수도권에서 1100채가 넘는 부동산을 사들여 임대사업을 영위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자기자본 없이 전국을 돌며 부동산을 매입한 김 씨는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그는 2020년부터 올해까지 수도권을 중심으로 빌라와 오피스텔을 사들여 총 1139가구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다. 전세 보증금 2억3700만원을 내고 김 씨의 빌라에 입주한 피해자 A씨는 1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빌라왕 사망 소식을 접하고 나서 담당 수사관한테 여쭤봤더니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서는 상속인이 정해지면 그 상속인 상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하더라), 상속인이 상속 포기를 할지 상속받을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아 그냥 기다리고만 있다”고 전했다.
전세보증보험 관련해 A씨는 “HUG 보증보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라며 “임대인(빌라왕)이 임대사업자 보증보험 가입을 해주겠다고 해 계약했다. 잔금을 치렀지만, 임대인이 연락이 없어 HUG에 전화했더니 ‘임대인 개인 채무로 가입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피해자들 상황에 대해서는 “지금 제가 알고 있는 임대인이 가진 주택 수가 한 1000채 넘는 걸로 알고 있어서 피해자도 그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지금 저희가 피해자 모임이 따로 만들어져 있다. 거기에는 한 450명 정도밖에 없다”라며 “아마 지금 자기가 피해를 봤다는 사실도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며 안타까운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은) 대부분 다 20~30대거든요. 청년, 사회초년생 아니면 신혼부부들이 대부분이라 정말 심한 부분은 스트레스로 유산한 분들도 계시고 아니면 지금 원래는 결혼 계획이 있었는데 그 계획에 지금 차질이 생겼든지 이런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에 ‘깡통전세’ 우려…이미 빨간불, 또 다른 ‘빌라왕’ 나올까
빌라왕 사건은 전형적인 깡통전세다. 깡통전세는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보통 전세보증금이 매매가의 80%에 육박하면 깡통전세 위험성이 높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집주인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이 법원 경매에 부쳐지면 경매를 통한 낙찰가가 아파트라도 80%를 밑도는 경우가 많고, 빌라의 경우 낙찰가가 그보다 더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문제는 ‘빌라왕’ 사건 사례가 더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빌라 3400여 채를 구입해 전세 사기를 벌이다 지난 9월 구속된 권모씨 일당은 ‘빌라의 신(神)’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렇게 깡통전세에 대한 불안감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15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가 지난 8월부터 ‘전셋값 상담센터’를 운영한 결과 12일까지 총 790건의 상담이 접수됐다. 현재 분석 중이거나 취소 건을 제외한 720건을 분석한 결과 525건은 정상(73%), 195건은 ‘의심'(27%)으로 나타났다. ‘의심’ 전세물건은 적정 전셋값이 아니거나 과도한 근저당설정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확률이 높은 물건이다. 10건 중 2건 이상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상담했다는 의미다.
전세보증금이 매매가의 절반 이상에 육박해 깡통전세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과 관련해, 국토교통부가 제공하는 전세가율 정보(부동산테크 임대차사이렌)에 따르면 전국 연립·다세대 주택 평균 전세가율은 82.2%를 기록해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서울은 평균 79.9%, 구별로 보면 강동(89.5%), 동대문(80.4%) 등 13개 구가 80%를 넘었다. 관악(92.7%)은 90%를 넘어섰다. 인천(88.7%)은 수도권 광역단체 중 전세가율이 가장 높고, 경기도는 평균 82.2%, 부천(81.4%), 평택(90.5%) 등 17개 지자체가 80%를 넘었다.
정부는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서민들이 전세피해로 눈물 흘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대인이 사망했기 때문에, 사는 집을 당장 비워줘야 하는 건 아닌지, 전세대출금을 바로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눈앞이 아득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피해자분들은 상속절차가 진행되는 수개월 동안은 현재 살고 계신 곳에서 계속 지내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세대출금 또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주택금융공사, 서울보증보험이 운영하는 ‘전세대출 보증’의 연장이 가능하므로, 당분간은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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