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뉴욕 맨해튼 거리에는 부쩍 불법 노점상이 늘었다. 록펠러센터·브로드웨이 인근 등 관광객이 몰리는 일부 거리는 사실상 ‘짝퉁(모조 명품)’ 암시장으로 변했다. 짝퉁 루이비통, 짝퉁 프라다, 짝퉁 디올을 늘어세운 불법 노점상이 도로의 절반 가까이 점유한 탓에, 잠시 한눈을 팔았다간 발끝에 짝퉁이 치일 정도다.
지난 주말 오후 맨해튼 6번가를 따라 라디오시티까지 불과 세 블록을 걷는 동안 최소 15명 이상의 판매업자를 마주쳤다. 선진국인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이렇게 노골적인 짝퉁 호객행위가 가능한 것일까,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짝퉁으로 몸살을 앓았던 한국만 해도 이젠 노점이나 일반 상가에서 이러한 호객행위는 힘들다. 더욱이 인파를 통제하기 위한 뉴욕경찰(NYPD)들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길바닥 얇은 담요 위에 늘어선 짝퉁 가방, 지갑들은 말 그대로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 과연 팔리기나 할까, 잠시 지켜보던 사이 한 관광객이 디올 북 토트백 중형사이즈 짝퉁을 50달러에 사서 떠났다. 바로 옆 노점상에선 유럽계로 보이는 한 여성과 상인이 흥정하다 결국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구입을 위해 제시한 가격대가 지나치게 낮았던 것인지, 상인은 욕설을 섞으며 이 여성을 쫓아냈다. 3m 정도 거리에서 뒤돌아선 그녀는 “어디 두고 봐라. 그 돈을 주고 네게 그딴 사기품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인파 속에서 고함을 질렀다. 불과 5여분사이 펼쳐진 풍경들이다.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에 거주하며 미드타운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셀린 씨는 “이전에도 짝퉁 상인들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결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면서 “최근 몇 주간 급격히 이 지역에 (불법 노점상이) 몰려오는 것 같다. 사는 사람들도 문제다. 자기가 뭘 사는지도 모르고 그냥 산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맨해튼 거리에 이처럼 불법 짝퉁 노점상이 판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팬데믹 직전만 해도 대표적 짝퉁 암시장은 차이나타운 정도였다. 차이나타운 거리에 검은 비닐봉지가 늘어서 있다면 짝퉁명품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이후 불과 몇 년 되지 않아 미드타운 브로드웨이, 6번가, 심지어 ‘명품거리’로 불리는 5번가에서도 공공연하게 길거리 한복판에서 짝퉁 거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뉴저지주 출신인 30대 한인주부 서머 킴씨는 “(5번가에는) 세계 최고 고급 부티크들이 모여있는데, 이 앞 길가에서 대놓고 짝퉁도 팔고 있다는 게 묘하게 느껴진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여기에는 약해진 단속 권한이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는 평가다. 당초 불법 노점상 체포, 위조품 단속 등은 NYPD의 권한이었다. 하지만 2019년 NYPD가 불법 노점상 단속 과정에서 강압적으로 수갑을 채운 것이 여론의 강한 반발로 이어지며, 뉴욕시(市) 당국으로 단속 권한이 넘어갔다. 경찰처럼 체포 권한이 없는 시 공무원들이 아무리 단속한들, 한계는 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틈새로 불법 짝퉁 노점상이 판치게 된 셈이다.
연말 관광객 특수를 노린 이들 불법 노점상들은 통상 오후 3시쯤부터 하나, 둘 출근(?)하기 시작해 밤까지 판을 벌인다. 이날도 수많은 불법 노점상의 짝퉁 호객행위는 분명 선을 넘고 있었다. 행인들에게 짝퉁을 들이밀며 강매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은 물론, 록펠러센터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기 위한 대규모 인파와 뒤섞여 통행에까지 방해가 되고 있었지만, 단속 권한을 빼앗긴 NYPD는 그저 주시하기만 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관광객, 시민들과 주변 상인들이 받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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