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남준의 실험정신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오늘의 젊은 예술인들에게 공명한다. ‘미디어아트’라는 미지의 영토를 개척했던 청년 백남준처럼, 8인의 젊은 예술인들은 각자가 바라보는 작고 연약한 세계에 돌을 던지며 신세계로의 물결을 일으킨다.
백남준아트센터가 2025년 첫 전시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4.0’을 선보인다. 고요손, 김호남, 사룻 수파수티벡, 얀투, 장한나, 정혜선·육성민, 한우리로 구성된 국내외 청년 작가 7팀(8인)의 작품 14점을 통해 청년 백남준의 예술적 사유를 잇는 동시대의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전시다.
전시 제목인 ‘랜덤 액세스’는 1963년 백남준의 첫 개인전에서 유래한다. 당시 전시 포스터에 적혀있던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의 ‘que sais-je?'(나는 무엇을 아는가?)는 절대적 진리와 기존의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며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추구했던 백남준의 철학이 함축돼 있다.
이번 전시의 참여작가들 역시 이런 질문에 대해 실험적 태도로 자신만의 답을 제안한다.
먼저 전시장에 들어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룻 수파수티벡의 ‘콰이강: 고인을 기리며 열린 추모식’은 4채널의 비디오와 레진 작품을 통해 인류가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상실과 미디어에 의해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이 왜곡되는 현상을 포착한다. 슬픔과 진실이라는 이질적 감정을 동시에 전달하며 ‘이해’와 ‘연결’을 동시에 말하는 작품이다.


얀투의 ‘진행 중인 설치’는 자동 운반 차량(AGV)이 다양한 오브제를 운반하며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여겼던 작품 설치 행위를 대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 예술과 글로벌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지만, 사람과 달리 절대적 편견이 없는 기계에서 희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김호남의 ‘해저 광케이블을 위한 에코챔버 시스템’은 전 세계 네트워크 시스템의 근간인 해저 광케이블의 동작 원리를 가시화해 기술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려 한다. 또, 한우리는 ‘포털’을 통해 현대 기술 문명의 아이러니를 올드 미디어인 영사기, 고대 신화 등의 서사를 경유하며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인간과 자연, 기술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작가들도 있다. 정혜선·육성민은 GPS 태그를 장착한 동물을 소재로 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 기술이 공생하는 초연결의 생태계를 탐구한다. ‘날개의 배낭’ 프로젝트로 시작한 ‘필라코뮤니타스’는 인간 중심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벗어날 방법을 고민하기도 한다.

장한나는 자연 속에서 변형된 플라스틱이지만 마치 돌처럼 생긴 ‘뉴 락’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나 상호작용하는 관계망으로써의 새로운 관계를 제시한다. 자연과 인공의 중간 어딘가에서 혼종적 상태로 새롭게 구성된 ‘신 생태계’는 그 자체가 자연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을 암시한다.
마지막으로 고요손은 예술 창작의 동반자인 전시기획자 임채은과 아버지 손정호를 작품의 주체로 직접 드러내고, 관람객을 작품 일부로 끌어들이면서 조각의 경계를 넓히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참여 작가들의 예술적 역량을 보다 다각도로 조명하기 위해 참여 작가가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전시연계 프로그램도 함께 준비된다.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백남준아트센터는 세 가지 키워드, 초연결성, 다성성, 유산공동체, 즉 백남준의 평화와 공존, 공생의 정신을 펼쳐나가고 있다”며 “이번 전시는 이 세 가지 키워드와 백남준의 실험정신을 태도로 하는 젊은 예술가들을 모아 보여주는 특별한 전시”라고 말했다. 백남준의 실험정신을 이어가는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오는 6월 29일까지 열린다.
/글·사진=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댓글0