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알래스카 가스 개발 사업 참여를 검토하는 가운데, 중동 국가들의 반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이 수입처를 미국으로 전환하면 카타르·오만 등은 수출 감소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동의 우려가 현실화할 경우, 중동 산업·인프라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에 규제 등 불이익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6일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최근 일부 중동 국가 정부는 한국 내 정보원들에게 ‘한국의 LNG 수입 정책 동향’을 문의했다. 문의를 받은 한 관계자는 “문의는 비공식적으로 이뤄졌다”며 “한국과 미국 간 협상이 구체화되는 대로 중동 측도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 국가의 반응은 한국이 미국산 LNG로 전환하는 규모와 속도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세계 3위 LNG 수입국으로, 호주·카타르·오만·말레이시아·미국 등에서 LNG를 들여오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체결한 20년 장기계약 물량 중 31%를 차지했던 카타르(492만t), 오만(406만t)과의 계약이 지난해 말 종료된 상태다. 올해부터 신규 도입계약을 체결한 물량은 358만t이다. 정부는 파악한 수요 규모가 20년 전과 다르다는 입장이지만, 단순 계산으로 보면 540만t 내의 추가 수입 여력이 있는 셈이다.
해당 물량을 미국산으로 대체하는 것은 미국의 관세 조치 등에서 한국이 제외되기 위한 ‘협상 카드’로 여겨지고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4일 “미국 정부가 무역수지 적자 규모를 (관세 부과 등 조치의) 지표로 삼는 경향이 있어, 이에 대응할 카드로 에너지 수입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올해 장기계약 물량 확대방안 등을 업계나 관계 부처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알래스카 가스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안도 통상 압박 완화 카드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관세 불균형 사례와 알래스카 프로젝트 참여국으로 한국을 공식 언급했다. 상호관세를 무기 삼아 한국의 알래스카 사업 참여를 종용한 것이다. 안 장관은 “알래스카 프로젝트 참여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검토해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했다.
산업부는 이와 관련해 카타르, 오만 등 정부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살피지는 않고 있다. 한국이 LNG 수입 구조를 점진적으로 다변화하는 과정에서 중동 수입 비중이 이미 크게 줄어든 만큼,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거란 판단에서다.
전문가들도 이들 국가가 직접적인 보복 등으로 불만을 제기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다만 중동과 협력하고 있는 비(非) 에너지 분야에서 한국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강문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동에 대한 한국의 입장이 바뀌었다는 위기감을 주게 되면, 한국 석유화학 산업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는 중동 정부의 장기적 전략에 부정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아멘 구다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중동아프리카학) 교수는 “중동 정부는 통상적인 긴장을 고조시키기보다는 한국 정책 변화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우선순위를 둘 것으로 보인다”며 “대신 한국 기업이 관여하고 있는 걸프 지역 인프라·산업 프로젝트의 승인 지연, 규제 장벽 강화 등의 형태로 미묘한 압박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로부터의 압박’과 ‘중동 LNG 수출국과의 에너지 파트너십 필요성’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중동에 미국 등 외부 정치적 요인을 명확히 전달하고, 기술·산업 투자나 국방 협력 등의 확대를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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