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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손해를 입히는 동맹국 중 하나로 한국을 콕 집어 언급함으로써 향후 관세, 대미 투자, 방위비 등에서 우리나라가 전방위적인 압박에 직면할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 시간) 연설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국가가 우리가 그들에 부과한 것보다 훨씬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 매우 불공정하다”고 운을 뗀 뒤 인도와 중국, 유럽연합(EU) 사례를 거론하며 “한국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4배 높다”고 주장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최혜국대우(MFN) 평균 관세율은 13.4%로 미국(3.3%)의 4.1배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우리나라는 지난해 미국에 0.79%의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최근 여러 외신이 한국의 MFN 관세가 멕시코·캐나다 등에 이어 13%대라고 보도하자 기획재정부가 보도 설명 자료 형태로 미국에 대한 관세율은 0%대이며 대부분의 국가와 FTA를 맺어 관세율이 MFN 관세율보다 낮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보고 싶은 통계만 쏙 뽑아 언급한 것이다.
당초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던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백악관이 사전에 배포한 연설문 원고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등이 수조 달러를 지출할 것”이라고 말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실제 연설에서는 ‘각각(each)’라는 표현을 추가해 “일본·한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각각 수조 달러씩 투자하며 우리의 파트너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투자 의지를 과장하며 다른 나라의 동참을 이끌어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날 한국의 높은 관세율과 미국이 한국을 군사적으로 도와준다는 것을 언급한 점을 미뤄볼 때 한국에도 많은 돈을 투자하라고 압박한 것으로 읽힌다.
이 사업은 북극해 연안 알래스카 북단 가스전에서 뽑아낸 천연가스를 1300㎞ 길이의 송유관을 거쳐 남부로 이동시켜 액화한 뒤 수요지로 옮기는 것이다. 문제는 경제성이다. 2010년께 엑손모빌 등 오일 메이저 기업이 참여한 가운데 사업이 시작됐지만 북극해 인근이라는 지역 특성과 사업성 문제로 민간기업이 빠져나가면서 진척이 없는 상태다. 미 에너지 당국은 일본·한국 등 동아시아 주요 LNG 수입국이 장기 구매를 전제로 개발 단계부터 참여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대규모 리스크가 동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입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접근법은 1기 당시 막무가내식 압박 전략을 다시 꺼내는 행보로 읽힌다. 1기 때 협상에 참여한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한국이 대미 무역수지는 흑자를 보고 있지만 서비스수지 등 경상수지 전체로 보면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설득해도 미국 측은 이를 무시하고 무역수지만 언급을 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지출액이 2.8%로 미국의 동맹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미국은 ‘한국은 전쟁 중인 국가 아닌가’라고 맞받아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한국을 정조준한 만큼 비관세 장벽 등을 이유로 상호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높은 관세를 지적한 뒤 “이 시스템은 불공평하다. 4월 2일 상호 관세가 발효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특히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로 약간의 소란이 있을 것이지만 괜찮다”고 말하면서 상대국 보복 관세의 1차 타깃이 될 미국 농부들을 향해 인내해 달라고 당부했다. 자신의 구상대로 관세정책을 밀고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동맹이 국방 분야에서 더 많은 책임을 분담하기를 원하고 있어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을 요구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산 자동차에 한해 자동차론 이자를 세금 공제 대상으로 하겠다고도 말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자동차는 혜택을 못 받게 되면서 미국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조선업 관련 언급은 한국에는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새 조선 담당 사무국을 설치하고 이 산업을 원래 있어야 할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특별 세제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 조선 업체가 미국에 투자를 할 경우 과도한 현지 인력 채용과 기술 이전 등을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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